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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번호 16. 세월-1
작품번호 16. 세월-1 ⓒ 정만진
콩돌 해수욕장, 모래가 아니라 콩만한 작은 돌들로 이루어진 국가 지정 천연기념물(제392호) 해수욕장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한 자코메티의 말을 기억하지 않더라도, 금생여수(金生麗水)라는 말을 실감나게 해주는 가지각색의 작은 돌들은 정말 앙증맞을 만큼 예쁘다.

세월은 대상을 아름답게 만들기도 하는가 보다. 그런데 공무원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이 작은 돌들이 피부병에 좋다는 소문이 나자 외지인들이 몰려와 한 자루씩 퍼담아갔기 때문이다. 단속을 실시한 이후, 사람들은 맨발로 1km 콩돌해수욕장을 걷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래, 독과점은 좋지 않은 것이다. 본래 세상에 '내것'이라고는 없었다. [사진 = 콩돌 해수욕장]

작품번호 17. 세월-2
작품번호 17. 세월-2 ⓒ 정만진
굿이 끝나면 무당은 구경꾼들에게 계면떡을 나눠준다. 그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버린 자는 계면떡을 얻어먹지 못한다. 굿의 결과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바다를 따라 길게 펼쳐진 콩돌 해수욕장을 걸으면서도 이러한 삶의 지혜를 깨닫는다.

맨발로 걸은 저 무수한 흔적들을 보라. '천천히 걷는 사람에겐 먼 길이 없다'는 격언을 믿으며, 햇살을 받아 따끈따끈해진 콩돌 해변을 끝까지 걸은 사람은 자신의 피부가 아름다워진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중간에 포기한 자는 그렇게 되지 못했다. 성급하게 결과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겠다. [사진= 콩돌 해수욕장]

작품번호 18. 세월-3
작품번호 18. 세월-3 ⓒ 정만진
이제 백령도엔 염전이 거의 없다고 한다. 세월의 무게가 사람의 뇌에서 기억력을 앗아가고, 피부에서 싱싱함을 빼앗아가듯이, 백령도에서는 염전을 없애간 것이다. 과연 세월은 많은 것이 이 세상과 개인에게서 사라지게 만든다.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에서는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먼 처녀사' '문설주에 기대이고 엿듣고 있다'지만,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의 흐름이 그저 무섭기만 하다. 이제 남은 세월은 내게서 또 무엇을 빼앗아갈 것인가. 과연 '외로운 이 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황조가)' [사진= 백령도의 염전]

작품번호 19. 세월-4
작품번호 19. 세월-4 ⓒ 정만진
백령도에는 어부가 별로 없다. 대부분 어민이 아닐까 싶지만, 군인을 제외한 민간인 중에서 겨우 7∼8%만이 어민이다. 대부분 농민이다. 한 해 농사를 지으면 3∼4년 먹을 만한 양식이 나온다고 한다. 토질이 뛰어나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엄청난 간척지를 만들어 농토를 넓혔고, 세월은 백령도의 몸매를 바꿔버렸다.

콩돌 해변에서 유리조각과 깨진 조개껍데기를 줍던 할머니가 내게 묻는다.

"백령도가 어때?"
"좋습니다. 공기 좋고, 인심 좋고, 경치 좋고……."
"그렇지? 옛날부터 그랬어. 땅값도 싸. 여기 와서 살아. 대환영이야."

사진을 찍자고 하니 한사코 사양하더니 얼굴이 나오지 않는 조건으로 촬영을 허락하신다. 그렇다. 얼굴 낼 일이 없으면 무에 대도시에서 바락바락 사나. 아무리 거액의 아파트에 들어앉아 산들 사실은 닭장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사진= 대규모 간척지]

작품번호 20. 조국의 해변
작품번호 20. 조국의 해변 ⓒ 정만진
백령도에 한번 가보아야지 하고 생각하였을 때 내 마음속에 짙게 드리워져 있던 '백령도의 이미지'를 거의 흡사하게 재생해준 사진이다. [사진= 바닷가의 출입 금지 표식]

작품번호 21. 심청-1
작품번호 21. 심청-1 ⓒ 정만진
백령도에서 북한땅 옹진반도까지는 불과 12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옹진반도의 끝인 장산곶의 앞바다가 바로 심청이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빠져 죽은 인당수이다. 인당수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에 심청 동상이 섰다. 동상 옆에는 고성능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 심청 동상]

작품번호 22. 심청-2
작품번호 22. 심청-2 ⓒ 정만진
심청 박물관이라 할 만한 심청각은 2층 건물이다. 심청각의 규모는 건물 바로 뒤에 서 있는 심청 동상의 크기로 가늠해볼 수 있다. 심청각 옆의 탱크 쪽에서 찍은 이 사진에서는 심청 동상이 등(燈) 사이에 자그맣게 보인다. [사진= 심청각]

