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방혜자전 대형포스터가 걸린 환기미술관 입구와 내부. 아래 '새로운 땅의 빛' 200×150cm 1999.
 방혜자전 대형포스터가 걸린 환기미술관 입구와 내부. 아래 '새로운 땅의 빛' 200×150cm 1999.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내면세계를 빛으로 표현하는 작가로 국내외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는 방혜자(70)전이 서울 부암동 환기미술관에서 10월 28일까지 열린다. 그는 1961년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국립미술학교 등에서 수학했고 고희가 되도록 양국을 오가며 100여 차례 개인전 및 단체전을 열었다.

전시장에 들어서니 마치 수억 광년 전에 생긴 빛의 숨결이 우리 몸 안에 들어왔다가 빠져나가는 듯하다. 또한 우주가 생성될 때 발생하는 휘황찬란한 빛과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듯한 색채와 오묘한 형상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시장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인 양 숨쉬는 듯하고 관객에게 그림을 통해서 은은한 속삭임을 들려주는 것 같다.

 '빛의 눈' 무직천에 천연연료 520×140cm 2003(위) '우주의 빛' 230×220cm 2002. 빛의 숨결이 잔잔한 물결 속에서 광채를 내고 있는 것 같다
 '빛의 눈' 무직천에 천연연료 520×140cm 2003(위) '우주의 빛' 230×220cm 2002. 빛의 숨결이 잔잔한 물결 속에서 광채를 내고 있는 것 같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어린 시절, 시냇가에서 본 강력한 빛과 그 속에 담긴 풍경들이 작가의 평생을 사로잡았고 그의 그림의 근간이 되었단다. 위의 '빛의 눈'이나 '우주의 빛'을 보면 마치 강한 햇살을 받고 투명한 물길 속에 비치는 조약돌이 반사될 때 번뜩이는 빛의 이미지다.

그의 작품을 보는 순간, 관객들 자신도 모르게 뭔가에 빨려 들어가게 되는 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그가 10년 전부터 사용한 무직천를 채색을 할 때 뒷면을 칠하고 앞면은 빛이 배어나오게 하는 방식 때문일 것이다. 작가는 모 일간지와 인터뷰에서 이런 기법을 고려탱화의 배채법(背彩法)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빛은 생명의 근원 

 '빛의 숨결' 무직천에 천연연료 50×42cm 2002. 이 작품은 빛이 사람들에게 주는 삶의 환희를 잘 보여준다.
 '빛의 숨결' 무직천에 천연연료 50×42cm 2002. 이 작품은 빛이 사람들에게 주는 삶의 환희를 잘 보여준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작가도 "우리는 빛으로부터 와, 빛에서 살고, 빛으로 돌아가는 존재"라고 했지만 이번 전시회의 주제인 '빛'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기에 예술뿐만 아니라 과학이나 종교 분야 등에서도 풀어야 할 과제이다.

'빛의 숨결'에서 보면 그가 포착한 빛은 인상파의 창시자인 모네가 말하는 순간적 빛의 포착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물결처럼 흐르는 빛을 포착한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다.

그가 분출한 빛은 형태나 색감에서 그 어느 그림에서는 보기 드문 깊이와 무게를 느끼게 한다. 이는 작가가 오랜 실험과 다양한 기법을 터득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색이 나올 때까지 수없이 겹을 입혀나가는 작업이 있었고, 또한 석채, 광물, 식물성 염료, 채석장에서 채취한 황토 등으로 자연의 색채를 냈기 때문이리라.

 방혜자 화백은 시인이기도 하다. 한 관객이 그의 시 '빛의 눈'을 감상하고 있다. 아래 1986년 에세이 <마음의 소리>와 2001년 에세이 <마음의 침묵> 등이 보인다. 그는 프랑스시인의 시집에 삽화작업을 하기도 했다.
 방혜자 화백은 시인이기도 하다. 한 관객이 그의 시 '빛의 눈'을 감상하고 있다. 아래 1986년 에세이 <마음의 소리>와 2001년 에세이 <마음의 침묵> 등이 보인다. 그는 프랑스시인의 시집에 삽화작업을 하기도 했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작가는 중고시절, 시 쓰는 사촌오빠의 영향으로 시인이 되려고 했으나 당시 미술교사였던 김창억의 권유로 화가가 되었다. 이런 주변환경 때문인지 그의 그림은 시적이고 음악적이고 예술지상주의적이다. 작가의 다음 시는 문학과 미술과 음악이 예술장르로 굳이 구분되지 않아도 됨을 보여준다.

