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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합민주신당이 5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중앙당 창당대회를 열고 '새 정치의 지평을 열어갈 정당'의 출범을 선언했다. 대통합민주신당 창당대회장에서 조일현(오른쪽부터), 이미경 최고위원, 오충일 대표, 김상희, 정균환, 양길승 최고위원이 당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8월 5일자로 이른 바 대통합민주신당이 출범했다.

이제는 교수가 아닌 정치인으로 불려야 마땅할 정대화 대통합신당 대변인의 주장 "'유령선' '미신당' '잡탕정당'이라지만 올해 대선, 시민사회가 희망의 근거"(<오마이뉴스> 8월 3일)를 반론한다.

그의 글의 논지는 대통합신당이 '유령선' '미신당' '잡탕정당'이라는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자신들과 같은 '시민사회'가 참여했기에 그 성공가능성도 꽤 높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할까?

원칙과 명분 잃은 '참여를 위한 참여'

미래구상이 출범했던 당시를 돌아보자. 나 역시 오로지 '반 한나라당'이라는 반사이익에만 기대어 정상적 정치세력으로서 좌표를 완전히 상실한 소위 범여권에 대한 비판의식과 우려가 있었던 지라, 최초 시민사회세력으로 출범했던 미래구상의 취지와 현실인식에 기대를 품고 지켜봤다.

그러나 아쉽지만, 결론적으로 그것이 단지 섣부른 기대에 지나지 않았음을 짧은 기간 미래구상이 걸어온 길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마치 비정상적인 경로로 획득한 검은 돈을 세탁하듯이, 미래구상 또한 단지 실패한 정치세력에 면죄부를 주기 위한 세탁소 역할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극명한 한계를 정대화 대변인의 호소문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미래구상이 진정 '새 정치'를 하려 한다면, 한미FTA·비정규직·사회양극화·환경생태주의·저출산고령화·부동산 문제 등은 단지 '취약점' 정도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 새 정치를 표방한 정당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런데 이것을 봉합하고 기성정치권 내 지분싸움만으로 기존 시민사회의 주장을 관철해 내겠다는 미래구상의 야심은 그야말로 순진한 책상머리 소견이자 하룻강아지의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두터운 제도권 정치의 벽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 것이다.

'반 신자유주의 연대'는 사라지고 '반 한나라당 연대'만

▲ 지난 4월 '2007 대선승리를 위한 미래구상·통합과번영 통합 기자회견'이 정대화 미래구상 공동집행위원장, 김선택 통합과번영 대표 등 양측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들여다보자. 한미FTA 문제만 하더라도 소위 범여권의 대표주자들은 적극적 찬성론자부터 소극적 반대론자(절차만 문제삼는 반대론자)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지만, 세력 분포에서 주류는 찬성론 편에 기울어있는 것이 사실이다.

애초 '미래구상'은 한미FTA에 대해 기성 정치권을 '반신자유주의 연대'로 끌어낸다는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고 정치세력화에 뛰어들었던 것이고, 이것이 바로 시민사회세력이 제도권 정치에 해야 할 역할과 명분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 과정에서 미래구상은 이러한 원칙과 명분의 차이로 인해 지금종씨 등 선명한 좌파 미래구상 세력과 이미 결별했다. 그러니 남아있는 문제라고는 소위 범여권이 주장해온 '반 한나라당 연대' 뿐이었고, 따라서 수혈되는 것은 단지 시간 문제였을 뿐이다.

결국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된 미래구상 시민세력들은 예상대로 이러한 원칙을 유야무야하면서 기성정치권이 제시해 놓은 정치일정표에 맞춰 단지 지분조정만 합의한 채 성급히 뛰어들었다.

이로 인해 시민세력으로서의 명분과 참신성은 모두 사라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점 하나만 보더라도 한나라당과 차이가 전혀 없는데, 도대체 무엇을 위한 반 한나라당 연대를 해야 한단 말인가.

민주주의를 위해? 범여권이 민주탄압세력인데

'이 땅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허튼 소리는 하지도 말라. 이미 한미FTA나 비정규직 문제 등에서 민주주의를 탄압하는 세력이 바로 범여권임이 백일하에 다 드러났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러므로 도대체 돈·세력·조직 등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제도권 정치세력에 결합한 이 미래구상의 일부 시민사회세력이 명분마저 포기하고 얻을 대가란 제도정치에 연착륙했다는 자기만족 이외에 딱히 무엇이 더 있겠는가. 결론적으로 원칙과 명분상실의 종착역은 결국 '참여를 위한 참여'일 뿐이다.

그렇다면 정치적 시각에서 바라볼 때, 정대화 대변인이 극구 '수혈론'을 부정하며 여전히 '시민사회세력만이 유일한 희망'이라 주장하고 나온 본질은 무엇일까.

나는 이것을 이제 막 출발한 대통합민주신당에서 노선싸움 아닌 주도권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전조로 본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수혈된 시민사회세력은 이미 통합과정에서 원칙과 명분에 해당하는 노선싸움을 사실상 포기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표면상으로는 50:50의 지분싸움에 성공한 듯이 보이지만. 내용상 기성 제도권 정치에 완전히 포위됐고, 뒤늦게 이것을 자각한 정대화 대변인이 내부 주도권 싸움을 위해 외부 지원세력을 모으기 위한 하소연으로서 바로 이같은 주장을 한 것 아닐까 한다.

