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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급성 백혈병 발병 당시 조안의 모습.
지난 6월 급성 백혈병 발병 당시 조안의 모습. ⓒ 사랑마을교회

지난 6월 9일, 감기 기운이 돌아 병원을 찾은 조안 줄리오(25·필리핀)는 의사로부터 믿기 힘든 얘기를 들었다. 급성 백혈병에 걸렸다는 것. 지난 5월 한국으로 올 당시 필리핀에서 두 번, 입국한 뒤 한 번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밀려드는 육체노동으로 인한 피로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앞으로 돈벌이는 어떻게 하나' '얼마동안 아파야 하나'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하지만 무수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무도 할 수 없었다.

가난한 집안의 딸인 조안의 어깨에 무거운 짐이 또 하나 얹어지는 순간이었다. 이뿐 아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한 조안에게는 장애아동인 아들도 있다. 아들의 치료를 위해서도 무언가 해야 하는데 백혈병이라니.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한국은) 그래도 돈을 벌 수 있는 곳이다. 나도 아프지만 장애가 있는 아들을 꼭 한국에 데려와서 함께 치료받게 하고 싶다. 필리핀에서는 아이의 병을 낫게 할 여력이 없다."

조안은 지난 3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그의 어깨에 진 세 가지 짐을 풀어놓았다. 조안은 지난달 13일 1차 치료를 마치고 현재 인천 남동구 사랑마을교회의 쉼터에 머물고 있다. 오는 12일에는 2차 치료를 위해 다시 입원한다. 그는 항암치료 때문에 빡빡 밀어버린 머리를 흰색 니트 모자로 감추고 있었다.

조안이 한국을 택한 이유

조안은 인터뷰 내내 "돈을 벌어야 한다"고 반복했다. 그가 한국에서 목돈을 벌어야 한다고 되뇌이는 이유는 장애를 겪고 있는 아들의 치료 때문이다.

필리핀에 두고온 아들 에이런은 올해 3살이지만, 아직도 제대로 걷지 못한다. 조안이 그의 지갑에서 꺼내 보여준 아이들의 사진에도 에이런은 누워 있었다.

출산 당시 양수가 터졌는데도 병원에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해 그 과정에서 에이런에게 병이 생겼다. 폐에 염증이 생겼고 그로 인해 하반신 마비가 됐다.

이 때부터 가난한 젊은 부부에게는 돈이 필요했다. 결국 남편은 돈을 벌기 위해 아랍에미리트연방공화국 두바이로 향했다. 건설 노동일을 하던 남편은 내성적인 성격 탓에 현지에 적응하지 못하고 6개월만에 돌아왔다. 필리핀에서 농사를 짓겠다는 것이었다.

조안은 그 때 이주노동을 결심했다. 조안의 모친 또한 대만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에서 돈벌이를 한다는 게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조안은 주변사람들로부터 한국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처음에는 몇 년만 고생하면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지난 3월에 입국을 감행한 것이다.

중병 얻은 이주노동자의 삶

조안이 처음 일하게 된 곳은 인천 계산동의 한 자수회사. 일이 손에 익지 않아 힘들었지만, 제 손으로 처음 벌어보는 월급을 가족들에게 보낼 생각을 하니 뿌듯했다. 옷 한 벌 마음껏 살 수 없는 빠듯한 형편이었지만, 아들 에이런이 곧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난 5월경부터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할 일은 많은데 38도의 고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일하던 공장의 사장은 "병원에 가보라"고 말했지만, 병원이 어디 있는지, 가서 뭐라고 이야기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엔 적응하느라 몸이 힘들어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몸을 야간 2교대에 맞추려면 '시간이 약'이라고 생각하고 참았다. "허구한 날 아프면 어떡하느냐"는 공장주의 핀잔이 이어져서 그때야 병원으로 향했다. 피로로 인한 편도선염이라고 했다.

병을 알고 난 뒤, 자신의 작업분량이 다른 이들에게 넘어가자, 도저히 가시방석 같은 공장에 남아있을 수 없었다. 그는 두 달여간 다니던 공장을 그만둬야 했다.

