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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이 지난 2005년 10월 장기수 정순택씨의 유해가 북쪽으로 송환될 수 있도록 도와준 한 후원자에 대해 국가보안법(국보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국정원 충북지부에서 지난 4일과 10일 두 차례에 걸쳐 어린이집(충북 청원군 강내면 소재) 보육교사인 윤태영(37)씨에게 "국보법 위반사건에 관해 문의할 일이 있으니 지부로 출석하라"는 출석요구서를 전달한 것.

 

국정원의 출석요구서에는 "정당한 이유없이 출석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형사소송법 규정에 따라 체포될 수 있다"는 '경고'가 명시돼 있었다. 하지만 윤씨는 국정원의 출석요구서 수령을 거부했으며, 현재까지 출석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

 

윤씨는 지난 2000년 9월 국정원 충북지부의 '노동단체 회원 프락치 강요사건'(일명 '새아침노동청년회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바 있다. 그는 당시 충북지역여성노조위원장으로 새아침노동청년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재독인사에게 장기수 유해 송환 부탁한 걸 문제삼고 있는 듯"

 

국정원의 출석 요구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윤태영씨는 국정원이 지난해 9월 7년간 어린이집과 한 시중은행이 거래한 내역을 조회했다는 사실을 올 7월 알게 됐고, 그로부터 두 달 뒤인 9월 초 출석을 통보받은 것.

 

국정원은 지난 8월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청주 거주 A씨(윤씨)에 대해서 국보법 위반 혐의로 수사중에 있다"며 "수사의 일환으로 2006년 9월 (윤씨의) 금융거래정보를 조회한 것은 적법한 절차를 통한 정당한 업무수행"이라고 해명했다.

 

국정원은 국보법 위반의 구체적 혐의에 대해 "현재 수사가 진행중이어서 밝힐 수 없다"며 "정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은 채 국보법 혐의자의 일방적 주장만을 보도하지 말아 달라"고 보도자제를 요청했다.

 

윤씨는 자신이 국보법 위반사건에 연루된 배경과 관련, "지난 2005년 장기수 정순택 선생의 유해를 북으로 보내기 위해 독일에 거주하고 있던 신옥자 선생과 전화통화한 것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당시 장례위원회는 정순택 선생의 유해 송환을 요구하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 선생이 북으로 송환되는 걸 원하셨기 때문에 10월 2일 새벽 신옥자 선생에게 연락을 취해 유해가 송환될 수 있도록 연결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렇게 두세 번 전화한 뒤 몇시간 만에 유해 송환이 전격 결정됐다."

 

윤씨는 "신옥자 선생은 1993년 이인모 선생 송환 때도 중간에서 역할을 하는 등 장기수 선생을 후원하는 데 앞장서온 분으로 알고 있다"며 "그분이 저와 통화한 뒤 주독일 북한대사관에 연락했고 몇시간 만에 북측이 유해 인도를 결정해 남측에 통보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윤씨는 "당시 신옥자 선생으로부터 '주독일 북한대사관과 연락이 됐고, 대사관에서도 알았다고 얘기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신옥자(66)씨는 범민련 유럽지역본부 중앙위원과 재독일동포협력회 부회장을 지낸 인사로 국정원은 신씨를 '친북인사'로 분류해놓고 있다. 그는 23년간 귀국이 금지됐다가 지난 2003년 '해외 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을 위한 범국민추진회'의 초청으로 귀국한 바 있다.

 

윤씨는 신옥자씨와의 친분과 관련, "제가 1998년부터 후원하던 정순택 선생이 '나를 오랫동안 후원한 분이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며 신옥자 선생을 소개했다"며 "선생의 유해가 송환되기 전 새벽에 신옥자 선생과 두세 차례 통화하고, 송환된 뒤 한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은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남·북 당국이 합의한 유해 송환에 국보법 적용?

 

'국정원이 재독인사 신옥자씨와의 전화통화를 문제삼는 것 같다'는 윤씨의 짐작이 맞다면, 그는 현행 국보법상 회합·통신죄를 적용받을 수 있다. 하지만 윤씨가 신씨에게 부탁한 것이 '장기수 유해 송환'이라는 인도적인 사안이었다는 점에서 국정원의 국보법 적용은 무리수라는 지적이 많다.

 

윤씨는 "신옥자 선생과 전화통화한 사실은 인정할 수 있지만 이것에 국보법 위반 혐의를 씌우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며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정순택 선생의 유해 송환을 요청하긴 했지만 남과 북의 당국이 합의해 송환이 이루어진 것 아닌가. 그런데도 국정원이 2년 전 일을 문제삼는 것은 당국간 합의를 뒤엎는 행위다."

 

윤씨의 지적대로, 장기수의 유해가 송환될 수 있도록 부탁한 것이  국보법 위반이라면, 당

시 북측의 유해 송환 요구를 수용한 남측 인사들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논리까지 가능해진다.

 

한편 국보법폐지국민연대 18일 오후 성명을 내고 "장기수 선생의 운구는 통일부의 협조를 얻어 북송할 수 있었다"며 "이런 인도적인 문제까지 걸어서 2년이 지난 시점에서 인권침해를 일삼으면서 국정원이 나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윤씨 조사에 의구심을 나타냈다.

 

국민연대는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축소조정 위기에 내몰린 과잉 비대화된 공안기구들이 다 잊혀진 사건까지 들추어내서 무리하게 국가보안법 사건을 기획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이런 국보법의 남용과 오용을 통한 과잉 비대화된 상태대로 공안기관을 유지하고 국보법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기도가 2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일어나고 있어 더욱 우려스럽다"고 꼬집었다. 

 

국민연대는 "국보법이 살아 꿈틀대는 한 냉전회귀를 꿈꾸는 공안탄압 역시 사라지지 않는다"며 "국회는 법사위에 계류중인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조속히 심의하여 연내에 국보법을 폐지하라"고 촉구했다. 


#윤태영#국정원#국가보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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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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