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추억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가리봉동'. 구로구청은 오는 10월 19일 가리봉동의 새로운 동명을 발표한다.
 추억 속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가리봉동'. 구로구청은 오는 10월 19일 가리봉동의 새로운 동명을 발표한다.
ⓒ 손기영

관련사진보기


박노해씨의 시집 <노동의 새벽>에 수록된 '가리봉시장'은 구슬프다.

모든 게 잊혀져간 꿈이 되어 그 빛을 잃어가
그를 아는 사람들은 소리 내어 찾지 않나
가리봉시장에 밤이 깊으면
가게마다 내걸어 놓은 백열전등 불빛 아래
따스한 열기가 오른다.… (중략)
허기지고 지친 우리 공돌이 공순이들이
이리 기웃 저리 기웃 구경만 하다가
허탈하게 귀가 길로 발길을 돌린다.
닿을 길 없는 가요 슬픈 마음뿐인걸
잊어야 하는 가요 슬픈 마음뿐으로
그를 아는 사람들이 소리 내어 찾지 않네.


개발지상주의, 디지털 시대 속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그늘지고 가려진 곳은 엄연히 존재한다. 가리봉시장은 <노동의 새벽>이 발간됐던 20년 전과 포장만 달라졌을 뿐, 많이 변하지 않은 '아날로그'였다.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 오래된 간판이 유행이 바란 듯 우두커니 서 있었다. 듬성듬성 붉은 중국어, 이국적인 목소리들은 여기가 새로운 사람들의 생활터전이 되어가고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이제 가리봉동이란 이름이 없어지고 새로운 동네이름 생긴다던데…."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가리봉동시장에서 이불가게를 하는 김정임(55)씨의 조그만 눈은 동그래졌다. 그녀는 30여 년 동안 시장터를 지키며, 가리봉동의 역사와 함께 했다. 그리고 '가리봉'에 대한 향수는 땀 흘려 일군 생활터전만큼이나 소중하다고 했다.

 구로공단의 전성기였던 1970~1980년대 가리봉시장은 '명동'에 버금갈 정도로 사람들로 붐볐고 번성했다고 한다.
 구로공단의 전성기였던 1970~1980년대 가리봉시장은 '명동'에 버금갈 정도로 사람들로 붐볐고 번성했다고 한다.
ⓒ 손기영

관련사진보기


"가리봉이 없어진다고? 지금 자네한테 처음 들었어. 세상 참… 뭐 윗사람들이 바꾼다고 하니깐 나 같은 사람이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마음 한 편이 허전하네… 그리고 옛날 생각이 들어. 난 70년 초 가리봉에 왔는데, 70·80년대 시장골목은 명동만큼 번성했었지. 옆에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어. 추석이고 설날을 앞둔 때면 정말이지 발 디딜 틈도 없었어." (웃음)

잠시 회상에 잠긴 김씨는 '가리봉'이라는 촌스러운 동네이름 때문에 가끔은 자식들에게 불평불만을 들었지만, 동창회에 나가서도 한 번도 가리봉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예전에 가리봉동 주변에 낡은 공장들이 많았지. 사람들이 거기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을 '공돌이', '공순이'라고 하면서 동네 이미지가 낡고 촌스러워 보였던게 사실인데, 여긴 70·80년대 우리나라 산업의 중심지였고 가난하고 힘들지만 내일의 희망을 꿈꾸던 사람들의 땀이 묻어 있던 곳이야. 나도 여기에서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가리봉'이란 이름은 내 삶의 한 부분 같아."

김씨의 이불집 옆에는 80년대 초부터 가리봉시장에서 옷 수선집을 운영한 이창근(53)씨가 있었다. 잠시 후 37년 가리봉 토박이, 가리봉 1동 27통 3반장 이대우(50)씨가 가게에 들어왔다. 

   37년 토박이 이대우 씨(50)가 '가리봉동'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며 담배를 피고 있다.
 37년 토박이 이대우 씨(50)가 '가리봉동'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며 담배를 피고 있다.
ⓒ 손기영

관련사진보기


이창근:
"그거 들었어? 가리봉동 이름이 바뀐다던데, 아까 이 친구한테 들어서 처음 알게 됐어. 나도 동네 소식통인데, 언제 그런 계획이 나온 거래?"

