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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칼레 해변 근처 말라위 호수
ⓒ 김성호
아침 새소리에 일어나니 숙소의 정원이 아름답다. '플래임 트리(Flame Tree, 불타는 나무)'라는 숙소의 이름답게 정원에는 빨강 장미와 흰 장미, 그리고 타자라 열차를 타고 오면서 보았던 다양한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특히 굵은 대나무들이 정원 한 편에 하나의 숲을 이루고 있었다. 토스트와 오믈렛, 커피로 아침식사도 제공하는데 말라위 원두커피 맛이 일품이다.

비피아 고원(Viphya Plateau)의 끝자락에 위치한 음주주는 해발고도 1280m로 고품질의 아라비카 커피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음주주 커피라는 이름으로 팔린다. 음주주 남쪽으로는 비피아 산맥에 560㎢ 넓이의 아프리카 최대 인공조림인 비피아 숲(Viphya Forest)도 있다.

음주주는 하루를 묵었는데도, 왠지 끌리는 도시이다. 고원지대의 시원한 바람과 커다란 가로수 길,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작은 언덕배기, 친절한 사람들, 아침에 마시는 음주주 커피의 은은한 향. 오래 머물러도 정이 가지 않는 곳이 있는 반면, 짧은 기간이지만 마음을 흔드는 곳이 있다. 에티오피아의 금단의 이슬람 도시 하라르도 120여 년 전 프랑스 천재시인 랭보의 마음을 이렇게 빼앗았겠지.

음주주에서 목적지인 은카타베이(Nkhata Bay)까지 가는 아침부터 고생길이다. 아침 8시 일찍 배낭을 메고 숙소를 나와 은카타베이로 가는 버스터미널로 걸어갔다. 전날 밤 택시로 5분 정도였기 때문에 걸어서 10분이면 충분한 거리이다. 그런데 마음을 놓고 걷다보니 버스터미널을 지나쳐 한참을 헤매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도 가리키는 버스터미널이 각각 다르다. 대형 버스 정류장과 단거리 봉고버스 정류장, 길거리 정류장 등…. 듣는 사람에 따라 터미널의 의미를 달리 해석하니 정류장이 다를 수밖에.

거의 한 시간을 헤매다 결국 나는 음주주 경찰서 옆의 언덕배기까지 올라갔다. 그곳에 앉아 있는 현지인 남자 2명과 여자 1명에게 "은카타베이 가는 차를 어디서 타느냐"고 묻자 손으로 땅을 가리키며 "여기서 타면 된다"고 한다.

도대체 버스정류장 팻말도 없는 길가에서 어떻게 버스를 탈까 궁금해하면서도 한번 기다려 보기로 마음먹었다. 아침부터 배낭을 메고 헤매다 보니 힘이 들었다. 예상치 못한 이른 아침 고난의 행군으로 온 몸이 흠뻑 땀에 젖었다.

▲ 말라위 호수의 치칼레 해변
ⓒ 김성호
마톨라 타고 은카타베이로 간다

지나가는 봉고버스를 쫓아가며 "은카타베이"라고 내가 외치자 운전사가 "아니다(No)"며 그냥 달린다. 언덕배기에 앉아 있던 젊은이는 "걱정하지 마라. 다른 차들도 많이 온다"고 나를 위로한다. 서두르지 말고 기다리라는 말이다. 정말 아프리카의 '하쿠나마타타(걱정하지 마라, 다 잘 될 거야) 정신'이고 '뽈레뽈레(천천히 천천히) 자세'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느긋할 수가 없었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데다 정류장을 찾느라 아침부터 한 시간 이상을 허비했기 때문이다. 조금 있다가 1.5t 트럭이 지나가자 젊은이가 "마톨라, 마톨라" 하면서 나에게 뛰어가 타라고 손짓을 한다. 트럭 뒤의 짐칸에 타고 가라는 것이다. 트럭을 쫓아가며 "은카타베이, 은카타베이"라고 소리치자 트럭이 선다.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 차장이 트럭 짐칸에 올라타라고 한다. 배낭을 벗어 먼저 짐칸에 올려놓고 남자 차장이 내미는 손을 잡고 짐칸에 올랐다. 7~8명의 젊은이들이 이미 짐칸의 난간에 걸터앉아 있었다. 나는 짐칸 바닥에 실린 나무 막대기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짐칸에는 커다란 통나무들이 실려 있었다. 그 옆에 상추와 당근, 멕시코 고추 등 채소를 싼 보따리들이 놓여 있다.

