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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배가 왔다.
ⓒ 전희식
이럴 수는 없다. 멍석 깔아 놓으니 뒤로 빠진다고 어머니가 그 꼴이었다. 인터넷을 뒤져 코바늘이 들어 있는지, 수세미 견본이 몇 장이나 있는지, 아크릴사 색깔은 몇 종류인지 고르고 골라서 샀는데 정작 큰 소리 뻥뻥 치시던 어머니가 뒤로 나자빠지신 것이다.

뜨개질하는 여러 방법까지 인쇄되어 왔는데 어머니는 아예 손을 대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 뜨개질 잘 하셨다매요? 한 번 해 보세요."
"안 해."
"에이, 어머니가 하셔야지 누가해요?"
"안 해. 니가 해."

기다리던 택배가 도착하는 날 바삐 보따리를 풀어놓고 어머니가 성큼 나서기를 기대했는데 상황은 전혀 딴판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동안 당신이 얼마나 뜨개질을 잘하셨는지 동네에서 얼마나 소문이 자자하고 자식들이 옷을 입고 나가면 다들 누가 떴느냐며 탐을 냈다는 얘기를 여러 차례 했었다.

압권은 따로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털옷을 뜨면 '개비(호주머니)'를 따로 짜서 달았는데 어머니는 원판에서 직접 뜨셨다는 것이다.

"개비를 따로 뜨서 달락카믄 그기 다 두벌 일 아이가. 나는 개비도 한꺼번에 다 떴다. 그랑께 사람들이 다 솜씨 조탁카지."

▲ 왼쪽이 내가 뜬 '딸기수세미'다.
ⓒ 전희식
어머니 자화자찬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느것들 속옷도 다 내가 뜨서 해 입힜다"는 것이었다. 내 기억엔 단연코 속옷으로 털옷을 입은 적이 없다. 어머니가 어디 숨겨놓은 자식이 있다면 모르지만 우리 형제들 그 누구도 속옷을 어머니 뜨개질한 옷으로 입었던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안다.

어쨌든 어머니 큰 소리만 믿고 택배비까지 하여 일만이천오백원을 주고서 아크릴사 수세미 털실을 산 것인데 어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었다. 이건 명백한 배신인 것이다.
이건 절대로 그냥 물러 설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따지기로 했다.

"어머니 때문에 샀으니까 어머니가 하세요."
"안 해. 내가 늙어가지고 인자서 그렁거 머할락꼬 배우노!"

"어머니. 어머니가 뜨개질 잘 하셨다고 했잖아요?"
"뜨개질 잘 한다고 했지, 내가 언제 뜨개질하겠다고 했냐. 안 해!"

"그러지 말고 해 봐요. 잘 하실 거예요."
"코바늘이 이기 먹꼬? 대나무로 갸름하게 길어야 뜨개질하기 좋지 이렇게 몽당해 가지고. 안 해!"

"그럼. 제가 대나무로 코바늘 하나 잘 만들어 드릴 게요."
"안 해!"

"왜요? 수세미 만들어서 상봉동 큰누님도 하나 드리고 잠실 사는 혜영이 엄마도 하나 주고 그러면 좋잖아요."
"안 해! 다 늙은기 해 주믄 누가 조타 칵까이. 니가 해 주라. 젊은기 해 주믄 다 좋다칸다. 니가 하믄 되겠네."

▲ 선물로 받은 아크릴 수세미에 색실을 달리하여 한 겹 더 떴다.
ⓒ 전희식
그래서 내가 수세미를 하나 만들었다. 뜨개질은 처음이지만 복사물을 참고 해 가며 한 코 한 코 뜨는 것이 재미있었다. 코를 하나 늘이거나 줄이면 판이 벌어지거나 줄어드는 것이 생각보다 할 만했다. 재미있는 수학문제를 만들어 가는 기분이라고 할까. 코를 늘이기도 하고 코를 모아 뜨기도 해 보니 그런대로 딸기모양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딸기수세미라고 하여 어머니 앞에서 자랑을 했다. 어머니가 잘 만들었다고 관심을 보이기에 어머니도 해 보시라고 털실을 어머니 손에 쥐어 주었더니 휙 돌아앉았다.

"안 해!"

나는 속으로 외쳤다.

"어머니. 솔직히 말하세요. 다 잊어 먹었죠? 인제 바늘 잡는 법도 모르시죠?"

#뜨개질#수세미#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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