두 달간 일해 받은 돈은 150만원 정도. 한달 최저임금 78만원(주 40시간 근무 기준)도 챙기지 못한 셈이다. 초과 근무 수당은 꿈도 꾸지 못했다. 퇴직과 동시에 의료보험 또한 끊겨 친구가 대신 동네 의원에서 약을 타다 조안을 도왔다.

병이 있어도 조안은 쉬기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휴대전화 조립공장에 취직했다. 고열은 멈추지 않았다. 눈에서 열이 나 앞을 잘 볼 수 없었다. 큰 병원을 찾았다. 결과는 급성 백혈병이었다. 고열로 인해 망막에 출혈이 생겨 시력도 나빠진 상태였다.

조안은 아직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

2차 치료를 위해 머리를 민 조안 줄리오(25·필리핀). 지난 3월 취업을 위해 입국한 그는 석달이 지난 6월 급성 백혈병을 판정받았다. 그는 필리핀에 두 아이를 두고 한국을 방문했다.
2차 치료를 위해 머리를 민 조안 줄리오(25·필리핀). 지난 3월 취업을 위해 입국한 그는 석달이 지난 6월 급성 백혈병을 판정받았다. 그는 필리핀에 두 아이를 두고 한국을 방문했다. ⓒ 오마이뉴스 이민정
조안은 당시를 회상하며 "너무 외로웠다"고 말했다. 새로 옮긴 공장에는 친구도 없었고, 친구들이 나서준다고 해도 가난한 이주노동자의 주머니 사정이 뻔했다.

"필리핀으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조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아픈 모습을 가족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며 "돌아간다고 해도, 제대로 치료받을 수도 없다"고 말했다. 병든 아들이 누워있는데, 자신까지 집에 머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조안은 "그래도 한국에서는 돈을 벌 수 있다"며 "빨리 나아서 돈을 벌면 아들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조안의 희망은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지난 6월 12일 병원에 누워있던 조안을 만나 도움을 주기 시작했던 김철수 목사(인천 사랑마을교회)는 "노력하고 있지만…"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먼저 경제적인 것부터 해결해야 하는데, 조안의 치료조차 빠듯한 상황이다. 지난 1차 치료비(1800만원) 중 1000만원 정도만이 조안에게 적용되는 지역의료보험으로 해결했다. 나머지 비용은 그가 치료받은 길병원과 아주대학병원의 도움을 받았다.

골수 이식 등에 필요한 2차 치료비는 닥쳐봐야 안다. 조안도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인데다, 교회 살림까지 넉넉지 않은 탓에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다. 김 목사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돌보기에도 빠듯한 관련 단체들이 조안과 같은 등록 이주노동자를 돕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아쉬워했다.

조안은 현재 이주노동자의 신상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얻을 수 있는 비자(G1)를 얻었다. 3개월은 비자 걱정 없이 머물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는 중병에 걸린 이주노동자를 위한 지원 체계가 없다. 조안이 김 목사를 만나게 된 것도 병원이 교회에 직접 도움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비싼 치료비... 빈털터리 이주노동자

두 번째 문제는 에이런의 입국 비자문제다. 자신도 아프면서 염치없이 아들까지 데려오려고 하느냐는 따가운 시선도 있지만, 필리핀에서는 에이런의 치료에 희망을 걸기 힘든 상황이다.

조안은 자신의 아픔보다 아들의 치료에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병원 입원 당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을 때, "아들을 데려와 한국에서 같이 치료하자"는 김 목사의 권유에 기운을 차리고 자신의 치료에 희망을 갖기 시작했다.

조안은 "아이들이 대학생이 될 때까지 지켜볼 수 있을지"라고 말을 흐린 뒤 "에이런이 아플 때는 내 생명을 빌려주고 싶었는데, 지금은 반대가 됐다"고 작게 읊조렸다. 스물다섯 엄마의 소망이 이뤄질 수 있을까.
#이주노동자#백혈병#조안#김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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