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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애폴리스를 관통하는 미시시피를 가로지르는 다리. 최근 붕괴된 다리는 이 다리 보다 조금 더 상류에 있다.
미니애폴리스를 관통하는 미시시피를 가로지르는 다리. 최근 붕괴된 다리는 이 다리 보다 조금 더 상류에 있다. ⓒ 김창엽
미시시피 강의 상류,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 시 중심에 위치한 4차선 고속도로의 다리 하나가 현지 시각으로 1일 오후 6시 10분께 붕괴됐습니다. 수십명의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붕괴된 이 다리는 지난 겨울 크리스마스 때, 차를 몰고 지나쳤던 다리이기도 해서 남의 얘기처럼 느껴지지만은 않습니다. 그때 미니애폴리스 시내로 들어갔다가 세인트 폴로 이동하면서 먼발치서 한 번 봤던 다리였습니다.

붕괴라는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보통 다리에는 이런 저런 사연들이 많이 얽혀 있습니다. 특히 미시시피의 다리들은 미국 역사의 한 페이지라고 할 만큼 다양한 얘기들이 깃들어 있습니다.

'물 건너 갔다'는 말에서 역설적으로 알 수 있듯, 다리는 서로 다른 두 개의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존재입니다. 미시시피의 다리들은, 한 예로 식민지 시절 서부 침탈의 대표적인 통로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명실공히 미국의 동서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만, 미시시피를 따라 한창 다리가 건설되던 19세기 말~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다리 건설을 두고 갈등도 적지 않았습니다.

일리노이와 아이오와주의 경계를 이루는 미시시피 강에 놓인 더블 데크 스윙 방식의 다리. 아래층으로 철도가 위층으로는 차가 지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일리노이와 아이오와주의 경계를 이루는 미시시피 강에 놓인 더블 데크 스윙 방식의 다리. 아래층으로 철도가 위층으로는 차가 지날 수 있도록 설계됐다. ⓒ 김창엽
미시시피 최초의 대형 교량인 록 아일랜드 아스널 브리지는 '다리의 속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다리는 일리노이주의 록 아일랜드(Rock Island)와 강 건너 아이오와주의 대븐포트(Davenport)를 이어주는데, 1856년 건설됐습니다.

록 아일랜드 아스널 브리지는 개통되자 마자, 세인들의 관심을 끕니다.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 미시시피 강의 양안 수운을 담당했던 증기선 업자들이 다리가 놓이자 배로 교각을 들여받는 바람에 다리가 불에 타고, 이 바람에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던 것입니다.

미시시피를 가로질러 사람과 화물을 운반하며, 먹고 살던 증기선 업자들로서는, 다리 개통은 속된 말로 '쪽박' 차라는 얘기나 다름없지 않았겠습니까. 결국 증기선 업자와 교량 건설업자 측이 법정에서 싸움을 벌이는데, 이때 교량 건설 업자 측에 섰던 사람이 당시 촉망받던 젊은 변호사인 에이브러험 링컨입니다. 후일 남북전쟁을 북군의 승리로 이끌고, 대통령을 지낸 그 링컨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 다리는 서부 침탈의 신호탄과 같은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다리 이름 중 '병기창'이라는 뜻의 아스널이 들어간 데서 짐작할 수 있듯, 이 다리가 시작되는 록 아일랜드에는 당시는 물론 지금도 미국 최대의 병기고 중 하나로 꼽히는 군사시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서부 공략의 전진 기지라고나 할까요.

미시시피에 속속 들어서기 시작한 다리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낭만 시대의 종언'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다리가 놓이기 전 미시시피에서 활약한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크 트웨인은 미시시피를 배경으로 한 소설, <허클베리 핀>과 <톰 소여의 모험>의 작가이잖습니까. 그는 이 글을 쓰기 전, 미시시피 중류의 해니발(Hannibal)이라는 곳에서 당시 미국 최고의 연봉 직종 가운데 하나였던 미시시피의 증기선 선장으로 일했습니다. '마크 트웨인'이라는 필명 자체도(증기선이 운항하기에 안전한) '수심 두 길 깊이'에서 유래했으니 마크 트웨인과 미시시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지요.