햇빛이 나와 함께 / 그림을 그리면 / 빛이 내 마음이 되고
나는 빛이 되어 / 그림 속에 들어가 노래를 한다

이렇게 방혜자는 화가일 뿐만 아니라 또한 시인이었다. 많은 시를 발표했고 프랑스어판으로도 출간됐다. 그의 프랑스 친구 중 많은 사람은 시인이었고 그를 위해 헌시를 써주기도 했다.

빛을 주제로 쓴 그의 시가 전시장 여기저기에 붙어있다. 그냥 스쳐 읽기에 가벼운 내용은 아니지만 하여간 관객에게 색다른 재미를 제공한다. 이런 시는 문자로 그린 또 하나의 그림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스미는 것과 품어내는 것의 조화

 '빛의 입자' 닥지에 천연연료 31×31×3cm 2007. 2007년 작으로 은은하면서도 오래 깊게 퍼지게 하는 색채의 효과가 놀랍다.
 '빛의 입자' 닥지에 천연연료 31×31×3cm 2007. 2007년 작으로 은은하면서도 오래 깊게 퍼지게 하는 색채의 효과가 놀랍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빛의 입자'는 근작으로 작가가 올해 늑막염 등으로 입원하게 되면서 만든 것이다. 불편한 몸이기에 대형작은 아니라도 작가내면에 숨겨둔 빛의 입자를 여성의 섬세한 손길과 천연안료가 주는 색채에 기하학적인 문양이 더해져 현대적 감각미를 뿜어낸다.

그는 이런 작품에서 누구보다도 두 문화권을 잘 이해했기에 스며드는 듯한 한국의 멋과 품어내는 듯한 유럽의 미를 잘 혼합하였다. 오랜 외국생활 탓에 조국에 대한 향수도 컸겠지만 작가는 그런 부분을 다를 때도 통상적인 것보다는 색채나 재료로 대신했다.

작가는 그동안 이런 정신을 서양추상에 담아왔는데 그 뿌리가 된 사람은 바로 추사 김정희선생이다. 문자향 나는 서예라는 그릇에 현실도 뛰어넘는 고고한 이상미를  담은 그를 오랫동안 흠모해왔다.

 '생명의 숨결' 무직천에 천연연료 200×247cm 2001. 생명이 발하는 빛과 숨결과 음악을 시적이고 추상적인 언어로 잘 표현한 수작이다.
 '생명의 숨결' 무직천에 천연연료 200×247cm 2001. 생명이 발하는 빛과 숨결과 음악을 시적이고 추상적인 언어로 잘 표현한 수작이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2층으로 들어서면 전시장이 양쪽으로 나뉜다. 왼쪽에 걸린 '생명의 숨결' 등 일련의 추상화는 작가의 대표작으로 김환기의 말기 추상을 연상시킨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푸른 쪽빛의 오묘함은 김환기 못지않게 찬란하고 경이롭고 신비하다. 빛의 물결이 사람들 마음을 적시면서 시냇물처럼 온누리에 잔잔히 퍼져나간다.

우주와 생명의 숨결이 춤추는 세상에 대한 그리움은 작가의 큰 주제이다. 존재의 근원적 파악과 태초에 발하는 빛에 대한 강력한 열망이 그의 작품 전반에 깔려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세계를 동경하며 그리는 '빛의 숨결'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평화의 기원이 담긴 설치미술 

 '평화의 빛' 무직천에 천연연료 2007. 원통에 빛의 숨결을 통해 평화와 융합의 마음을 담으려 한 것 같다.
 '평화의 빛' 무직천에 천연연료 2007. 원통에 빛의 숨결을 통해 평화와 융합의 마음을 담으려 한 것 같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2층 오른쪽 전시장에는 '평화의 빛' 연작이 선보인다. 평면이 아니고 입면으로 된 이 설치작품은 등대나 기둥처럼 보여 볼륨감이 있고 알록달록한 색채와 무늬로 통일된 이미지를 주었기에 색다른 감흥과 리듬감을 일으킨다. 이는 그림을 칠했다기보다는 색감을 입혔다고 해도 좋으리라.