이대우: "나도 그동안 잘 몰랐다가 지역신문을 통해서 며칠 전에 뒤늦게나마 알게 됐지. 솔직히 우리 동네 이름이 좀 촌스럽기는 하잖아. 오죽 코미디프로 보면 맨 날 우리 동네 이름이 나오잖아. '가리봉동의 휘발유', '가리봉의 쌍칼'…." (웃음)

이창근: "아니 이름을 바꾸려면 이곳 주민들에게 잘 설명해야지,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고 갑자기 그러면 명함이고 가게간판이고 그런 건 어떻게 되는 거야. 한숨밖에 안 나온다. 그리고 우리 동네 이름이 뭐 어때서, 가리봉에 오래 살아서 그런지 '정'이가는 이름인데."

이대우: "근데 내가 알기로는 우리 동네가 개발된다는 말이 돌던데, 그것 때문에 동네이름을 바꾸려는 게 아닐까? 워낙 동네 이미지가 좀 그러니깐, 디지털단지나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 미리 땅값 올리려는 거지 뭐. 나도 형처럼 아쉬운 마음이 들어. 자꾸 옛날 생각이 나서… 이젠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우리 동네 이름 듣기 힘들겠어.… '가리봉 블루스'는 이제 끝난 거야." (쓴웃음)

이대우씨는 씁쓸한 마음을 달래려고 가게 밖을 나와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한숨 섞인 뿌연 담배연기. 오랜만에 맑게 갠 하늘은 그의 마음을 모르는 듯 무심해 보였다.

이씨는 가리봉동의 상징 '벌집촌(이곳 사람들은 쪽방을 벌집이라고 부른다)' 가는 길을 알려줬다. 시장을 따라 10분 정도 가자 높다란 경사가 나타났다.

'월세', '하숙'을 적은 푯말들이 대문 곳곳에 붙어 있었다. 70·80년대에 지어진 낡은 건물들은 오래된 영화 속에 한 장면 같았다. 이곳에서 30년 가까이 '벌집'을 운영한 임근순(70)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가리봉동의 상징 '벌집촌'으로 올라가는 길. 이곳 주민들은 쪽방을 '벌집'이라고 부른다.
 가리봉동의 상징 '벌집촌'으로 올라가는 길. 이곳 주민들은 쪽방을 '벌집'이라고 부른다.
ⓒ 손기영

관련사진보기


"여기에 있는 벌집은 단칸방에 욕실도 없어. 그리고 공동화장실을 써. 월 25만원에서 30만 원정도 주면 살 수 있는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람 많은 건 마찬가지야. 그때는 구로공단 여공들이 많이 살았는데, 지금은 중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살아."

가리봉동의 이름이 바뀐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임 할머니 역시 처음 들었다며, 나한테 자세한 내용을 물어봤다.

"총각한테 오늘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정말 갑작스러워서 마음이 진정이 안 되네… 내가 여기서 30년 정도 '벌집'을 운영하면서 동네에 정이 많이 들었지. 이곳 사람들은 가리봉 하면 '벌집'을 떠올리며 기억을 더듬는데, 가리봉이란 이름이 없어지면 '벌집'에 대한 향수도 없어질까 걱정이야."

과거 구로공단의 회색빛 이미지와 낙후된 지역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구로구청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16일까지 '가리봉동 새 이름 짓기, 도시브랜드 네이밍 공모전'을 벌이고 있다. 수상작 발표는 오는 10월 19일이고, 주민 과반수가 참여하는 설문조사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나오면 동명개정이 확정된다.

앨범을 펼쳐보면 화려했던 순간도 있지만, 더벅머리에 촌스러웠던 시절의 사진도 함께 있다. 하지만 "이게 뭐야? 저게 나였어?"라며 그 당시를 회상하는 목소리에는 훈훈한 정겨움이 묻어난다.

'가리봉'이란 이름에는 지나간 추억과 땀 흘려 일한 공간이 담겨 있다. 세련된 아름다움도 좋지만, 주민들이 기댈 수 있는 '조금은 촌스러운 추억'까지 지워버리는 건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가리봉동#가리봉#가리봉동 동명개정#가리봉동 새이름#구로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