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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쎄라피를 추고 있는 모습
ⓒ 춤쎄라피 학회
토요일 저녁마다 서울 상봉역에 위치한 한 건물에선 '꿈꾸는 몸, 춤추는 마음'이라는 이름으로 특별한 춤 교실이 열린다. 여기엔 40대 학교 선생님부터 연극인, 직장인, 청년백수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뭔가 갑갑했어요. 나를 표현하고 싶은데, 그럴 통로가 별로 없었거든요. 화나면 꾹 참았어요. 남에게 싫은 소리도 거의 못하고요. 이젠 좀 표현하고 싶어요."(다인)

"그동안 너무 열심히 살았어요, 엄마로, 며느리로, 아내로. 이제는 나 자신으로 행복할 권리를 찾고 싶네요."(라라)

닉네임을 사용하는 15명의 사람들은 저마다 모인 이유는 달랐지만, 목적은 비슷했다. 춤을 통해 나를 더 많이 알고 당당히 표현하고,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것.

춤쎄라피 강사는 단단히 굳은 우리들의 어깨와 허리, 등을 가볍게 풀어주는 것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깊게 호흡을 들이쉬고, 내쉬고. 단순한 호흡만으로도 몸이 열리는 걸 보니 신기했다. "춤을 배우는 것이 아니에요. 자신의 춤을 이끌어 내는 것입니다"라며 강사는 멋대로, 내 몸이 이끄는 대로 움직일 것을 주문했다.

교실 두 개를 붙여놓은 꽤 넓은 공간에 우리 15명은 자리를 잡고 섰다. 사람들은 조용히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조금씩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누군가가 내 움직임을 보고 비웃을 것만 같아서 쉽사리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주위를 휘 둘러봤지만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다. 여전히 몸은 뻣뻣했다. 나는 눈을 감고 내가 느끼는 것에 집중해보려고 애썼다.

'아~그래, 팔이 이렇게 움직이는구나, 내 목은 이렇게 돌아가고.'
놀랍게도 내 몸 하나하나가 깨어나고 있었다.

춤쎄라피는 100명의 강사가 있으면 100개의 방법이 있을 정도로 매우 다양한데, 이번 춤쎄라피 워크샵은 가브리엘 로스라는 미국인이 창안한 5가지 리듬으로 진행되었다. 수용의 리듬, 결정의 리듬, 혼돈의 리듬, 가벼움의 리듬, 우주의 리듬 이 5개의 리듬을 통해 새로운 몸을 만나고, 자기리듬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안내해준다.

내 몸과 만나는 시간

▲ 참가자들이 춤쎄라피 후 자신의 느낌을 말하고 있다.
ⓒ 김귀자
처음엔 소심하게 움직이던 팔, 다리가 조금씩 과감하게 뻗어나갔다.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기도 했다.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 내에 열심히 뛰었다.

정신없이 몸을 털고, 흔들다 어느 순간 내 몸에 미안해졌다.

'그동안 사람들 눈치보느라, 다이어트하느라, 긴장하느라 널 무척이나 혹사시켰었지. 참 미안하다. 널 믿고 좀 자유롭게 해줄걸...'

내 몸을 억압해온 게 나란 생각이 든 순간, 살짝 눈물이 났다. 내 몸을 느낀다는 것에 대한 환희, 여태껏 내버려 둔 데에 대한 미안함. 무엇보다 내가 잊고 있다고 생각했던 상처를 몸은 다 기억하고 있었나보다. 그동안 억눌렀던 화, 분노와 같은 감정이 춤으로 터져 나왔다. 너무 열심히 흔든 탓에 몸이 쑤셔왔지만, 속은 십년 묵은 체증 내려가듯 시원해졌다.

그런데 몸에 대해 어떤 생각을 떠올린 건 나만이 아니었던 거 같다. 춤을 추다가 자신의 감정에 북받쳐 흐느껴 우는 사람도 있었고, 소리를 꽥꽥 지르다 몸이 쉰 사람도 있었다.