자기 만족 위한 '참여를 위한 참여'

▲ 정대화 대통합민주신당 대변인.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러나 제도권 밖 시민세력이 이에 호응하기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애초 미래구상의 출범 목표와 지향점은 기존 민주노동당을 포함한 진보진영과 범민주개혁진영을 포괄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창조하는 산파역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이미 실패한 개혁정치세력으로 백기투항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투항'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은, 위에서 지적한 원칙과 명분 중 단 한 가지도 신당의 정체성과 관련해 명시적으로 얻어낸 것이 없기 때문이다. 부연하자면 정대화 대변인이 글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정당의 정체성 부분을 집중 거론한 것도 바로 이를 방증한다.

또한 미래구상의 200여명 정도의 일부 시민사회세력이 통합신당에 수혈됐다 하여 이들에게 곧 모든 시민사회세력의 대표성이 있다고 보기도 극히 어려울 것이다. 결국 모든 면에서 시민사회세력으로서 참신성과 순수성은 사실상 상실된 것이다.

그나마 한 가지 해볼 만한 노력이 있다면, 총선 후 열린우리당이 해내지 못한 노선싸움에 집중해 더욱 보수화한 범여권을 자극하고 국민을 위한 제대로 된 정책을 하나라도 관철해내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과거 기성 정치에 수혈된 시민세력들이 정체성을 지키며 새로운 정치를 일궈낸 사례가 전무하다는 점에서, 이마저도 결코 쉽지 않은 가시밭길이 될 것임을 충분히 인식하고 가야할 것이다. 원칙과 명분을 모두 포기하고 이미 흡수된 상태에서 아무리 수혈이니 들러리가 아니라고 우겨봐야 국민 눈에는 고작해야 헌혈로밖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잡탕 아니라고? 짬뽕이나 비빔밥으로 불러줄까

마지막으로 대통합민주신당의 성격을 어찌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남는다.

85명의 현역의원 중 구 열린우리당 출신이 무려 80명에 이르는 세력을 과연 온전한 신당이라 볼 수 있겠는가. 억지로 통합이라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겨우 구 민주당이나 한나라당 출신의 구태정치인 5명을 포함시켰다고 해서 과연 신당이 될 수 있겠느냔 말이다.

급조된 당답게 신당은 구 열린우리당의 정강정책과 노선을 그대로 가져다 썼다. 새로운 정책도 없고 이념좌표도 불분명한, 간판만 바꿔달은 당에 대해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본래 의미의 통합신당으로 보아 줄까.

아니 오히려 손학규 전 지사의 선진포럼이 정대화 대변인 등의 시민사회세력과 삼분된 핵심세력 중의 하나로 참여했다는 사실로 보면 기존 열린우리당보다 더 스펙트럼이 넓어진 '잡탕당'이 됐다고 평가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을까?

지금 범여권이 나머지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민주당과 잔류 열린우리당과의 통합 논의만 해도 그렇다. 서로 '잡탕당'이라 손가락질하지만, 사실 국민이 보기엔 모두 잡탕이었다. 잡탕과 잡탕이 합쳐져야 과연 잡탕 이상의 것이 될 수 있을까. 사실이 이런데도 부인한다면, 그럼 이번에는 '짬뽕'이나 '비빔밥' 쯤으로 불러달라는 말인가.

다른 정책과 이념 때문에 노선싸움하는 것도 아니고 기성정치의 속성상 지분다툼과 세력싸움을 하고 있는 것일 뿐, 아직까지는 정작 국민들이 기대해 볼만한 희망이라고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들의 '눈물정치', 쇼는 끝났다

▲ 5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대통합민주신당 중앙당 창당대회에서 `이랜드 사태해결`을 요구하는 10여명의 대학생들이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결국 수의 싸움에 연연해서는 공학정치에서 영영 헤어날 수 없다. 또한 지난 대선과 같은 노무현식 '눈물의 정치'에 속아줄 국민도 이제는 별로 없는 것 같다.

민주화 이후 20년이 지나며 급격히 감소하고 있는 중산층의 몰락에 대해 어떤 세력이든 분명한 대안과 정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결코 국민의 감동과 희망을 다시 끌어낼 수 없다는 점을 모두 명심해야 할 것이다.

주가가 아무리 천정부지로 치솟아도 다수 국민은 여전히 소외된 관망자로 남아 오늘도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려 생존권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이 참담한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정치적 과제는 없다.

이것이 바로 그동안 소수의 가진 자만을 위한 정치를 해온 한나라당과 범여권 모두 한국정치의 미래로 평가될 수 없는 분명한 이유다. 그러므로 변화에 대한 선택은 순전히 기성정치권 자신들의 문제이자 책임이다.

이순신의 12척 남은 함선 비유는 한국 국민들 다수가 지금 처한 희망 없는 미래에 대한 현실의 도탄지고(塗炭之苦)는 될지언정, 거꾸로 가고 있는 정치세력들이 생존연장을 위해 단골 메뉴로 함부로 인용할 내용이 결코 아니다.

국민에게 마지막 남은 희망은

지금 그나마 우리 국민에게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아직 대선까지는 선택할 시간이 충분히 남아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더 나빠질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반신자유주의로 연대해 이 암담한 현실을 함께 뚫고 나가려는 주체적 주권재민 의식이다.

희망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만들어 내는 자의 편이라 했다. 연대는 그런 희망 만들기의 가장 강력한 힘이자 유일한 필요충분조건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대자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대통합민주신당#정대화#수혈#헌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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