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채중, 넉넉한 품을 지닌 그도 42년의 교육 인생을 마감하고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을 것이다.
김채중, 넉넉한 품을 지닌 그도 42년의 교육 인생을 마감하고 이제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을 것이다. ⓒ 임현철
"신의를 지켜라. 타인에게 욕이 될 수 있는 판단은 내리지 마라. 사회에 나가 큰 사람이 되지 말고, 바른 사람이 되어라!"

아버지의 가르침에 대해 자녀가 전하는 메시지다. 자녀가 큰 사람이 아닌 바른 사람이 되길 바랐던 아버지. 비단 자녀만이 바른 사람이 되길 바라진 않았을 터.

김채중. 정년 퇴임식이 열릴 29일, 지인의 요청으로 그를 만났다. 왜냐면 마지막을 빛내주고자 하는 지인의 마음이 예뻐서. 김채중, 그가 42년간 몸담아 온 교육계를 떠나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기에, 과감히 마지막이 될 자리에서 그를 만났다.

첫인상은 훤칠한 키에 어울리게 우람하고 호리호리한 풍채여서 '호탕'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벗어진 이마, 흰 머리, 2대 8 가르마가 지나 온 세월을 말해주는 것 같다.

'명함', 그건 껍데기 아닐까?

처음 만나면 보통 명함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명함 교환 시간이 생략되어 일부러 명함을 요청한다. "이제 아무 쓸 데 없는 사람인데 명함이 무슨 필요 있냐?"면서 "마지막으로 주는 명함이다"라며 슬쩍 내민다.

어느 화가가 그린 그의 초상화.
어느 화가가 그린 그의 초상화. ⓒ 임현철
그의 명함을 살핀다. 전라남도광양교육청 교육장 김채중. 그리고 주소와 사무실, 자택,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다. 명함에 나타난 '전라남도광양교육청 교육장 김채중'. 이것이 그의 삶을 대변하진 못할 것이다.

문득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교육에 대한 열정과 우여곡절, 마음 졸이던 순간, 좌절, 환희의 과정이 빠져 있는 껍데기가 아닐까?'란 생각이 스친다.

명함은 모르는 상대에게 자신의 존재가치를 드러낼 유일한 것이다. 그러나 명함은 때때로 '우월의 상징'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럴 때 명함은 자신의 삶의 질곡을 담지 못하는 '허세의 명함'일 뿐이다.

김채중, 그도 이제 불과 몇 시간 후면 허세의 명함을 벗어던지고 '자연의 명함'을 가져야 할 시간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초상화 한 점이 한쪽에 놓여 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눈다.

"저 그림, 좋은데요?"
"어느 화가가 사진 한 장 달라길래 줬더니 이틀 전에 저렇게 그려 왔다. 미안한데 화가 이름도 모르겠다. 고마울 따름이다."

"사모님의 신랑 정년퇴직에 대한 평은?"
"고생했다, 푹~ 쉬어라. 당신 때문에 대접받고 잘 살았다. 자기는 행복했다 한다."

"애 개개~, 그거 말고요?"
"허~허. (할 수 없지 하는 표정으로) 벌써 구박하는 게 느껴져 '푸대접하지 마라 그랬는데 벌써 푸대접이냐!' 했더니, 어느 강의에서 '퇴직하는 사람들은 서운할 일이 많으니, 남편이 무슨 말하면 옳소, 맞소, 졌소 이 3소만 해라' 그랬다나. 아내도 거기서 배운 3소만 한다는데 모르지…."

젊었을 때 아내 고생시킨 이들은 나이 들어 '대로 주고 말로 받는다' 던데, 행여 구박일까, 걱정이다. 사모님의 '행복했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밖에.

평교사를 존경하는 풍토 되어야

계속해서 전화벨이 울어댄다. 웃음 속에 "직원들하고만 하기로 했으니 오지 마라, 정년퇴직 자리에 와 봐야 만날 사람도 없고 반길 사람도 없다, 고맙다" 등의 이야기가 흘러든다.

"42년의 세월에 아쉬움이 많을 텐데…."
"(잠시 눈시울이 촉촉해지며) 후회 없다. 일을 더 할 수 있는데 나이 들어 못하는 것이 제일 아쉽다. 호적에 늦게 올라 친구들보다 2년 더 근무해 여한은 없다. 돌이켜 보면 이제야 교육에 대해 알 것 같고, 이제는 좀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후배들이 더 잘할 것이다."

"교육에 대한 생각은?"
"교육은 현장이 중요하다. 나는 그러지 못했으나 페스탈로치처럼 죽는 날까지 아이들 옆에서 가르치는 게 바람직하다. 교육 현장에서 직접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존경 받아야 한다. 그러나 사회 풍토는 평교사를 존경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학부모들은 50살 넘은 선생님이 담임을 맡으면 싫어한다. 이게 문제다. 교장이나 교감, 장학사, 교육장보다 평교사를 더 존경하는 풍토가 되어야 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평생 교단에서 묵묵히 아이들과 마주하며 애쓰는 선생님들이 존경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멀었다. 흔히 '법조계와 교육계가 변하면 다 바뀐다'는 소릴 자주 접하니까. 하지만 후손들이 살아야 할 세상이란 이유만으로도 희망을 버릴 수가 없다.

"현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

중국에서 다니러 온 둘째 딸 가족(뒤 왼쪽에서 시계방향으로 김성훈, 김주원, 김다영, 김진영)이 미리와 한쪽에 조용히 앉아 퇴임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에서 다니러 온 둘째 딸 가족(뒤 왼쪽에서 시계방향으로 김성훈, 김주원, 김다영, 김진영)이 미리와 한쪽에 조용히 앉아 퇴임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 임현철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현재의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능력껏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최선을 다해도 안 되는 건 하늘의 뜻이 그렇다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 때 열심히 할 걸 후회해도 소용없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 이야기 좀 진지하게 들으려 했더니 사람들이 밀려들어 어쩔 수 없이 떠밀려 나온다.

김채중 광양교육장의 퇴임식장을 둘러본다. 식전이라 텅빈 중에 아이들이 눈에 띈다. "가족까지 오지 마라 했는데 중국에서 사업하다 이번에 다니러 온 자식은 차마 거절 못했다"던데 눈치로 보아 그들이다.

"집에서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셨는지 궁금하네요?"
"밖에서는 잘 모르지만 집에서나 밖에서나 곧은 마음을 가지신 아버지셨죠. 그리고 항상 노력하시는 아버지셨구요. 자식에게도 스스로 하게끔 묵묵히 지켜보시던 분이어서 공부도 스스로 원해 하도록 했어요. 그리고 신의를 지켜라. 타인에게 욕이 될 수 있는 판단은 내리지 마라. 사회에 나가 큰 사람이 되지 말고 바른 사람이 되어라! 했구요."

표정 밝은 맑은 얼굴의 둘째 딸, 자랑스럽게 대답한다. 삶에서의 덕은 약하고 힘이 없을 때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법.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를 좋아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모아 건강을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365, SBS U포터, 다음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채중#퇴임식#광양교육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