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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꽃
노란 꽃 ⓒ 정기상
청량산 문수사(전북 고창군)에서 내려오는 길이었다. 더위가 어찌도 맹위를 떨치는지, 산사를 찾는 이는 아무도 없다. 햇살 사이로 간간이 바람만이 제집처럼 들락거리고 있었다. 내려앉은 고요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찾은 산사의 풍광은 사색을 즐기는 데에는 최고였다. 한껏 여유를 즐기면서 내려오는데 조우한 것이다.

다가가 보니, 꽃무릇이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꽃무릇은 붉은 색깔을 하고 있다. 사랑의 정열을 불태우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꽃을 상사화라고 부른다. 꽃과 이파리가 영원히 만날 수 없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뜻하는 사랑의 꽃이다. 그런데 붉은색이 아니고 노란색이니, 신기하다.

상사화는 따로 있다. 꽃의 모양도 다르고 개화하는 시기도 또한 다르다. 상사화는 연분홍색을 하고 있으며 개화 시기도 꽃무릇보다 1개월 정도 앞선다. 상사화는 대개 한두 송이만 피어나 외로움이 진한다. 그러나 꽃무릇은 집단으로 피어난다. 군락을 이루고 있어 장관이다. 꽃무릇은 한자말로 하면 석산이라고 부른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 정기상
집단적으로 피어나 보는 이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곳은 여러 군데다. 전라남도 영광군에 소재한 불갑사의 꽃무릇이 이름이 나 있고, 전라북도 고창군에 소재하고 있는 선운사의 꽃무릇이 명성을 얻고 있다. 9월이 되어 꽃이 피게 되면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정도로 화려하다. 진한 사랑에 눈에 들어오고 가슴을 설레게 한다.

노란 꽃무릇은 처음이다. 꽃무릇이 개화할 시기로는 아직 이르다. 그럼에도 활짝 피어나 있는 것이 마음을 잡는다. 아직 활짝 피어나지 않은 꽃봉오리도 몇 개 있지만 대부분 만개해 있다. 사랑이 순수함을 보는 것 같아서 더욱더 가슴에 와 닿는다. 빨간색은 사랑의 힘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노란 색깔은 사랑의 은은함을 나타내는 것 같아 돋보인다.

외진 산사에 피어나 있는 노란 꽃무릇을 보니, 옹달샘에서 샘솟는 시원한 물이 떠오른다. 나그네에게 있어 옹달샘은 생명의 원천이다. 여행에 지친 몸과 마음을 시원하게 적셔주기 때문이다. 홀로 피어나 시선을 잡는 꽃이 물 한 모금에서 얻는 활기처럼 가라앉은 마음을 일으켜 세워준다. 침잠되어 있는 삶에 힘을 불러일으켜 준다.

위하는 마음
위하는 마음 ⓒ 정기상
옹달샘의 물 한 모금은 세상이 각박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상은 늘 그랬다. 누구라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베풀어주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아무런 관계가 없어도 상관이 없고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찾는 이는 그 누구라도 상관없이 나누어주는 것이다.

내 삶을 물 한 모금 나누어줄 수 있는 마음으로 꽉 채워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반성해본다. 다른 이를 위하여 무엇을 얼마나 베풀어주었는지. 그러나 생각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누어준 기억은 없고 오직 욕심을 채우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었다. 야박한 짓도 주저하지 않았고 부끄러운 마음조차 갖지 않았었다.

나눌 줄 모르니, 늘 갈증으로 고통받았다. 주지 않느니, 당연 돌아오는 것도 없다. 염치없이 자꾸만 받기를 원하였다. 더 주지 않는다고 안달하였고 작은 것 하나라도 더 차지하기 위하여 몸부림을 쳤다. 얼마나 추하고 냄새 나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뻘뻘 거리고 있었다.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세상 ⓒ 정기상
노란 꽃무릇을 바라보면서 지나간 날들의 나 자신을 반추해본다. 모든 것이 부질없고 허망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손에 꽉 잡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모두 다 바람이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삶이 바람 그 자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꽃과 이파리가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것이 사랑의 속성인지도 모른다. 이루어졌다고 믿었던 사랑도 그 실체는 바람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의 진실이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물 한 모금을 나눌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하여 나눌 수 있는 마음이 바로 참사랑이 아닐까. 꽃이 우아하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전북 고창에서 촬영


#전북 고창#노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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