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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 출근하지 않지요?"
"두 번 째 토요일이니, 쉬는 날이지."
"그럼 좀 태워다 주세요."
"알았어."

부들 욕심은 찾아볼 수 없고
▲ 부들 욕심은 찾아볼 수 없고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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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기간의 계약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토요일도 일을 해야 하였다. 약속을 하였지만 아침에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시간이 촉박하였다. 부리나케 세면을 하고 양말도 신지 못하고 태워다 주었다. 도로는 한산하였다. 주 5일 근무제가 정착되었다는 것을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밀리지 않는 도로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약속이 있어요. 다녀오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들이 집을 나선다. 뒷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에 왠지 허전하였다. 무엇이 부족하여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채워지지 않는 것은 분명하고 확실하였다. 집안이 텅 비었다. 공간에 내려 앉아 있는 고요가 외로움을 키우고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이들이 언제까지나 옆에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사랑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하였다. 그들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내 생각일 뿐 아이들은 이미 멀어져 있었다. 그것을 나만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외로움 텅 빈 집에서
▲ 외로움 텅 빈 집에서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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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와 둘째는 이미 대학을 졸업하였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 것이다. 아이들은 이미 성인이고 그들의 영역과 생활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였다. 그런데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하였을까? 오히려 그들이 집안에만 안주하게 되면 더 큰 문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

막내는 중학교 2학년이다. 그런데 늦둥이마저도 사춘기라서 그런지 부정적이다. 아빠의 말을 제대로 존중해주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이 관철되지 않으면 반발한다. 심통을 부리는 차원을 넘어서 자기주장을 굽히려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당혹스럽고 난감하기만 하였다. 방법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집사람은 어떤가? 세상의 걱정과 근심을 모두 다 안고 있었다. 자신이 아니면 도저히 헤쳐 나갈 수 없으니, 그것을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쥐꼬리만한 월급으로 가정 살림을 꾸려나가려면 고등 수학을 푸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게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있으니,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못가에서 자라고 있는 부들이 떠오른다. 자생하는 부들은 원하는 것이 없다.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것으로 만족한다. 햇볕이 나면 나는 대로, 비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수용한다.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하고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근심 걱정은 없다.

밀려나고 제 일에 빠진 아이들
▲ 밀려나고 제 일에 빠진 아이들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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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에 비추인 모습은 낯설기만 하다. 분명 나인데 나 같지가 않다. 의식하고 있는 나의 모습은 힘이 넘치고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아름다운 청춘이다. 그런데 거울 속에는 얼굴엔 주름뿐이고 하얀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있다. 아니다. 이것은 분명 아니다. 어떻게 저런 몰골을 하고 있는 내가 나란 말인가. 인정할 수 없다.

주변을 둘러본다. 없다. 집안은 텅 비어 있으니, 인기척이 있을 턱이 없다. 밀려드는 고독이 참을 수 없게 만든다. 여기에 서 있는 나는 누구인가. 온 몸을 휘감아 내리는 외로움의 바람을 주체할 수가 없다. 안을 보아도 밖을 보아도 잡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인가 분명 잘못되었다.

분명 손에 쥐었었다. 쉬지 않고 달렸다. 하루도 빼지 않고 출근하였고 낭비한 적이 없다. 열심히 번 돈은 가족을 위하여 아낌없이 사용하였다. 가족을 위해서 지출할 때에는 주저하지 않았다. 나 자신의 호사를 위해서는 극한적으로 내핍하였다. 어쩔 수 없는 곳에만 소비하였을 뿐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니, 이렇게 허망할 수가 있단 말인가.

아이들은 제 갈 길을 가는데 바쁘다. 집사람은 자신같이 열심히 산 사람이 없으니, 존중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장인 나는 누구에게 보상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텅 빈 집안에서 고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적어진 시점에 서서 기습해오는 찬 바람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인생 모두 다 그런 것이여
▲ 인생 모두 다 그런 것이여
ⓒ 정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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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한 마음으로 서 있던 부들처럼 될 수는 없을까? 온몸에 배어드는 허전하고 처연한 기분을 채워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나만이 느끼는 기분일까?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 이순의 나이를 향해 가고 있는 과정에서 나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가 없다. 천장의 하얀 백지가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인생이 다 그런 것이여.'


#빈공간#허전#처연#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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