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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마을 아주머니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
마을 아주머니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 ⓒ 이인옥
모처럼 지루하게 내리던 비가 그친 목요일(9일) 오후, 윗동네로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비가 오락가락 바람을 몰고 다니며 햇살 가는 길을 막고 장난을 치는지, 여러 날을 찡그린 구름만 볼 수 있었는데 방긋 웃는 햇살을 만나니 여간 반가운 게 아닙니다. 예전 같으면 벌써 물러갔을 장맛비가 계속되다 보니 하루빨리 물러가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적당한 곳에 차를 주차하고 동네에 들어서자 커다란 느티나무가 반가운 듯 힘찬 바람을 일으키며 반겨줍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느티나무 그늘아래서 알콩달콩 사는 이야기를 펼치며 사랑을 나누는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참 평화롭고 따뜻한 어르신들의 모습을 뵈니 무척 반갑고 기뻤습니다.

시원한 느티나무 아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시원한 느티나무 아래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이인옥
오늘 방문한 동네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많아 사람들에게 멋진 휴식의 공간을 제공합니다. 여름에 이곳 느티나무 정자에 오르면 부채가 필요 없을 만큼 시원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방이 탁 트인 공간이 높게 자리 잡고 있어 정말 시원합니다. 동네 분들이 다 모일 수 있을 정도의 넓이도 자랑할 만합니다.

또 매미들이 즐겨 찾는 곳이라서 정겨운 매미들의 노랫소리가 하루종일 끊이지 않는 무릉도원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행복한 공간이기도 합니다.

팔순이 넘으신 할아버지가 지금도 지게를 사용하고 있다.
팔순이 넘으신 할아버지가 지금도 지게를 사용하고 있다. ⓒ 이인옥
허리가 고부라진 할머니가 수레를 운반하고 있다.
허리가 고부라진 할머니가 수레를 운반하고 있다. ⓒ 이인옥
느티나무 그늘아래서 이야기를 나누는 어르신들을 만나 그분들께 알맞은 건강상담 및 보건교육을 마치고 함께 정담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어느 할머니께서 가까이에 있는 집을 가리키면서 저 집에 가면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가정방문 할 때는 방문 대상자뿐만 아니라 주민들께 건강상담 및 혈압, 혈당 체크를 해드리기 때문입니다.

마을 아주머니들이 담에 열리 호박을 살펴보고 있다.
마을 아주머니들이 담에 열리 호박을 살펴보고 있다. ⓒ 이인옥
그 집을 찾아가기 위해 막 일어서려는데, 마침 할머님들께서 대문 밖으로 나오고 계셨습니다. 대문 밖 담장을 타고 올라선 호박넝쿨을 둘러보고 계신 할머님들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정겹게 느껴집니다. 느티나무 그늘아래로 모여 앉아 정담을 나누며 건강관리도 받고 이웃사랑을 실천하시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마을 우물가 정자나무 아래서 정담을 나누고 있다.
마을 우물가 정자나무 아래서 정담을 나누고 있다. ⓒ 이인옥
그 느티나무 그늘아래에는 또 하나의 정겨운 모습이 보입니다. 네모난 우물입니다. 지금은 빨래를 하는 곳으로 쓰임새가 변하였지만 예전에는 이 우물에서 집집이 물을 길어 사용했다고 합니다.

우물가에는 또 빠질 수 없는 미나리가 심어져 있습니다. 미나리는 몸에도 좋을 뿐만 아니라 정화작용이 뛰어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릴 때 동네 아이들과 빨래를 하러 갔던 우물가에도 미나리가 많이 심어져 있던 생각이 납니다.

그때 고향의 우물가에는 여자아이들끼리 몰려다니며 낮에는 빨래를 하러 우물가를 찾았고 밤에는 몰래 등목하러 친구들과 함께 찾던 즐거운 추억의 장소였습니다. 그 우물가를 이곳에서 다시 만난 듯하여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다보았습니다. 지금은 집집이 수도가 설치되어 있어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인지 물이 뿌옇고 부유물도 있어 얼굴이 잘 비치질 않았습니다.

"조금만 일찍 왔으면 좋았을 걸, 방금 보리밥 해서 할머님들과 나눠 먹었는데…. 오실 줄 알았으면 같이 먹는 건데…."
"그려, 보리밥 좋아할지 모르지만 여럿이 같이 먹으면 참 맛있는데, 서운하네 그려."


할머님들께서 점심에 보리밥을 해 드셨다면서 저를 보자 서운해 하셨습니다. 어릴 때는 가난해서 늘 꽁보리밥을 먹곤 해서 질릴 만도 한데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 보리밥 생각이 나서 식당을 찾곤 합니다. 물론 식당에서 먹는 보리밥도 별미라서 맛있지만, 동네에서 이웃과 함께 나눠 먹는 보리밥이야말로 둘이 먹다가 셋이 죽어도 모를 만큼 푸짐하고 맛있습니다.

느티나무 아래서 아주머니들이 모여 소일하고 있다.
느티나무 아래서 아주머니들이 모여 소일하고 있다. ⓒ 이인옥
오늘 만난 할머님들께서 저를 생각해 주시는 마음이 감사해서 먹지 않아도 너무 배가 부릅니다. 느티나무 그늘아래서 돗자리를 펴고 바닥에 앉으시며 살아온 날들을 꺼내 바람결에 널고 먼지도 털어내는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정이 뚝뚝 묻어납니다. 이 보다 더 평화롭고 아늑한 공간이 또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비록 몸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늙고 아픈 곳이 많아 힘이 들지만, 농촌의 여름 사랑방인 느티나무 그늘아래서 두 다리 쭉 뻗고 오순도순 모여앉아 이웃사랑을 나눌 수 있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또 하나의 아름다운 농촌 풍경을 그려주며 행복을 느끼게 합니다.

마을 한복판에 둥그렇게 서 있는 정자에는 몇몇 남자 분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오전에 일을 하고 잠시 느티나무가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는 정자에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입니다.

무더운 여름에 시원함을 만끽할 수 있는 느티나무 그늘아래서 오순도순 사랑을 나누는 이웃들의 모습이 옛날처럼 시원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충남 연기#마을#느티나무#우물#보리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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