젊은이들은 위험하지도 않은지 난간에 엉덩이를 걸터앉고 손짓을 하면서 옆에 있는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가 타고 가는 트럭은 말라위에서는 엄연히 대중교통 수단이다. 젊은이가 말했듯 '마톨라(Matola)'라고, 짐과 승객을 함께 태우고 다니는 픽업트럭 같은 작은 트럭을 이렇게 불렀다. 마톨라는 버스터미널도 미니버스와 같이 사용한다. 일본 닛산 자동차에서 나온 픽업트럭의 이름을 따서 바키에(Bakkie)라고도 한다.

아프리카 여행 중 트럭을 타고 가기는 처음이다. 조금 지나자 아기를 업은 30대 초반의 여자가 뭔가를 가득 담은 흰 자루를 싣고 탄다. 요금은 200콰차를 받는데, 보통 봉고버스와 차이가 없다. 한두 명 중간에 더 태우더니 30분 정도 지나 약간 높은 언덕배기에 있는 한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정말 장난이 아니다. 가을걷이 뒤의 볏짚더미처럼 짐들이 산더미로 쌓여 있었다. 모두 트럭에 실을 짐들이다. 감자와 고구마를 잔뜩 담은 자루와 땔감용 나무를 담은 자루가 10여 개 넘고 바나나를 담은 자루도 보인다. 트럭 짐칸에 짐들이 차곡차곡 실린다. 짐을 싣는 데 10여 분이 걸린다. 트럭 짐칸의 3분의 2가 짐으로 가득 쌓였다.

짐이 높이 쌓이다 보니 트럭이 마치 작은 동산을 싣고 가는 것 같다. 밧줄로 여러 차례 짐을 묶었으나 떨어질 것을 우려해서인지 젊은 차장은 아예 짐 꼭대기로 올라가 손으로 짐을 감싸고 있었다. 끌어안고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짐들이 트럭에서 주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승객들은 짐칸 중심에서 난간 쪽으로 밀려났다.

▲ 내가 묵었던 은카타베이의 은자야 롯지(왼쪽 갈대 오두막)
ⓒ 김성호
시장에 농산물을 팔러 가는 아프리카 아낙네들

젊은이들은 이곳이 목적지인 듯 대부분 내리고, 대신 짐을 실은 아낙네 8명이 젊은이들을 대체했다. 짐칸 앞쪽으로 나와 다른 남자 한 명, 8명의 아낙네가 옹기종기 다리를 모아 앉았다. 아낙네들은 자신들이 농사지은 것을 은카타베이 시장에 내다 팔러 가는 여자들이다.

어디나 농작물을 시장에 내다파는 몫은 억척스런 시골 아낙네의 몫이다. 10여 명이 짐칸 앞쪽과 난간 주변에 간신히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있는데, 뒤늦게 50대 초반의 여자가 허겁지겁 뛰어와 트럭에 오른다. 보통 사람의 두 배나 되는 뚱뚱한 체격의 여자이다. 엉덩이를 쭉 빼어 앉아있는 사람들 사이로 몇 번 흔드니 한 치의 틈도 없던 공간에 신기하게도 그 여자의 자리가 마련된다.

그러나 역시 불편했던지 앉아있던 젊은 남자 승객 1명은 일어서서 트럭운전석 바깥 뒤쪽의 난간을 잡고 서서 간다. 9명의 여자 중 5명은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모두 어린 아기를 업거나 안고 있는 젊은 엄마들이다. 애가 보채면 젖을 먹이기도 한다.