제목에서 보듯 빛의 숨결에서 생명을 건지고 그 속에 얻은 평화가 인류에게 널리 번져가기를 기원한다. 빛과 어둠이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생각과 둥근 원처럼 모든 것은 하나로 통합된다는 정신도 엿보인다. 이 전시장 벽에 적힌 그의 시는 바로 이런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다.  

어둠 속에서 / 영혼의 빛이 살아있음을
 '김환기 오마주' 색채유리 2007. 김환기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제작된 작품으로 그에 대한 존경과 경외를 보여준다
 '김환기 오마주' 색채유리 2007. 김환기에 대한 경의를 표하며 제작된 작품으로 그에 대한 존경과 경외를 보여준다
ⓒ 김형순

관련사진보기

밝은 빛 속에서 / 어둠의 씨앗이 / 숨어있음을 나는 오늘 느꼈네

어둠과 빛이 / 모든 생명 안에서 / 하나임을...

김환기와 소리 없는 교감

3층 전시실 한 가운데에는 김환기 화백에게 경의를 표하는 작품이 걸려있다. 가운데 큰 원이 있고 열두 개의 조각유리로 겹쳐지는 구성인데 이는 두 작가가 소리 없이 소통하며 호흡하는 모습일 것이다. 또한 그 속에서 일어나는 쌍뱡형 공명과 울림도 들려오는 것 같다.

여기서 사용한 빨강, 파랑, 노랑 등 그냥 쓰인 것이 아니라 이런 색이야말로 오랜 세월에도 달지 않는 아름다운 색임을 알려준다. 

환기미술관은 일반 전시장보다 좀 더 높게 걸어 작품을 우러러보게 하는 게 특징인데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와도 궁합이 맞는다. 방혜자가 의도하는 빛의 환희와 우주와 생명의 경이로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방혜자 작가는 누구?

1937년 부모가 다 교사인 가정에서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남. 1945년 첫 한글세대로 초등학교 입학. 1956년 경기여고 재학시 미술교사 김창억의 권유로 서울대 미대진학. 몸이 약해 수차례 산사에 머묾.

1961년 프랑스국비장학생 1호로 유학 떠남. 1963년 파리국립미술학교 입학. 1967년 프랑스에서 첫 개인전 1968년~1976년 8년간 프랑스인 남편과 한국 체류. 1990년 갤러리현대(서울 사간동) 개인전 등 한국과 프랑스에서 수십 차례 개인전. 1997년부턴 무직천에 작업시작. 2000년부터 윤경렬선생과 함께 경주의 불교유적을 프랑스에 알림.

21세기에 들어와 더 심화된 빛과 우주의 숨결을 명제로 일련의 작품을 발표. 물질성을 넘어서 시와 음악과 영혼의 울림이 있는 내면의 세계를 빛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음.

 아틀리에에서 작업을 하는 작가의 자세는 구도자적이다. 그는 1998년부터는 프랑스 학생들에게 서예도 가르치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도 서예가였다.
 아틀리에에서 작업을 하는 작가의 자세는 구도자적이다. 그는 1998년부터는 프랑스 학생들에게 서예도 가르치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도 서예가였다.
ⓒ 환기미술관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환기미술관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 1길 23 www.whankimuseum.org
전화: 02-391-7701~2 월요일 휴관 관람료 성인 7000원 중고생 5000원
교통: 지하철 3호선(경복궁역) 3번 출구 7022, 1020, 0212 버스 부암동사무소 하차
어린이를 위한 프로그램은 홈페이지를 참조하기 바람



#방혜자#빛의 숨결#생명의 숨결#평화의 빛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