우린 모두 그동안 내 몸을 너무 무시하고 지내왔다. 너무 바깥만 바라보고 있느라 정작 내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정작 나는 잘 알지 못했다.

우리는 춤 하면 어렵게 배우는 것만 생각한다. 그러나 태초의 춤은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춤은 몸이 아름다워야만, 유연해야만 출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숨쉬기 때문에 누구나 출 수 있다는 것.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더 잘 느끼고, 이를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것만으로도 자유로움을 느꼈다.

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끝없이 비교하며 살아가는 나, 나는 춤을 추면서 이 말이 가장 하고 싶었다.

"음악에 몰두하다보면, 다~ 잊게 돼요. 지금의 내가 참 좋아요!"

"움직임 그자체가 훌륭한 춤이랍니다"
[인터뷰] 박소라 한국성폭력 상담소 활동가 겸 춤쎄라피스트

- 우리 사회에서 춤추는 게 쉽지 않다. 춤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우리는 흔히 춤을 못 춘다, 몸치다, 난 움직이는 게 싫다고 말하지만 우리의 몸은 항상 움직이고 있다. 깊이 숨 쉬어 보라. 몸이 움직이는 게 느껴지는가? 춤은 날씬하고 예쁜 무용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다. 작은 손가락 움직임 하나도 음악에 맞춘다면 훌륭한 춤이 되는 것이다."

- 춤 쎄라피는 어떤 것인가?
"한국적인 정서가 담긴 '춤'(움직임)과 자기감정을 표현하고 몸과 마음을 통합한다는 뜻인 쎄라피가 만나서 '춤 쎄라피'라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몸 깨어나기, 몸 알아차리기, 몸 표현하기, 몸 나누기의 4단계로 이루어진다. 긴장된 몸을 이완시키면 내 몸을 잘 느낄 수 있게 되고, 마음도 섬세해져서 내 마음을 잘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된다."

- 어떻게 춤쎄라피를 시작하게 되었나
"서른을 앞두고 많이 힘들고 지쳐있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찾고 있던 중 여성스윙동호회 '스윙 시스터즈'에서 처음으로 춤이란 걸 알게 되었다. 다들 춤을 너무 못 추는데도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그때 춤이 날씬하고 이쁜 무용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라는 걸 알게 됐다. 특히 여성으로서 나의 '몸'에 대해 내가 스스로 어떻게 규정해 놓고 편견을 가져왔는가에 대해서도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무작정 인터넷을 뒤져 춤쎄라피라는 것을 찾아냈다."

- 누구나 춤쎄라피를 할 수 있는가.
"춤쎄라피에는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 정말 춤이 좋아서 오거나, 궁금해서 혹은 마음이 힘들어 오기도 한다. 자신을 만나고 싶어 오기도 하고, 누군가 미워서 하기도 한다. 각양각색이다. 관심만 있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그 매력은 직접 해보면 알게 된다."

- 이번 워크샵은 좀 특별한 동기가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이번 워크샵을 주최했다. 성폭력피해생존자를 지원하는 단체인데, 성폭력피해는 여성의 몸을 통해 벌어지는 이슈여서 몸과 관련된 다양한 워크샵을 열고 있다. 이번 워크샵에 모인 기금은 전액 한국 성폭력 상담소에 기부될 것이다."

- 하고 싶은 말은?
"여성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등 여성다운 몸을 갖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다. 정작 자신의 몸이 어떻게 생기고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남들과 똑같은 몸이 되기를 바란다. 춤쎄라피는 자유로운 자기를 발견하고 자신의 진정한 움직임을 찾아가는 기회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춤쎄라피 덕분에 나를 인정하고, 나만의 리듬을 찾아 춤을 출 수 있게 되었다. 몸을 움직이고 춤추면서 내 몸과 마음이 대화하는나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춤쎄라피#화이트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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