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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원 릿교대 교수
ⓒ 이병선

일본 정치사상 사실상 최초의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어낸 7월 29일 참의원선거가 일본의 대외정책, 그 중에서도 대 한반도 정책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본 릿교(立敎)대 이종원 교수에게 이번 선거에서 아베 신조 정권이 참패를 당한 이유와 그 대외적 영향에 대해 견해를 들어봤다. 이종원 교수는 서울대 공대 출신으로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됐다가 1980년대 초 도일, 25년 동안 일본에서 정치학자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이번 선거결과에 대해 "아베 정권에 대한 실망과 불안,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당분간 일본정치가 유동적이 되고 단명정권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 같은 결과는 '정권교체'나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그는 분석했다.

그는 "아베 정권이 개헌을 너무 성급히 밀어붙이려 함으로써 오히려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줬다"면서 "신자유주의 개혁의 불만을 내셔널리즘으로 다독거리는 데 한계에 부딪힌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일본 국민은 신자유주의 개혁에 따른 부작용을 아베 정권이 해소해주기 바랬지만, 아베 총리는 그런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며 "일본 정치가 매우 유동적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선거결과로 인한 일본정부의 대북정책 수정 가능성에 대해 "객관적 정책변화를 단행할 구실은 충분히 만들어졌다"면서 "아베의 영향력이 퇴조했기 때문에 이번 개각에서 외상을 신선한 사람으로 세우면 그걸 계기로 외무성에서 6자회담에 대한 새로운 어프로치를 할 수 있는 객관적 구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참의원선거 이후 한일관계에 대해서는 "경제나 사회가 정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면에서 성숙한 관계"라고 평가하면서도 "그러나 일본과는 부딪히면서도 공조해야 하는 부분 있기 때문에 일본의 다양성을 올바로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참의원 선거 결과는 아베 정권에 대한 실망, 불안, 불만의 표출

- 자민당이 이번 선거에서 참패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어느 나라나 신자유주의 개혁에 따른 양극화 문제가 쟁점이고,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자민당 패배의 구조적 문제는 거기에 있다. 기존 득표구조가 붕괴된 것이다. 연금문제와 각료들의 실언 등을 직접적 원인으로 거론하지만, 하나하나가 그렇게 큰 사안은 아니었다. 과거에도 있었던 일이다. 이 보다 좀 더 근본적 이유로서 아베 총리에 대한 실망, 불안, 불만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 무엇에 대한 실망인가?
"기대했던 사람들이 실망하는 것이다. 두 부류가 있다. 우선 우파 쪽에서 기대했던 사람들은 아베가 야스쿠니 신사를 안 가는 것에 실망하고 있다. 또 한 부류는 막연한 이미지 가지고 기대했던 사람들이다. 외모도 괜찮고, 경력상 미지수에서 오는 호기심, 고이즈미 전 총리의 후광 등이 아베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그러나 막상 총리가 되자 리더십 부족이 드러났고, 정국운영도 매끄럽지 못하다. 각료는 자신과 친한 '예스맨'들로 채우고…. 이런 것들이 기대를 급속히 실망으로 바꿔놓았다."

- 불안은 실망과는 또 다른 측면인가?
"아베는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초조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수단으로서 개헌과 교육개혁, 집단적 자위권 같은 이념적 이슈를 내세웠다. 그러나 무리한 입법과 밀어붙이기식 추진이 여론의 위화감을 불렀다. 일본 국민은 개헌이나 집단적 자위권을 그렇게 절실한 이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 해결해주길 바라는 문제가 많다.

그런데도 그걸 막 치고 나오니까 '아베가 세상물정 너무 모르는 것 아니냐' 이런 여론이 싸늘하게 퍼진 것이다. 대대로 정치인 집안에서 곱게 자란 아베는 평생 고생이란 걸 모르고 컸다. 입시공부를 할 필요도 없었고, 취직하느라 고생해본 일도 없다. 그런 친구가 갑자기 생활과 유리된 고상한 주제들을 던지면서 밀고 나가니 국민은 불안한 것이다."