작품번호 23. 심청-3
작품번호 23. 심청-3 ⓒ 정만진
심청각 정면 모습. 하늘로 치솟은 지붕이 심청의 올곧은 정신을 잘 상징하고 있는 듯 보인다. 제 몸을 던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고, 나아가 세상 모든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한 심청의 살신성인, 상생의 정신은 현대 들어 더욱 소중한 가치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극단적 미움과 반목으로 무차별 살상을 서슴지 않았던 우리의 혹독한 정신사에 심청은 효 이상의 의미로 재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백령도는, 심청이 지고한 삶의 윤리를 온몸으로 실천한 인당수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곳에 심청각을 건립하고 동상을 세웠다. [사진= 심청각]

작품번호 24. 길-1
작품번호 24. 길-1 ⓒ 정만진
백령도는 아직 촌(村)이다. 그것은 백령도에서 가장 번화한 곳의 지명이 진촌(鎭村)인 것만 보아도 짐작이 된다. 사진은 진촌의 밤 풍경. 간판과 불빛이 60년대를 연상하게 해준다. 백령도에 와서 밤에 거리로 나가보면 마치 과거로 가는 길목에 들어선 것만 같다. 그러나 어두운 길을 걸으면서도 마음은 어쩐지 평안해지니 이것이 어인 변고일고. [사진= 진촌리의 밤]

작품번호 25. 길-2
작품번호 25. 길-2 ⓒ 정만진
한국전쟁 때 백령도에는 황해도 쪽에서 피난온 8천여 명의 민간인 청년들이 모여 동키부대를 결성했다. 그 활약상은 정말 대단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정규부대가 아니어서 미군으로부터 무기를 얻으려면 인민군의 코를 베어와서 증거물로 보여주어야 했다고 한다. 동키부대가 당시 사용하던 물탱크 사진을 역광으로 찍어놓고 흐뭇해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현장은 따로 있었다. 그와 같이, 역사에 진면목을 제대로 남기지 못한 사람들은 동키부대만이 아니리라. [사진= 진촌리 어느 골목의 저물 무렵]

작품번호 26. 길-3
작품번호 26. 길-3 ⓒ 정만진
인천에서 백령도로 가는 길목에서 만난 어느 풍경. 어부들이 배를 타고 연안으로 접근하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그들은 초쾌속정을 탄 우리를 보더니 먼저 손을 흔들어준다. 삶의 현장에서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관광 다니며 여가를 즐기는 우리에게 먼저 반가움을 표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의 여유는 여가를 낳는 돈과 권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땀흘려 사는 진정성에서 오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사진= 백령도로 가는 해상]

작품번호 27. 길-4
작품번호 27. 길-4 ⓒ 정만진
백령도 가는 길. 배가 지나가자 바다는 하얗게 물보라를 일으키면서 섬으로 밀려가고, 가마우지 한 마리 놀란 듯 섬 창공으로 치솟는다. 물은 물대로 갈 길이 있고, 새는 새 대로 갈 길이 따로 있다. 저들은 결코 길을 잃지 않는다. 나는 사람답게 가야할 길을 잃지 않고 곧게, 곱게 걸어왔는가. [사진= 백령도로 가는 해상]

작품번호 28. 길-5
작품번호 28. 길-5 ⓒ 정만진
백령도에는 호텔이 없다. 누구든 백령도에서 잠을 자려면 여관으로 가는 길을 걸어야 한다. 만약 당신이 백령도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불편하거든 '황금이 입을 열면 모든 혀가 침묵한다'는 격언을 상기하기 바란다. 여관도 서서 바라보지 말고 땅에 쭈그리고 앉아서 다시 응시해보라. 언뜻 누추해 보이던 여관도 보는 길에 따라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사진= 백령도의 여관]

작품번호 29. 길-6
작품번호 29. 길-6 ⓒ 정만진
우럭들이 바다를 떠나 뭍으로 왔다. 그러나 길이 다르면 사는 방식도 다른 법이다. 우럭들은 죽어 사람의 양식이 됨으로써 새로운 삶의 길을 가고 있다. 인간도 죽으면 저렇듯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새 길을 가는 것인지 궁금하다. 가만히 살펴보니, 안개도 우럭의 몸에 묻어 촉촉하게 되살아나고 있다. [사진= 용기포 항의 철망]

작품번호 30. 길-7
작품번호 30. 길-7 ⓒ 정만진
이제 우리의 길은 통일이다. 백령도 주민들은 인천에서 배를 타고온 모두가 볼 수 있는 지점에 두 개의 높은 돌탑을 나란히 세우고 '통일 기원탑'이라 명명했다. 그리고 그 일대 창공에 마흔다섯 장의 태극기를 내걸었다. 1945년 해방을 잊지 말자는 뜻이자, 통일의 염원도 결코 잊지 말자는 뜻이다. [사진= 용기포 항의 통일 기원 돌탑]

작품번호 31. 길-8
작품번호 31. 길-8 ⓒ 정만진
백령도 용기포 들머리에 휘말리고 있는 45장의 태극기들. 1945년을 상징한다. 사곶 천연 비행장을 바라보며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태극기들 아래에서는 백령도 특산품인 까나리액젓이 통 속에서 익어가고 있다. 마치 '통일의 소원'이 무르익어 가듯이. [사진= 용기포 항의 까나리액젓 숙성 용기와 태극기]
#백령도#사진전#동키부대#콩돌 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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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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