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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곳을 넘어서면.”

 

김학령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뭔가를 볶아대는 것만 같은 요란한 소리가 울려 퍼지는 우금치를 바라보았다.

 

“저곳을 넘어서면 공주여.”

“그려 나도 알어.”

 

김학령은 앞서 고개를 넘어간 이들이 승전보를 전해주기를 은근히 바랬다. 죽창을 쥔 그의 손은 자신도 모르게 벌벌 떨리고 있었다. 전투에 참여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번 전투는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기만 했다. 김학령은 붙이면 총알도 비켜간다는 궁궁(弓弓)부적을 왼쪽 어깨에 붙이고 있었지만 그런 것은 왠지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그렇다고 김학령의 주위에 몰려있는 동학교도들이 모두 불안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우금치를 가로막고 있는 이들은 3천도 채 안되는 관군과 소수의 일본군이 다였다. 반면 동학군은 내세워 말하길 10만이라 일컬었다. 사실 우금치에 집결한 수는 만여 명이 좀 넘는 정도였지만 그래도 관군과 일본군에 비해서는 훨씬 많은 수였고 그들이 비록 신식무기로 무장하고 있다고 해도 숫자로 밀어붙인다면 못 뚫을 리 없다고 동학들 모두가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김학령의 불안감은 지휘관에게 다급히 달려가는 전령의 모습을 보고 더욱 커져만 갔다. 전령은 흐트러진 옷매무새에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다른 동학군들은 그런 전령의 모습을 애써 외면했으나 김학령은 이를 지나쳐 볼 수 없었다.

 

‘저기에는 뭔가가 있다. 흉한 기운이 퍼져 나온다.’

 

김학령은 좋지 않은 기운을 남보다 먼저 느끼는 걸 어릴 적부터 타고난 자였다. 이를 입 밖으로 말할 때 마다 사람들은 신기(神氣)가 있다고 수군거렸지만 김학령이 실제로 귀신을 보고나 느낀 적은 없었다. 좀 더 장성해서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싫어서 김학령은 그러한 기운이 느껴지더라도 스스로 조심할 뿐 함부로 발설하지는 않았다.

 

‘이건 말해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이런 느낌을 설명하나. 다들 무시할 것이다. 그럼 나라도 저 곳에 가지 않으면 되는 일이 아닌가.’

 

김학령은 꾀를 내기로 하고 죽창을 어깨에 걸친 채 앉아서 인상을 쓰며 슬슬 아랫배를 만져대었다.

 

“아이고 갑자기 배가….”

 

김학령은 죽창을 그 자리에 놓아둔 뒤 근처 야산으로 올라가 용변을 보는 척 바지춤을 끌러 내리고 사방을 살펴보았다. 이대로 고향인 부여까지 가려면 동학군들이 집결해 있는 곳을 지나쳐야 하니 혼자 무작정 빠져나가는 것이 쉬워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이 주위에 숨어 있는 게 낫겠다.’

 

김학령은 주위를 살펴본 뒤 몸을 숨길만한 바위하나를 발견하고서는 바지춤을 끌어 잡고 조심스레 엉거주춤 다가갔다.

 

“어이 거기!”

 

김학령은 자신의 뒤통수를 때리는 것만 같은 날카로운 고함소리에 움찔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왜 엉뚱한 곳으로 가유? 곧 진군하니 제자리를 지키라는 말로 못들었시유? 어여 이리 와유!”

 

김학령은 자신을 보고 소리친 동학군에게 속으로 온갖 저주가 담긴 욕설을 뱉어내며 느릿느릿 진중으로 돌아갔다. 김학령이 앉아있던 자리에는 마치 돌아올 줄을 알았다는 듯이 비웃는 사람의 얼굴마냥 몸통에 흠집이 나있는 죽창이 그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런 난장 맞을! 흉한 기운이 이쪽까지 밀려들 정도로 강해. 그래도 가야해?’

 

“모두 제자리에서 일어서!”

 

지휘관의 고함소리와 함께 갖가지 무기를 손에든 동학병들이 재빨리 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김학령은 죽을상을 하고서는 죽창을 지팡이 삼아 제일 늦게 비실비실 일어났다.


#우금치#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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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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