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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봉준 고택 부엌.
전봉준 고택 부엌. ⓒ 안병기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어머니를 둔 나는 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유아기를 보냈다. 내가 할머니 무릎팎에 앉아 들었던 최초의 노래는 무엇일까. "금을 준들 너를 사랴, 은을 준들 너를 사랴" 이렇게 시작되는 '금자동아, 은자동아'가 아니었을까. 아기를 위 아래로 까불며 어르는 노래인 '들강 달강'이란 노래였을까.

알강 달강 서울 가서 밤 한 되를 얻어다가
살강 밑에 묻어 놨더니
머리 빠진 새앙쥐가 들락날락 다 까먹고
껍데기만 남아서 가마솥에 삶을까
큰 솥에다 삶을까 가마솥에 삶아서
조랭이로 건질까 함박으로 건질까
조랭이로 건져서 할아버지 드리고
할머니도 드리고 우리들도 먹자

-전래동요 '알강 달강'

부엌 혹은 부뚜막에 대한 따스한 기억

이 '생쥐 밤 독식 사건'의 주무대는 부뚜막이다. 부뚜막은 아래와 위가 따로 구분되고 불을 때는 아궁이와 솥을 거는 구멍으로 이루어졌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불길이 방 밑으로 난 고래(불의 통로)를 따라 들어가 구들장(납작한 돌)을 덥히면서 방바닥이 뜨거워진다.

또 불을 때는 방식도 밥을 지을 때와 방을 달구기 위한 때가 다르다. 밥을 지을 때는 아궁이 입구에다 불을 때야 한다. 순전히 방만을 달구고자 할 때 '군불'은 깊숙히 집어넣어야 한다.

난 어렸을 적 할머니를 도와 불때는 일을 많이 해봤다. 불때기는 생각보다 그리 간단치 않다. 채 마르지 않은 생솔가지를 태울 때는 쏘시개가 다 타도록 불이 옮아붙지 않아 진땀을 뺀다. 어렵사리 불이 붙어도 연기가 오사게 매워 눈물이 쏙쏙  빠진다.

또 보리쌀이 많이 들어간 밥을 지을 때는 뜸들이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 보리밥을 짓다가 죽을 만들어 혼나는 며느리들을 가끔 봤다. 도회지에서 직장 다니다가 추석이나 설 명절을 맞아 집에 내려온 처녀들이 제딴엔 부엌일을 도운답시고 밥을 짓다가 숫제 죽을 쑤는 바람에 야단을 맞는 일도 드문 풍경은 아니었다.

사랑방에 딸린 부뚜막은 주로 쇠죽을 쑤는 데 많이 쓰였다. 볏짚을 작두로 일정하게 썰어서 가마솥에 넣고 삶고 나서 익으면 구유에 넣어준다.

조왕신이 거주하는 곳인 부뚜막은 신성불가침의 장소이다. 기끔 온기가 그리운 강아지가 이 곳에 올라가버리는 경우가 있다. 내 경험칙상 "얌전한 강아지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라는 속담은 대체로 맞는 것 같다. 얌전한 강아지에겐 사람의 방심을 파고들 줄 아는 탁월한 전술이 있다. 어쩌면 소문이란 방심의 허를 찔린 인간들이 제 당황함을 감추려는 수작인지도 모른다.

각설, 부뚜막은 앞에 열거한 것처럼 단순히 노동의 공간으로만 쓰이는 장소가 아니다. 어머니와 딸이 요리를 배우고 가르치기도 하고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기도 하면서 생의 따스함에 눈뜨는 곳이기도 하다. 어렸을 적, 내가 경험한 부엌은 그런 곳이었다.

그러나 아파트 거실로 들어온 '주방'이라는 곳은 부엌이 가진 기능을 철저히 단순화시켜 버렸다. 어머니와 딸이 의사소통을 나누는 기능은 통째로 사라져 버리고 노동의 공간으로만 기능하고 있는 셈이다.

'이타의 샘물'을 마시고 싶을 때도 있다
                                                                 
 시집 표지.
시집 표지. ⓒ 문학과지성사
올해도 우리에게 가장 큰 명절인 추석 명절이 지나갔다. 즐겁게 추석 명절을 쇠다 온 사람도 있겠지만 추석을 '치르다' 온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여자들에겐 추석은 명절 아닌 지긋지긋한 전쟁이다. 그 전쟁터는 두말할 것도 없이 부엌이다. 명절증후군이란 말이 공연히 생겨났겠는가

그러나 주부들에게 저주스런 공간인 부엌을 찬미하는 시인이 있다. 그는 부엌을 가리켜 "여자들의 권력의 원천"이라면서 고무 찬양한다. "총구에서 권력이 나온다"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부엌에서 여자들 권력이 나온다는 말은 머리털 나고 처음 들어봤다.