젊은 아낙네들은 아기에게 젖을 먹이면서도 수다를 떨기 바쁘다. 젖이 모자라는지 아기가 울면서 보채자 길가에 팔고 있는 오렌지를 사서 껍질을 벗기고 아기 입에다 물려준다. 신기하게도 아이가 울음을 멈추고 오렌지를 열심히 핥는다. 다른 4명의 여자는 50대 초반에서 60대 중반 사이인데 과묵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라위에서 마톨라는 물건을 팔러가는 여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이었다. 미니버스나 봉고버스는 큰 자루나 짐을 실을 수 없으니 트럭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아프리카에서 봉고버스나 미니버스가 승객과 작은 짐을 싣고 간다면, 마톨라 같은 트럭은 승객과 큰 짐을 실어나르는 대중교통수단으로 역할분담을 하는 셈이다.

▲ 은자야 롯지 나무줄기에 새겨진 조각품
ⓒ 김성호
이름 값하는 배낭여행객의 전설적 숙소 은자야

마톨라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고 1시간 30분 만인 오전 11시께 은카타베이(Nkhata Bay)에 도착했다. 높은 언덕길을 달리던 마톨라가 갑자기 내리막길로 달리자 호수가 보이고 은카타베이가 나타났다. 음주주에서 은카타베이까지는 칸돌리 산맥의 고원지대를 달려왔다.

말라위 호수의 푸른 물이 코 앞에 다가와 있었다. 선착장에는 배가 정박해 있었는데, 이 배는 일라라(Ilala)라는 여객선으로 북쪽으로는 칠룸바까지, 남쪽으로는 몽키베이까지 운행한다. 은카타베이는 그리 크지는 않지만, 호수가 육지 속으로 깊게 파고 들어온 전형적인 만(灣, Bay)이다. 거리의 노점에는 각종 농작물과 물고기를 파는 행상들이 북적거렸다. 시장터이다. 마톨라에 짐을 싣고 온 아낙네들도 바로 이 곳 시장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온 것이다.

마톨라에서 내린 나는 은타카베이 시내에서 걸어서 은자야(Njaya) 롯지라는 숙소를 찾아갔다. 은자야 롯지는 내가 음주주 숙소에 머물 때 직원이 적극 추천해준 곳이다. 직원은 "은카타베이에서는 은자야 롯지가 최고"라며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해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공예품 가게들과 경찰서를 지나 운동장이 보이는데, 운동장에는 젊은이들이 웃통을 벗고 축구를 하고 있었다. 나무숲이 우거진 언덕길로 올라가니 길옆의 공예품을 파는 거리 상인들이 "헬로우" 하면서 나를 부른다. 허름한 시멘트 건물에서는 남자들이 닭모가지를 비튼 뒤 뜨거운 물로 털을 뽑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언덕길의 숲 속을 30여 분 정도 걸어 올라갔다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치칼레 해변(Chikale Beach)이 나왔다. 치칼레 해변을 지나 다시 언덕으로 조금 오르니 내가 찾는 은자야 숙소가 보였다. 말라위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장소에 있었다. 배낭여행객들 사이에서도 말라위에 가면 반드시 가봐야 하는 '전설적인 숙소'로 불린다. 빈 말이 아니었다.

작고 예쁜 하얀 모래사장의 치칼레 해변에 맞닿은 곳에 대나무와 갈대로 지은 반다(Banda)라는 오두막집에 들어갔다. 미국 돈으로 8달러였다. 호수 위에 반쯤 떠 있는 듯한 갈대 오두막이었다. 망고나무와 무화과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항상 시원한 그늘이 드리우고 있었다.

갈대 오두막 옆의 나무에는 누군가 조각해 놓은 남녀 전신과 별 모양의 나무 조각품이 인상적이다. 원래 말라위는 나무와 상아로 만든 조각품이 유명하다. 그 위쪽으로는 캠핑장도 있어 유럽의 젊은 남자 2명과 여자 1명이 텐트 밖에서 코펠에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숙소에는 야외 식당과 바가 있는데,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바로 위에 있어 경치가 환상적이다. 호수의 풍경에 취해 점심을 먹는데 경비요원이라는 젊은이가 슬그머니 다가와서 다정하게 묻는다.

