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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서 고모 3대가 담소하고 있는 모습
인천공항에서 고모 3대가 담소하고 있는 모습 ⓒ 이상기
새벽 5시38분 막내 숙부로부터 전화가 온다. 몸이 안 좋은지 숙모가 일어나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좋아지기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다행히 1시간쯤 후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했다는 소식이 온다. 곧 이어 여기저기서 공항에 가고 있거나 도착했다는 전화가 온다.

6시50분 공항에 도착한 나는 먼저 온 둘째 숙부와 함께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7시30분이 되자 막내 숙부를 제외한 모든 식구들이 다 도착을 한다. 온 사람들 먼저 수속을 마치도록 가이드에게 부탁을 하고 나는 막내 숙부와 계속 연락을 한다. 다행히 8시20분쯤 공항에 도착을 했고 무사히 수속을 마칠 수 있었다. 비행기는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늦은 9시15분 움직이기 시작한다.

휴가철이라 인천공항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어찌된 일인지 히로시마행 비행기는 한산한 편이다. 빈자리가 많아 아주 편안하게 여행을 할 수 있었다. 1시간쯤 지나자 동해바다가 나타나고, 1시간 반쯤 지나자 세토내해를 지나 히로시마 상공에 이른다. 날씨가 좋아 지상의 모습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히로시마 공항 근처 풍경
히로시마 공항 근처 풍경 ⓒ 이상기
산들 사이로 길이 나 있고, 넓지 않은 평지에는 논과 밭이 보인다. 곳곳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도시에 가까워질수록 마을이나 주택지의 규모가 커진다. 한여름인지라 산천은 푸르고 녹음이 무성하다. 히로시마 공항은 히로시마의 동쪽, 히로시마와 후쿠야마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히로시마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오전 11시10분이다.

2시간도 안 걸려 히로시마에 도착한 것이다. 조선 중기 우리 조상들이 통신사로 일본에 갈 때는 서울에서 이곳 히로시마 지역(당시에는 아키[安藝]주로 불림)까지 2~3개월은 고생을 해야 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약 20일이 걸리고, 부산에서 배를 준비하는데 20여일이 걸린다. 일본의 쓰시마(대마도)에서 또 배를 준비하는데 20일 정도 걸린다.

이처럼 항구에서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은 배를 준비하고 뱃사람을 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통신사 일행이 서울을 출발할 때는 200명 정도의 인원으로 구성되지만, 부산을 출발할 때는 사공과 격군으로 불리는 뱃사람이 300명 정도 필요했다. 정사, 부사, 종사관이 세 척의 배에 나누어 탔으며, 이들을 호위하는 문관과 무관, 사공과 격군을 합치면 배 한척에 승선하는 인원은 150여명이나 되었다.

쓰시마 섬에서 세토나이카이로 이어진 해로
쓰시마 섬에서 세토나이카이로 이어진 해로 ⓒ 이상기
이들 500명 내외의 통신사 행렬이 쓰시마 섬에 도착하면 그곳에서 이들 배를 일본 본토인 오사카(大阪)까지 인도할 호위 겸 호송선을 마련해야만 했다. 쓰시마의 중심지인 이즈하라(嚴原)에서 모든 준비를 끝마치고 바다로 나갈 때면 그 인원이 1500명 정도로 불어난다. 대마도 번주(藩主)가 중심이 되어 조선통신사를 인도하는데, 그 인원이 1000명은 되었던 것이다.

1500명이나 되던 대선단(大船團)은 이키도(壹岐島)와 아이노시마를 거쳐 시모노세키에 도착한다. 시모노세키는 일본의 본토인 혼슈 지방의 관문으로 당시 아카마세키(赤間關)로 불렸다. 이곳에서부터는 일본의 내해인 세토나이카이를 따라 비교적 빠르게 여행이 이루어진다.

통신사 정사선을 이끄는 일본의 선박들
통신사 정사선을 이끄는 일본의 선박들 ⓒ 이상기
아카마세키에서 가미노세키(上關)을 거쳐 히로시마현 지역인 아키주까지는 일주일 내외가 걸린다. 아키주에서는 통신사 일행이 주로 가마가리(蒲刈)에 주로 묵었지만 날씨와 조류에 따라 인근 지역에 묵은 적도 있다. 여하튼 조선시대 서울에서 히로시마 지역까지는 두 달 또는 세 달이 걸리는 머나먼 여정이었다.

히로시마 공항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셔틀버스를 타고 이츠쿠시마 신사로 향한다. 오늘의 일정이 이츠쿠시마 신사를 먼저 보고 히로시마 시내로 돌아와 원폭돔과 평화공원을 보는 순서로 구성되어있기 때문이다.

버스는 산요(山陽) 자동차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향한다. 히로시마시를 우회하여 하츠카이치시(卄日市) 인터체인지를 나와 미야지마구치(宮島口) 항에 도착하니 바다 건너로 이츠쿠시마 신사의 상징인 오도리와 미센(彌山)이 보인다.

미야지마구치에서 바다 건너 보이는 오도리와 미센
미야지마구치에서 바다 건너 보이는 오도리와 미센 ⓒ 이상기

덧붙이는 글 | 16명으로 구성된 가족 여행단의 일본여행기이다. 참여한 사람들은 숙부와 조카 부부가 중심이지만, 고모 3대가 함께 하는 특이한 여행이기도 하다. 이들 가족이 히로시마현과 에히메현에서 보고 느끼면서 부딪치는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일본의 문화를 기술할 예정이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흔적인 통신사 유적을 방문, 일본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해 보고자 한다.


#히로시마#아키주#조선통신사#정사#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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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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