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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후 서울 양천구 홈에버 목동점 앞에서 '이랜드 퇴출 박성수 회장 구속 민주노총 1천 선봉대 발대식'이 열리고 있다.
16일 오후 서울 양천구 홈에버 목동점 앞에서 '이랜드 퇴출 박성수 회장 구속 민주노총 1천 선봉대 발대식'이 열리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누가 이 땡볕 아래에 나오고 싶겠습니까?"

민주노총의 이랜드 규탄 집회에서 나온 말이다. 서울에 처음으로 폭염주의보가 발효됐던 16일 오후, 민주노총과 이랜드 노조 조합원들은 다시 길거리로 나섰다. 이날 찜통 더위에도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생존권을 건 싸움을 이어나갔다.

이날 현장은 노동자들에게 최근 가장 힘들었던 집회로 기억됐을 것이다. 이를 취재하던 기자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단순히 하루 종일 내려쬈던 따가운 햇볕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대포, 물병, 계란 그리고 욕설 세례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취재 수첩에 적힌 이날의 기록은 오후 3시 서울 양천구 홈에버 목동점 앞에서 시작됐다. 이날 취재는 '이랜드 퇴출 박성수 회장 구속 민주노총 1천 선봉대 발대식'이었다. 홈에버 목동점은 '전관 정상 영업중'이라는 안내문이 무색하게 영업이 중단된 상태였다.

"더 이상 빼앗길 게 없다, 오로지 투쟁이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랜드 퇴출 박성수 회장 구속 민주노총 1천 선봉대 발대식'에서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랜드 퇴출 박성수 회장 구속 민주노총 1천 선봉대 발대식'에서 기자회견문을 낭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매장 앞 그늘 없는 거리에 민주노총과 이랜드 노조 조합원 500여명이 집회가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얼굴은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홈에버·뉴코아 노동자들이 직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라는 팻말은 햇볕가리개로 사용됐다.

취재를 시작하기 전, 30분도 안돼 땀이 옷을 적셨다. 그것도 흠뻑. 연신 손으로 부채질 하는 사이, 연단에서는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 위원장은 "더 이상 빼앗길 것이 없는 바, 오로지 투쟁이다"고 외쳤다. 이어 "오늘부터 이랜드 투쟁 승리를 위한 1천명 선봉대가 강고한 투쟁에 돌입한다"고 덧붙였다.

이 위원장은 '1천 선봉대의 투쟁'을 "민주노총 산하 15개 산별노조가 단결하여 생존권 투쟁의 승리를 결정적으로 보장하는 자랑스러운 투쟁이다"고 소개했다. '1천 선봉대'는 이달 말까지 매일 수도권의 2개 매장씩 '타격'하기로 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18일 5만명이 참여하는 전국 동시다발 전국노동자 대회를 열고 21일에는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어 승리를 위한 실질적인 방법을 결정할 것이다"고 밝혔다.

정형권 사무금융노조연맹 위원장은 "이랜드는 1조4800억원의 까르푸를 인수하는 데에 자기돈은 3000억원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빚이다"며 "추석 때까지 투쟁하면 (이랜드는) 굴복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오후 5시 기자회견이 끝날 무렵 몸은 이미 '땀범벅'이었다. 폭염은 현장을 기록하는 펜의 속도를 느리게 했다. 손으로 부채질을 하느라 카메라를 자주 들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후에 있을 물대포·물병·계란 세례에 비하면 이는 꽤 편한 취재였다.

날아오는 물대포, 물병, 계란 세례로 정신 없던 취재

이랜드 용역 직원·매장 업주들이 민주노총 노조원에게 달려들자 경찰이 이를 제지하고 있다.
이랜드 용역 직원·매장 업주들이 민주노총 노조원에게 달려들자 경찰이 이를 제지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집회 한쪽에선 회사 쪽 용역업체 직원들과 매장 업주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윽고 노조원들과 충돌이 빚어졌고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주먹이 오갔고, 이랜드 여성 노동자들은 아들 뻘되는 용역 직원과 욕을 주고받았다.

이를 취재하기 위해 자전거 보관소 지붕 위로 올라갔다. 카메라를 드는데 옆에서 욕설이 들려왔다. "이 XX야, 안 내려와!" 용역 직원이었다. 그리곤 얼음이 들어있는 물병을 던졌다. 용케 피했다.

카메라는 그를 향했지만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얼마 전 이랜드 현장을 다니며 친분을 쌓은 한 인터넷신문 기자가 용역 직원과 몸싸움으로 하느라 카메라를 뺏기고 양 팔이 온통 멍투성이가 됐던 걸 기억했기 때문이다. 당시 경찰은 손놓고 이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 이날도 그랬다.

30여분 간 욕설과 주먹 사이에서 아슬아슬 취재를 이어나갔다. 그때서야 경찰이 노조원들과 용역 직원들을 떨어트려 놓아 상황이 진정됐다. 이후 용역 직원은 모습을 감췄고 저녁시간까지 집회가 이어졌다.

저녁 6시 40분께 쉬고 있는 노동자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꽁꽁 언 물병이 내 왼쪽 가슴에 날아들었다. '퍽'하는 소리와 충격으로 넘어질 뻔했다. 한 동안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용역 직원이 던진 물병이었고, 이는 다시 시작된 민주노총과 용역 직원 간의 '충돌'을 알렸다.

다시 용역 직원들과 매장 업주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홈에버 2층에선 스피커를 통해 민주노총을 '극악무도' '빨갱이' '괴수' '이 나라를 이지경으로 만든 단체'라고 강조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물대포를 꺼내들었다. 이내 매장 앞 노조를 향해 물이 쏟아졌다. 기자도 물세례를 받았다.

이에 맞서 노조원들이 스피커와 물대포 쪽을 향해 계란을 던졌다.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던 기자의 머리 위에도 계란은 날아왔다. 취재하는 동안 날아오는 물대포·물병·계란을 피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서울에 처음으로 폭염주의보가 발효됐던 16일 오후, 민주노총과 이랜드 노조 조합원들은 다시 길거리로 나섰다.
서울에 처음으로 폭염주의보가 발효됐던 16일 오후, 민주노총과 이랜드 노조 조합원들은 다시 길거리로 나섰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노조원에게는 생존이 달린 처절한 현장이었다

이날의 현장은 기자에게는 기사와 사진으로 남기면 될 뿐이다. 하지만 노조원들에게는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생존권이 달린 처절한 현장이었다.

생각해보니 이날 기자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폭염도, 물대포·물병·계란 세례도 아니었다. 그 뜨겁고 혼란스러웠던 거리에서 "잃을 게 없다"며 온몸으로 세상과 맞서던 그들의 모습이었다.

이들의 투쟁은 내일도, 모레도 계속된다. 내일은 최소한 폭염주의보가 발동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서는 물론이고 경찰·기자·용역 직원·매장 업주를 위해서라도 말이다.
#이랜드#비정규직#홈에버#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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