"담배를 피우느냐."
"담배를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담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는데도 그는 "맛이 황홀하다"며 담배 피우는 시늉을 하면서 종이에 돌돌 말린 것을 꺼냈다. 마리화나였다. 내가 고개를 젓자 그때야 물러난다. 아프리카 여행 중에는 숙소나 술집 바에서 가끔 이런 유혹을 받는다.

▲ 구름을 뚫고 말라위 호수에 비추는 햇살
ⓒ 김성호
카누는 말라위 호수에서, 카약은 잠베지 강에서

오후의 한 때를 말라위 호수에서 카누를 타고 놀거나 물놀이를 하면서 보내면 좋다. 치칼레 해변뿐 아니라 수영이나 스노클링·카누·카약·윈드서핑·스쿠버다이빙 등 물놀이의 천국이기도 하다. 나는 치칼레 해변에서 카누를 타고 선착장 근처의 아쿠아 아프리카라는 해상스포츠센터로 갔다.

내가 앞에서 노를 젓고 젊은 남자 안내자가 뒤에서 젓는데, 노를 젓는 두 손이 꼬이고 힘이 든다. 그래도 젓는 노에 따라 배가 쑥쑥 호수를 가르며 나아가니 먼 항해를 하는 느낌이 든다. 가끔씩 물이 튕기며 옷에 젖지만 오히려 시원하다. 카누나 카약을 타는 묘미를 조금은 알 것만 같다.

카누는 말라위 호수같이 잔잔한 곳에서 노를 저어가며 명상을 하는 놀이라면, 카약은 물살이 있는 강물을 헤치며 나아가는 역동적인 놀이이다. 실제로 말라위 호수에서는 카누를 타는 젊은이들을 많이 볼 수 있고, 잠비아의 빅토리아 폭포 아래 잠베지 강에서는 급물살을 즐기며 카약을 타는 젊은이들을 많이 보게 된다.

아쿠아 아프리카 해상스포츠센터에 도착하니 유럽의 젊은 여자 여행객 3명이 호수 해변에서 산소통을 짊어지고 스쿠버다이빙 초보과정을 배우고 있었다. 산소통을 입에 대고 물속에 들어갔다 2~3분도 안 되어 솟아오른 뒤 "휴~" 하는 한숨을 내쉰다. 사무실 직원에게 "스쿠버다이빙은 며칠 정도 배워야 하느냐"고 묻자 "초보자는 최소 5일은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다시 카누를 타고 돌아와 치칼레 해변에서 혼자 수영을 하면서 오후 시간을 보냈다. 호수는 바다와 달리 물이 짜지 않기 때문에 하루종일 물 속에 몸을 담가도 피곤하지 않고, 바닷물보다 따뜻해 수영하기도 편했다.

▲ 말라위 호수의 시클리드 일종인 음부나(앞쪽 푸른색이 수컷, 뒤쪽 어두운색이 암컷)
ⓒ 김성호
세계에서 가장 인기있는 수족관 열대어 음부나

말라위 호수에서 물놀이의 최대 매력은 놀랄 정도로 아름답고 다양한 물고기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스노클링 장비 없이 맨 눈으로 물 속을 헤엄쳐다니는 물고기를 훤히 볼 수 있다. 2~3m 깊이 정도의 물속은 물고기 비늘의 움직임까지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말라위 호수는 맑고 깨끗하다. 최대 가시거리가 20m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맑은 호수 중 하나이다.