해니발의 미시시피 강가에 자리잡은 마크 트웨인 기념물. 왼편으로 보이는 다리가 마크 트웨인 시대에 놓였더라면 톰소여의 모험과 같은 명작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해니발의 미시시피 강가에 자리잡은 마크 트웨인 기념물. 왼편으로 보이는 다리가 마크 트웨인 시대에 놓였더라면 톰소여의 모험과 같은 명작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 김창엽
배를 타고 강을 가로 지르고, 강을 따라 상하류로 오르락 내리락 하던 시대에는 그 나름의 낭만이 있었을 겁니다. 마크 트웨인의 소설도 그런 시대적 배경에서 탄생할 수 있었던 거고요. 그러나 다리가 들어선 뒤, 자동차나 마차로 2~3분이면 휙 강을 건널 수 있게 됐으니, 수운이 활발하던 시절 특유의 정취, 정서가 사라지는 것은 뻔한 일 아니겠습니까.

낭만의 시대가 가고, 또다른 시대가 도래하면서 다리들은 미시시피 서편 언덕에 수많은 도시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번 붕괴 사고가 난, 미네아폴리스를 비롯 세인트 루이스 등 굵직한 도시들이 다리를 등에 업고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거지요.

세인트 루이스는 실제로 별명이 '서부로 향하는 관문' 인데요. 이 도시의 상징으로 미시시피 강가에 대형 아치를 세워, 자신들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지요.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아치가 서부 침탈을 정당화 하는 상징물이라며 이의를 제기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미시시피 강변에 형성된 크고 작은 도시를 거쳐, 미시시피를 따라 남북으로 왕복하면서 보니, 중요한 의미를 가진 다리만도 얼추 20~30개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중 인상적인 다리 몇 개만 간추려 본다면, '아이오와 일리노이 메모리얼 브리지', '포트 매디슨 다리', '체인 오브 록스 브리지' 등을 들수 있겠네요.

아이오와 일리노이 메모리얼 브리지는 미시시피를 가로지르는 다리들 가운데 전통 현수교 방식으로는 유일한 다리라고 하더라고요. 교각과 연결된 탑의 정상에서 케이블이 무지개와 역방향으로 늘어진 게 현수교인데, 샌프란시코의 금문교가 대표적이지요.

포트 매디슨 다리는 아이오와 일리노이 메모리얼 브리지 보다 조금 하류쪽에 있는데, 1927년에 완공된 이 다리는 더블 데크(Double Deck)-스윙(Swing) 스타일로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군요.

아래층 데크로는 기차 레일이 깔려 있어 기차고 지나고, 위층 데크로는 차가 지날 수 있어 '더블 데크'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스윙이라는 말은 다리 가운데 쯤의 교각 위의 다리 상판이 스윙이 돼 배가 지나다닐 수 있도록 다리가 열린다 해서 이런 이름을 얻었습니다.

세인트 루이스의 상징물인 대형 원형 아치가 다리 왼편으로 보인다. 세인트 루이스 등의 미시시피 강변의 대도시는 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가 낳은 부산물이다.
세인트 루이스의 상징물인 대형 원형 아치가 다리 왼편으로 보인다. 세인트 루이스 등의 미시시피 강변의 대도시는 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가 낳은 부산물이다. ⓒ 김창엽
체인 오브 록스 브리지(Chain of Rocks Bridge)는 다리 가운데 부분이 22도 가량 확 꺾여 있습니다. 공중에서 보면 다리가 '일' 자가 아니고 '브이(V)' 자처럼 보이는 거지요. 다리를 꺾어놓은 것은 밑으로 배가 잘 지나다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하네요. 이 다리 밑 미시시피 강바닥에는 큼지막한 바위들이 많아 물살이 거센데, 이를 피해 배가 지나다니도록 설계하다 보니 다리를 중간에서 꺾을 수밖에 없었다는 거지요.

이밖에 미주리의 세인트루이스와 일리노이의 이스트 세인트루이스를 잇는 이즈 브릿지(Eads Bridge)는 1874년 완공 당시 다리 상판 밑이 무지개 같은 형태를 한 아치형 다리로는 세계 최장(6400여 피트)이어서 화제를 모았다고 합니다.

미시시피의 수많은 다리들은 건축, 토목학적 측면에서 다양한 기술과 과학, 도전 정신이 녹아든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발원지인 캐나다 국경 부근에서부터, 하구인 뉴올리언스까지 미시시피는 어떤 의미에서는 다리의 전시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물론 다리 하나 하나에 이런 저런 얘기와 사연이 녹아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덧붙이는 글 | 길거리에서 자면서 2006년 8월부터 네 계절 동안 북미지역을 쏘다닌 얘기의 한 자락입니다. 아메리카 노숙 기행 본문은 미주중앙일보 인터넷(www.koreadaily.com), 김창엽 기자 스페셜 연재 코너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미네아폴리스#다리 붕괴#미시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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