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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주 어렸던 초등학교 때,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라디오 방송이 있다. 바로 5월 18일 '당시 전두환 보안 사령관의 지도하에 광주 중심가에 탱크를 진입시켜 소요사태를 진정시켰다'는 멘트였다.

당시 난 등교 준비로 씻고 있었고 방에서 아버지가 하시는 말씀이 무심코 들려왔다. "그래 전두환이처럼 화끈하게 밀어 붙혀야돼! …"

그 이후로 '광주 민주항쟁'은 '광주 사태'란 이름으로 불리면서 그 원인을 '극성맞은 호남 사람들과 빨갱이의 사주'로 나의 아버지를 비롯한 소위 '비호남' 사람들의 안줏거리 정도로 전락시켜 버리고 말았다.

광주 민주항쟁의 원인을 엉뚱한 곳으로 여론은 이해했던 것이다. 아니 군부는 그것을 노렸을지도 모른다.

이번 아프간 인질 사태를 통해 난 개인적으로 지난 10여 년 전 '광주 항쟁'에서 경험했던 여론의 편견을 다시 느낀다. 봉사팀이 방문하려던 가즈니 지역 주민들까지 석방을 요구하는 이례적 시위를 벌인 모습을 보면서도 '극성스러운 기독교인들'을 자꾸 비난의 소재거리로 언론마저 기사화하고 있다.

아프간은 아이들이 학교를 다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살해당할 수 있는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럼에도 설사 정부가 시위를 계획했다 하더라도 얼굴을 내놓고 구호를 외치며 탈레반에 도전하기란 목숨과도 관련된 엄중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시위에 수백 명 이상이 참여했다. 이유가 무얼까? 왜 '극성맞은 기독교인들'을 위해 회교도인 그들이 목숨의 위협을 감수하면서까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섰을까?

한국 봉사팀들이 비록 단기간 여기 저기서 방문했지만, 그들의 의료와 교육 봉사가 그들에겐 너무도 절실한 도움이었고 실제로 큰 힘이 되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조차도 비난하고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말하는 '안전 불감증'도 이런 본질을 덮을 수는 없다. 아프간을 돕는 유일한 일반 시민을 한국이란 나라가 보내고 있었다. 아프간 사람들은 한국을 자신들을 도와주려는 나라로 더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극성맞은 기독교인'이란 명예(?)는 사실 일부 대형 교단들과 책상머리에서 기획하는 관련 단체들의 공명심에서 비롯되었다. 이들은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도움과 선교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이벤트성 행사에 치중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지 선교사를 비롯해 아프간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이런 방식에 깊은 우려와 심지어 반대를 표했었다.

이번 인질 사건은 이런 진짜 '극성맞은' 짝퉁 기독교인들과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언론(일부 외신을 보함해서)은 자꾸만 '극성스러운 선교'를 엉뚱하게 관련 기사로 운운하며 보도하고 있다.

더 나아가 이런 여론과 기사들은 현재 아프간 현지에서 이름과 근황을 전혀 알리지 않고 목숨을 걸고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상당히 많은 수의 한국인 선교사들과 봉사자들을 편견(국내에선)과 위험(현지에선)에 빠지게 하고 있다.

무려 10여 년 동안 광주 시민들은 폭도로 불리며 억울한 심정을 숨기며 살아왔다. 이들이 폭도였나? 지금 한국과 일부 편견에 사로잡힌 외신들은 일부 기독교도들의 왜곡된 열정을 이번 사건과 연결시킨다. 이들 봉사팀이 극성스러운 문제를 일으키던 기독교인들인가?

광주 시민들은 당시 다른 지역에선 침묵하던 민주화를 외치던 선구자들이었다. 그들이 비록 총으로 맞서 폭력을 행사하긴 했어도, 이런 자위행위가 민주화를 외쳤던 본질을 전혀 가리지는 못한다.

이번 아프간의 한국인 인질들은 의사와 간호사들을 비롯한 일반인들이었다. 이들이 뭐가 아쉬워 반짝이는 모래사장에서의 달콤한 휴가를 마다하고 그 척박한 아프간의 병자들과 아이들을 찾아갔겠는가?

이들이 안전수칙을 무시한 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행동으로 이들의 숭고한 의도와 활동이란 본질을 덮을 수는 없다.

어제 영화 <화려한 휴가>가 전국에 개봉되었다고 한다. 지난 대학 시절에 광주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분노와 함께 하염없이 흘렸던 눈물이 기억난다. 자국의 국민들을 향해 총을 무차별 난사한 군부와 그 수장들이 이 나라의 권력을 잡은 어처구니 없던 한국의 슬픈 역사를 보고 분노했고, 그 희생자들의 억울함을 느끼며 울었었다.

당시 상황을 <뉴욕타임즈>는 "Kwangju Massacre(광주학살)"이라고 묘사했었다. 그리고 오늘 <뉴욕타임즈>는 아프간의 봉사팀을 "Relief Mission(구조사역)"이라고 쓰고 있다. 본질은 신음하는 아프간 사람들을 사랑하는 한국인들의 선량한 'Relief(구조)'였다.

오늘 아프간에 억류된 한국인 인질들을 말하는 언론과 여론을 바라보면서 지난날 <화려한 휴가>를 떠올리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고 배형규 목사의 희생에 깊고 깊은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본인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krakory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인질#화려한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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