물고기 종류도 바다에 뒤지지 않는다. 빨갛고 노랗고 파란색의 물고기와 주황, 은빛, 하얗고 검은 줄의 물고기 등 무지개색이 모두 모여 있다. 열대어 수족관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바위틈 사이를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고 다니는 물고기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말라위 호수에는 모두 500여 종의 물고기들이 살고 있는데, 대부분 암놈의 입안에서 알을 부화하거나 새끼를 기르는 시클리드(Cichlid)라는 물고기이다. 시클리드에는 붕어같이 생겨 말라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참보(Chambo)와 은빛으로 물속을 떼를 지어 다니는 우타카(Utaka) 등이 있는데, 말라위 여행 중 식당이나 행상들이 참보 물고기를 파는 장면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말라위 호수의 시클리드 물고기 중에서는 음부나(Mbuna)가 가장 유명하다. 음부나는 작지만 화려한 색깔의 물고기로 수족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상용 열대어이다. 말라위 호수에서 볼 수 있는 시클리드의 대부분이 음부나이다.

음부나는 현지어로 '바위 물고기(Rock Fish)'라는 뜻으로 말 그대로 바위틈새에 산다. 탁 트인 물속에서 떼를 지어 헤엄치며 사는 우타카와 그런 점에서 다르다. 우리나라 수족관에서 키우는 열대어의 대부분도 바로 이 음부나이다.

말라위 호수의 음부나가 수족관 관상어로서 인기를 끄는 것은 금속처럼 반짝거리는 파란색과 붉은색·노란색 등의 다양하고 화려한 색깔을 가진 수컷 때문이다. 꿩이나 공작, 원앙새 등 일반 새들이 암컷보다 수컷이 더 화려하듯 음부나 물고기도 수컷이 훨씬 더 화려하다. 새나 음부나의 수컷이 화려한 것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짝짓기용이다.

수족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음부나는 몸통이 노랗고 지느러미 끝만 약간 검은 일렉트릭 옐로우 시클리드(Electric Yellow Cichlid)와 얼룩말 무늬모양의 빨간 얼룩말 시클리드(Red Zebra Cichlid) 등이다.

말라위 호수는 잔지바르 바다보다 더 맑고 깨끗하다. 호수에는 바다처럼 해초나 조개류가 없기 때문이다. 호수에는 바다와 달리 커다란 파도도 없어 잔잔한 바람결에 따라 움직이는 물결의 지문만이 있을 뿐이다.

▲ 바위 틈을 헤엄쳐 다니는 말라위 호수의 시클리드 일종인 음부나 떼
ⓒ 김성호
500여종의 시클리드, 조상은 하나

말라위 호수에 있는 시클리드는 진화생물학자들에게는 진화연구의 보고와도 같다. 찰스 다윈이 갖가지 종의 분화를 통해 '종의 기원'을 발견한 갈라파고스 섬보다 더 다양한 생물진화의 표본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말라위 시클리드를 대표하는 16종의 유전자(DNA)를 검사한 결과 동일한 종에서 나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는 70만 년 전에 1가지 단일 종에서 현재 말라위 호수에 있는 500여 종의 모든 시클리드가 진화를 해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시클리드가 사는 대표적인 아프리카의 3개 호수는 말라위 호와 탕카니카 호, 빅토리아 호 등으로 모두 동아프리카 지구대에 형성된 호수이다.

진화학자들은 단시간 내에 이처럼 한 종이 급속히 다른 종으로 분화하면서 진화한 것은 지형적인 고립 때문으로 보고 있다. 호수 자체가 고립되어있는데다, 바위틈에 사는 음부나 등이 바위지대를 벗어나지 않다 보니 호수 안에서도 서로 종의 교류가 일어나지 않고 고립되어 지역에 따라 다른 모양과 색깔로 진화하게 된 것.

말라위 호는 면적이 3만㎢로 아프리카에서 빅토리아 호와 탕가니카 호에 이어 세 번째로 큰 호수이다. 에티오피아 바하르다르의 타나 호수에서 통통배를 몰던 젊은이가 "타나 호가 아프리카에서 3번째로 크다"고 말한 것은 터무니없는 과장이었다. 타나 호는 면적이 3500㎢에 불과해 말라위 호의 10분의 1 정도이다.