- 불만이란?
"아베만의 책임은 아닌데, 아베가 잘 돌보지 못했다는 불만이 있다. 이번 선거결과를 보면 '고이즈미 개혁'의 그늘이 나타나 있다. 농촌, 중소기업, 불경기에 대학 나온 사람들이 고이즈미 개혁의 피해자들이다. 아베가 '재도전 프로그램' 같은 것을 만든다고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이들의 불만이 표출된 것이다. 결국 아베만의 책임도 아니지만 실망과 불안, 불만이 겹치면서 산사태같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 이종원 릿교대 교수
ⓒ 이병선
- 그런데도 아베가 총리직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자민당 내에서 아베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는다. 패배의 충격이 너무 커서 대안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는 측면이 있고, 아베만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알기 때문에 그런 면도 있다. 자민당 지지 기반이 완전히 붕괴된 것으로 나타났는데, 누가 나와도 이를 재구축하기 어렵기 때문에 움츠러드는 것이다."

- 민주당의 승인은 어디 있다고 보나?
"작전에 성공했다. 재미있는 것은 민주당이 오히려 낡은 자민당 수법을 써서 이겼다는 점이다. 사람들도 자민당의 과거 주류였던 '다나카파'이고, 오자와 이치로 대표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가장 먼저 주장한 사람이다. 공약도 '큰 정부'를 지향하고 있다. 농촌 가계에 현금을 지원한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그걸 가지고 시골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녔다. 그렇게 지지를 모아 성공했지만 실행될지는 모르겠다."

결국 '중의원 해산, 총선거' 실시할 수밖에... 정계개편 가능성도

- 이번 선거결과로 향후 일본 정치가 어떻게 바뀌어나갈 것으로 예상하나?
"일단 정국이 잘 안 돌아갈 테니까 지금 구조가 계속 유지되기는 힘들다. 결국 올해, 내년 사이에 정계개편의 방향으로 가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개혁의 방향을 놓고 이합집산이 이뤄질지, 아니면 작은 정부 일변도가 아닌 일본식 제3의 길이 나타날지 지켜봐야 한다. 어쨌든 대립축이 다시 정리될 것이다.

- 그게 일본정치의 근본적 변화로 이어질까?
"참의원과 중의원의 지배정당이 갈렸기 때문에 모든 법안이 데드록(dead rock)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베 총리로서는 이런 식으로 지지부진하게 계속 가면 더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타협하면 허수아비가 되고 만다. 정말 뭘 하려면 결국 어느 단계에서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실시할 수밖에 없다. 아베 주도로 총선거를 치르겠다고 하면 과연 자민당 전체가 따를지, 공명당은 같이할지, 불투명하다. 여러 요소를 보면 정계개편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이 이를 주도할 가능성도 있다."

- 90년대 초에도 자민당 정권이 한번 무너졌다가 복원된 경험이 있다.
"그 때와 비교하면 야당의 정책능력이 향상됐다. 민주당 구성 보면 관료 출신도 있고, 자민당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도 많다. 그런 점에선 양당제의 출발로서 정권교체나 정계개편이 이번 계기로 정착될 가능성도 있다. 90년대 초에는 비자민 연립정권이 급조됐지만, 이번에는 민주당 내부가 비록 복잡해도 그 때보다는 단일한 정당이다. 재계에서도 1당 체제가 불편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책을 중심으로 언제든지 변동할 수 있는, 기득권이 고정되지 않는 구조를 바라는 측면이 있다. 그런 큰 흐름이 있기 때문에 우왕좌왕하면서도 결국 양당제 쪽으로 가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

- 일본 정치는 세계적으로 특수하게 1당 지배체제가 유지돼왔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자민당 내 파벌교체가 정권교체 효과를 대신해왔다. 자민당 파벌간 차이는 여야 차이 이상이었다. 그러나 이제 파벌은 파괴됐고, 그걸 대체하는 구조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 일본을 몇 년간 '강한 리더십'이 끌고 왔다고 보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달라질까?
"사회 구조가 유동적이 되고, 정당 지지구조도 유동적이 됐다. 개혁과 분배의 균형을 취한다는 게 엄청난 카리스마이고, 리더십이 필요하다. 고이즈미도 그것을 한 건 아닌데, 뭔가 해줄 것 같은 이미지를 줬다. 국민은 모순적 요구를 다 제시하면서 카리스마적 리더가 해줄 것을 기대하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일본이 워낙 강한 리더십에 대한 동경이 있고, 보이지 않는 구조가 이를 받쳐줬는데, 그게 없어지면서 지도자에 기대하는 부분이 커졌다. 아베는 너무 과도한 기대를 받아서 추락도 빨랐던 것이다. 아베에겐 그런 카리스마 없다. 그럼 누가 이걸 할 수 있느냐, 어렵다. 당분간은 정치가 유동적으로 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단명정권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 앞으로는 '강한 리더십'이 등장하기 어렵다는 얘기인데.
"이건 일본만의 현상이 아니다. 어디나 글로벌 신자유주의가 진행되는 국가에서 겪는 문제이다. 한국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그런 기대 있다가 충족이 안 되니 확 떨어지지 않았는가. 마찬가지다. 이전에는 정치적 지지층이 세력, 지방별로 고정화 되어 있었는데. 글로벌은 뿌리가 없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작은 사건과 바람에 의해 급격히 바뀌고, 이미지에 따라 쏠려가게 된다."

