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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응, 진호구나. 귀한 놈 많이 컷네."

초등학교 2학년인 진호는 외사촌 동생 아들 녀석이다. 내가 귀한 놈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은 이유가 있다. 외사촌 동생이 잘못되었더라면 그 녀석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10년 전 이맘때다.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 끝물에 누나네 가족과 외사촌 가족, 우리 가족은 때늦은 피서를 매형 고향인 고흥 녹동으로 1박 2일 갔다. 첫날은 녹동 앞바다의 아름다운 섬들을 어선을 타고 구경했고 저녁에는 바닷장어를 구워먹으며 쏟아지는 별, 바닷바람, 파도소리 술과 함께 밤바다 풍경을 만끽했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가족들 대부분이 바닷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큰 일이 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외숙모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렸다.

"성민이 아빠가 물에 빠졌다. 어쩌냐, 어쩌냐." 바다를 가리키며 어쩔 줄을 모르셨다.

모래사장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동생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가까운 곳도 아닌 바닷속으로 동생을 구조하러 간다는 것은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우리가 있는 곳에서 500여m에 있는 수상구조대로 달려갔다.

아마도 내 생애에 500여m 신기록이 나왔을 게다. 그런데 구조대원이 한 명도 없었다. 이리저리 둘러보았지만 없었다. 마치 눈앞에 마이크가 보였다. 뭐라고 방송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 방송을 듣고 곧바로 구조대원은 왔지만 내 다리에는 힘이 빠져 있었다. 서둘렀지만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못된 생각이 들어서였다.

구조대원과 현장으로 달려가는데 멀리 고무튜브를 들고 외사촌동생이 있는 곳으로 열심히 수영해 가는 사람이 보였다. 매형이었다. 내가 수상구조대로 갔을 때 누나는 텐트로 달려가 매형한테 상황을 설명했던 것이다.

녹동 바닷가가 고향인 매형의 수영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파도가 있어 접근이 어려웠지만 동생에게 고무튜브를 잡게 밀어주었다. 동생은 튜브를 간신히 잡았고 매형은 수영을 해 바닷가로 나왔다. 급한 가운데도 고무튜브를 가져간 매형의 지혜도 대단했다.

사람이 물에 빠지며 의식하지 못하게 뒤로 헤엄쳐 가서 접근, 머리 뒤에서 머리카락이나 턱을 잡고 구조하거나 의식이 있으면 나뭇가지나 끈 고무튜브 등을 잡을 수 있게 해 구조하는 방법이 최고의 방법이다. 물에 빠진 사람이 의식이 있어 자칫 구조자를 껴안게 되면 함께 익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동생의 고무튜브가 뒤집힌 곳은 며칠 전에도 사망사고가 있었던 곳으로 파도가 불규칙하게 치는 위험한 곳이었다.

백사장에 20여분 누워 안정을 취하고 동생은 회복했다. 동생은 조금 수영할 줄 알았지만 고무 튜브가 갑자기 뒤집혀 순간 당황했고 점점 힘도 떨어져 이렇게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동생도 많이 놀랐겠지만 그 모습을 지켜보았던 가족들도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간이었다.

동생은 몇 개월간 꿈속에서 물에 빠져 죽는 꿈을 꾸며 후유증도 있었지만 밤의 역사는 진행되었나 보다. 딸만 둘이던 동생은 그 다음해에 득남했다. 그 녀석이 내가 '귀한 놈'이라고 하는 진호다.

올여름에도 바닷가에 아름다운 추억을 그려놓고 온 사람들도 많지만 감당할 수 없는 아픔과 슬픔을 갖고 돌아온 사람도 많다. 이렇듯 자연은 우리들에게 즐거움과 슬픔을 함께 준다.

우리 가족에게 평생 안고 갈 큰 상처로 남을 뻔한 사건이 다행스럽게 감당할 수 있는 추억으로 대신 할 수 있어 지금도 감사할 따름이다.

입추 처서가 지났는데도 불볕더위는 식을 줄 모른다. 그래도 진한 녹색의 이파리들이 한풀 꺾인 것을 보면 여름을 밀어내는 귀뚜라미가 곧 창가로 가까이 올 것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첨단정보라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물놀이사고#수상구조대#바다#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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