▲ 해질 무렵의 말라위 호수 모습
ⓒ 김성호
호수와 바다는 모든 점에서 사뭇 달랐다. 말라위 호수와 인도양의 잔지바르 바다가 그랬다. 바다가 여행객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면, 호수는 차분하게 만든다. 바다가 젊음의 열정이라면, 호수는 인생의 평온함이다. 잔지바르의 바다가 홀로 떠난 여행객에게 응어리진 고독감의 회오리를 일으켰다면, 말라위 호수는 마음 속 깊숙한 사색의 평화를 가져왔다.

해질 무렵 말라위 호수 주변은 물결부터 잠잠해지고 평온해진다. 저녁노을이 다양한 색감을 띠고 살며시 다가온다. 저녁노을이 잔잔한 호수에 비치면서 마치 무지개가 동에서 떴다 서쪽으로 지는 것 같다.

말라위의 호수 해넘이는 잔지바르의 바다 해넘이와 다르다. 해가 숙소 뒤쪽의 산으로 넘어가면서 지니 호수 위의 구름은 점차 붉은 띠를 띠더니 서서히 어두워진다. 말라위 호수에서는 해가 져도 어둠이 번개같이 찾아오지를 않는다. 해가 호수로 떨어지지 않고 산 쪽으로 넘어가면서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기 때문이다. 잔지바르 바다에서는 해가 바다 속으로 풍덩 빠지니 해넘이와 어둠은 동시에 찾아온다.

▲ 은자야 롯지에서 바라본 말라위 호수의 해넘이
ⓒ 김성호
밤하늘의 별들이 국제회의를 한다

말라위 호수의 진짜 아름다움은 밤에 찾아온다. 저녁 7시 어둠이 호수를 휘감자 어느새 밤하늘에 하나 둘 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어둠이 짙을수록 별들은 더욱 빛나고 그 수도 어둠만큼 많아진다. 어느새 말라위 호수 위에는 별들이 촘촘히 모여들었다. 밤하늘 한가운데 가장 빛나는 행성은 금성이고, 별 중에서 가장 밝은 시리우스도 보인다. 시리우스는 몇 개의 별을 모아 큰개자리를 만들고 있다.

전갈자리도 참석했고, 이리자리·용골자리·남십자자리·궁수자리·켄타우루스자리도 모였다. 남반구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별자리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말라위 호수 위로 찾아든다. 여행 중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별들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은 말라위 호수와 마다가스카르의 밤하늘이다.

밤이 되면 말라위 호수의 밤하늘은 아프리카 별들의 모임장소이다. 하늘을 자세히 올려다보니 별들이 그냥 노는 것이 아니다. 무슨 심각한 회의를 하고 있다. 역시 사회자는 가장 밝은 큰개자리의 시리우스이다. 아프리카의 빈부격차와 가뭄·기아, 소말리아와 수단 다르푸르 내전종식, 선진국으로부터의 부채탕감, 지구온난화와 에이즈예방 교육, 마운틴고릴라 등 멸종동물 보호문제 등을 논의하고 있었다.

별들은 저 멀리 에티오피아에서부터 케냐·탄자니아·우간다·남아공·나미비아, 마다가스카르 섬에서 참석한 각 나라의 대표자들이다. 낮에는 각 나라에서 공무를 맡고 밤에 말라위 호수로 날아와 회의를 한다. 말라위 호수의 하늘은 이처럼 매일 밤이 되면 아크로폴리스 광장으로 변해 아프리카 국가 53개국이 참석한 아프리카연합(AU) 정상회의가 열린다.

▲ 푸른 말라위 호수에 떠 있는 나룻배
ⓒ 김성호
가장 아름다운 어느 한 독일 중년부부의 포옹

나 혼자 아프리카 밤하늘을 지켜보고 있는데, 뒤늦은 저녁 식사를 마친 독일에서 온 6쌍의 중년 부부들이 별자리를 보기 위해 밖으로 나온다. 은자야 숙소에는 낮에는 호수를 내려다보고 밤에는 별자리를 올려다볼 수 있는 나무로 된 야외 베란다가 식당 밖에 만들어져 있다. 식당에 호롱불 한두 개만 켜져 있고, 온통 어둠뿐이다.