신자유주의 개혁의 불만을 내셔널리즘으로 다독거리는데 한계

- 이번 선거결과가 외교노선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미관계가 많이 벌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당장 커다란 불안요소가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의 관계도 야스쿠니 참배 포기로 일단 큰 불은 껐다고 생각해서인지 큰 쟁점이 안됐다. 그러나 아베 정권이 추진해온 미국의 이라크전쟁 지원과 기지이전 작업 등이 잘 진전되지 못하면 대미관계가 껄끄러워질 가능성이 있다.

동북아 변화에 대해서는 대중적 관심이 거의 없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의 큰 변화가 일본에선 북핵, 납치 문제로 왜소화되어 있다. 일본이 이 과정에서 뒤처지고 고립돼 있는 것에 놀랄 정도로 위기의식이 없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일본에게 중요한 과제인데. 미디어뿐만 아니라 싱크탱크에서도 논의가 없다. 일본 외교의 시야가 매우 좁아져 있다는 증거다."

- 6자회담에 임하는 일본의 입장 변화 가능은?
"객관적 정책변화를 단행할 구실은 충분히 만들어졌다. 아베의 영향력이 퇴조했기 때문에 이번 개각에서 외상을 신선한 사람으로 세우면 그걸 계기로 외무성에서 6자회담에 대한 새로운 어프로치를 할 수 있는 객관적 구실을 만들 수 있다. 고이즈미가 납치문제를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아베에게 맡겼듯이 아베는 자기 지론을 가지고 약간 뒤로 물러나면서 새 외상 중심으로 해나가면 된다. 당장 9월에 6자 외상회담이 열리게 될 텐데 일본이 미국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지금의 입장을 그대로 가져가기는 어렵다. 최근 움직임에서 조금씩 변화 가능성이 감지되고 있다."

-개헌 논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단기적으로 보면 아베 정권의 초기 예상보다 개헌 추진은 후퇴했다. 지금은 신자유주의 개혁에 수반된 부작용들을 어떻게 하느냐 라는 사회경제 이슈가 더 큰 쟁점이다. 그런 불만이 정치적 내셔널리즘으로 연결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오히려 아베가 그걸 너무 성급하게 흔듦으로써 신자유주의 개혁의 불만을 내셔널리즘으로 다독거리는 작업에 단기적으로 차질이 생긴 상황이다. 개헌에 관한 여론조사를 보면 재미있는 것이 과거에는 개헌의 총론에 대해 찬성하는 사람이 60~70% 됐는데, 아베가 9조 개정을 포함한 개헌을 직접적 아젠다로 밀고 나오자 찬성 여론이 줄어들었다. 그런 방식의 개헌에 불안해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이다."

- 일본의 새로운 정국구도에 대해 한국이 특별히 유의할 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현재 한일관계는 정치지도자 사이에 완전히 냉각돼 있다. 아베 정권은 노무현 대통령 임기 내에 정상간 관계를 더 이상 발전시키지 않겠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 같다. 오히려 자기 임기가 더 빨리 끝날지 모르게 됐지만, 어쨌든 한일관계는 정치적 관계회복이 그렇게 절실하지 않은 시대로 접어들었다.

정치가 냉각돼 있어도 경제와 사회는 제대로 돌아가는, 그런 면에선 성숙한 관계이다. 중일관계와는 다르다 중국과는 정치적으로 마찰이 일어나면 경제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일본 재계 측에서 관계회복을 요구한다. 한일관계의 냉각은 일본에도 책임이 있지만, 지금 한국의 대응이 현명하다고는 할 수 없다. 일본과는 부딪히면서도 공조해야 하는 부분 있다. 일본 내에도 다양한 관점이 있고, 정국구도도 변하고 있는 만큼 그 다양성을 올바로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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