그렇게 좋으면 제 부엌 일이나 지가 전적으로 도맡아 하면 그만이다. 구태여 저런 수작을 부리는 건 또 무슨 의도랄 말인가.

누군지 모르지만 아마 저런 작자는 마누라가 아무리 바빠 죽겠다고 끙끙대더라도 부엌엔 코빼기도 안 비칠걸?

겁을 상실한 시인의 이름은 정현종이다. 시 '부엌을 기리는 노래'는 시집 <세상의 나무들>(1995) 첫째 쪽에 실려 있다.
                                          
여자들의 권력의 원천인
부엌이여
이타(利他)의 샘이여.
사람 살리는 자리 거기이니
밥하는 자리의 공기여.
몸을 드높이는 노동
보이는 세계를 위한 성단(聖壇)이니
보이지 않는 세계의 향기인들
어찌 생선 비린내를 떠나 피어나리오.


- 정현종 시 '부엌을 기리는 노래'

정현종 시가 가진 미덕은 드러내놓고 설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를 쓰는 사람이 어찌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없을까마는 그는 늘 사물 뒤에 숨어서 독자가 시를 다 읽을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준다.

시인은 야박하게 의미를 꼭꼭 숨겨놓는 것이 아니라 머리카락이 보일 듯 말듯 숨겨두는 관대함을 잃지 않는다. 그러기에 독자가 그의 시가 내포한 의미라는 술래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자들의 권력은 맞벌이에서 나온다

시인은 부엌이야말로 "이타의 샘"이며 "사람 살리는 자리"라고 규정한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계의 향기"조차 "생선비린내를 떠"나서는 피어나지 못한다고 단언한다. 국가보안법을 원천적으로 무시한 시인의 고무 찬양 앞에 나 역시 섯불리 맞장구치고 나선다. 그러나 후환이 두려운 나는 동조 행위를 언제까지나 길게 끌고 갈 수 없다.

"여자들의 권력은 부엌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말은 맥을 크게 잘못 짚은 것이다. 근래에 들어 여자들의 권력의 원천은 다양하고 다변화해졌다. 여자들이 가진 권력의 대부분 맞벌이에서도 나오고, 부수적으로 펼치는 각종 사회활동에서 나온다. 그리고 미디어와 미디어화 돼가는 인터넷을 통해서 분출한다.

부엌에서 일하다 말고 여자들은 뒤돌아서 당돌하게 묻는다. 부엌을 사수함으로써 도대체 우리에게 어떤 이득이 주어지느냐고, 고작해야 '이타의 화신'이라는 소리밖에 더 듣겠느냐?"라고. "몸을 드높이는 노동" 좋아하시네. 시방 그 말, 우리가 얼마나 스트레스 받는지 알기나 하고 지껄이는 소리야?

안타깝지만 시인이여. 그대의 시는 무척 아름답긴 하지만, 흘러간 노래에 지나지 않는군. 그대의 시를 아내들에게 들려주느니 차라리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으로 가는 편이 가정의 평화에 기여하겠어. 가만히 생각해 보니 우린 그동안 너무 여자들 등에만 업혀서 살려고만 했던 경향이 있었던 것 아니냐고?

오죽하면 며칠 전엔 가부장제의 상징인 성균관 재단 상무이사마저 나서서 "요즘에는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함께 거들어서 음식 준비를 하니까 보기도 좋고, 서로 간에 즐거운 그런 마음으로 조상을 기리는 음식 준비라든지 제수를 차리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남성들에게 가사일을 권장하면서 항복선언을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의 시는 아름답지만 흘러간 노래

나는 우리나라 주부들의 피로감을 부추긴 원흉으로 언론을 꼽지 않을 수 없다. 왜 명절 때마다 앞장서 '가사노동'이 어쩌고 '명절증후군'이 어쩌고 나발을 부느냐 말이다. 내 감히 단언하건대, '명절 증후군'이란 신조어를 만들고 그것을 확대 재생산하지만 않았다면 이렇게까지 피로가 가중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긁어 부스럼이란 이 같은 경우를 두고 이르는 말이 아닐는지.

노동과 가족에 대한 사랑 사이의 경계는 어디쯤 세워야 할까. 어디까지가 노동이고 어디서부터가 사랑의 행위인가. 세상만사 모든 것을 명확하게 구분짓다 보면 나도 모르게 너그러움과 여유를 잃을 수도 있다. 일이 힘에 부친다면 와이셔츠 걷어붙이고 함께 설거지 하고 도우면 될 터.

그러나 여자들도 '이타의 샘물'을 마시고 싶을 때도 있다는 걸 남자들은 이해할 수 없을까. 더구나 지금은 우리네 삶이 점점 사막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는 시기가 아닌가.

덧붙이는 글 | *살강-부엌 선반, 함박_쌀을 일때 사용하는 나무로 된 바가지, 조랭이_조리



#부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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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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