야외 베란다에서 하늘의 별을 쳐다보던 50대 중반의 독일부부 한 쌍이 갑자기 서로 끌어안는다. 남편은 아내의 어깨를, 아내는 남편의 허리를 끌어안고 어쩔 줄 몰라 한다. 너무나 좋아 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한다. 마치 20대 젊은이의 첫사랑처럼 기뻐한다.

말라위 호수에 떠있는 밤하늘의 별은 중년의 부부도 사춘기 연인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무뚝뚝하기로 소문난 독일 사람들까지도. 주위의 아무리 예쁜 남녀라 하더라도 자신과 20~30년 살을 붙이면서 살아온 남편과 아내보다 더 아름답고 소중한 사람이 어디 있으랴. 오래 묵은 사랑이 풋풋한 사랑보다 더 아름답다는 것을 독일 부부는 말해준다. 독일 부부의 포옹은 나의 아프리카 여행 중 가장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독일의 중년부부는 자신들의 행동이 민망했던지 같이 온 다른 부부들을 바라보면서 "하늘이 멋지다(Nice Sky)"고 말한다. 다른 부부들도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으면서 빙그레 웃는다. 잔지바르의 왕궁박물관 앞에는 "공공장소에서 입키스 하지마세요"라는 경고 팻말이 달렸으나, 말라위 호수에는 '애정표현 자제' 팻말은 어디에도 없었다. 말라위 호수의 별은 서로 끌어당기게 하는 묘한 힘을 갖고 있다. 밤하늘의 별들이 "사랑을 확인하려면 말라위 호수로 오세요"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밤하늘의 별들이 되돌아갈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 나는 밤 10시께 호숫가 숙소로 내려왔다. 호수와 맞붙어 있는 갈대 오두막집의 침대에 누우니 "철~렁, 철~렁" 하는 물소리만 들린다. 잔잔한 물소리 다음에는 무서울 정도로 짙은 어둠이 갈대 사이를 뚫고 나의 방안으로 밀물 듯이 밀려왔다.

▲ 말라위 호수의 해돋이 장면
ⓒ 김성호
사랑을 확인하려면 말라위 호수로 가세요

다음날 아침 6시 오두막에서 나오니 벌써 호수 위에 해가 절반쯤 떠서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밤사이 별들과 어둠이 물러가고 말라위 호수는 푸른색의 본래 색깔을 되찾고 있었다. 호수 위에 비추는 햇살은 말라위라는 나라의 이름으로 녹아있다.

'말라위(Malawi)'는 16세기 후반에 세워졌던 마라비(Maravi) 왕국의 의미도 있지만, 체와어로 햇살이라는 뜻의 '말라비(Malavi, Maravi)'에서 나온 것. 말라위는 바로 '호수에 떠오르는 햇살의 나라'를 의미한다.

은카타베이는 항구도 있고 어시장과 아름다운 해변이 있는 작지만 가장 경치가 좋은 호숫가 마을이다. 호수의 아름다움과 밤하늘을 바라보는 기쁨을 맛보려면 은자야 롯지가 최고이다. 음주주의 여행객 숙소 여자직원이 나에게 추천했듯 나도 누군가에게 똑같은 추천을 하고 싶은 곳이다.

낮에는 호수 바위틈에서 노란 음부나와 은빛 음부나 암수가 커다란 눈망울을 다정스럽게 맞추고, 밤에는 호수 위의 하늘에서 별들이 사랑을 속삭이고, 땅에서는 여행객들이 밤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곳. 이런 곳에 대한 기대 때문에 우리는 힘든 배낭을 메고 여행을 떠나는지도 모른다.

"사랑을 확인하려면 말라위 호수로 가세요."

#아프리카#말라위 호#은카타베이#음주주#시클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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