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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해맞이 공원으로 가는 해안도로
영덕 해맞이 공원으로 가는 해안도로 ⓒ 김대갑
그런데 이들 이인이나 기인과 달리 천하의 잡놈이요, 건달이면서 기존 양반 체제에 저항했던 인물들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 또한 민중적 성격인데, 거기에 덧붙여 해학과 골계미를 갖추었다는 특징이 있다.

이들은 권력자나 관의 횡포를 속임수로 보복하고, 장사치나 서울사람들을 놀려대고, 도덕군자인체하는 사람들의 위선을 쉴 새 없이 폭로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봉이 김선달'이며, 그와 거의 유사한 시기에 활동했다고 전해지는 경북 영덕의 방학중과 경주의 '정만서' 등도 그런 인물들에 속한다.

김선달은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천하의 사기꾼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김선달의 존재 유무는 정확하지 않다. 김선달의 출생지나 이름이 명확하지 않고, 그가 한 행동들이 상상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선달은 여러 사람의 구전을 통해 만들어진 가공의 인물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영덕의 '방학중'은 김선달과 비슷한 행적을 보이는 인물이지만, 그 출생지나 사망지가 비교적 정확하게 남아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김선달과 상당히 구별된다. 김선달이 개성을 중심으로 활동했다면 방학중은 경북 영덕과 울진, 삼척 등지에서 사기행각과 기행, 해학과 골계를 안겨준 인물로 유명하다.

특히 대게로 유명한 영덕군 강구면에 가면 방학중에 관한 일화가 수도 없이 퍼져 있다. 도대체 방학중에게는 어떤 이야기들이 전해져 오는 걸까?

첫째 이야기, 방학중에게 봉변당한 담배장수

대게의 고장, 강구항
대게의 고장, 강구항 ⓒ 김대갑
방학중이 가는 길에 담배장수가 앞서 걸었다. 방학중이 담배장수에게 담배를 하나 달라고 하자 그가 못 주겠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담배장수를 괘씸하게 생각한 방학중. 때마침 논 가를 지나가고 있었는데, 아리따운 여인이 논을 매는 것을 본 방학중은 대뜸 그 여인에게 다가가 입맞춤을 한 후 달아나고 말았다.

얼떨결에 당한 그 여인은 주저앉아 버렸고, 곁에 선 남자들이 방학중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망가던 방학중이 뒤따라오는 담배장수를 보곤, "형님 형님! 빨리 오시오. 잡히면 큰일 납니더"라고 하는 게 아닌가. 사람들은 담배장수가 방학중의 형제라 여기고는 그를 붙잡아 흠씬 두들겨 패주었다. 그리고 그가 지닌 담배와 짐을 몽땅 압수하고 말았다.

둘째 이야기, 이천 냥에 변소를 빌린 방학중

하루는 방학중이 서울 거리를 지나다가 갑자기 배꼽 아래에 심한 통증을 느꼈다. 다급해진 방학중은 어느 양반집 대문을 두드리면서 잠시 통시를 빌리자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안주인은 잡인을 들일 수 없다며 거절했다.

이에 방학중은 천 냥을 주겠다고 제의했으나 안주인은 일없다며 역시 거절했다. 다급한 방학중은 이천 냥을 주겠다고 했고, 그 말에 솔깃해진 안주인은 잠시 통시를 이용하라고 허락했다.

시원하게 오물을 방출한 방학중.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안주인이 너무 괘씸했다. 그래서 이천 냥만큼 통시를 사용하겠다고 하인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안주인은 황급히 통시로 달려와서 천 냥을 줄 테니 어서 나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방학중은 콧방귀만 뀔 뿐 도무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편의 퇴청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천하잡놈 하나가 통시에 들어앉아 나갈 생각은 안 하고…. 다급해진 안주인은 이 천 냥을 주겠다고 했으나 역시 방학중은 콧방귀만 뀔 뿐이었다. 결국 안주인은 삼천 냥을 주어서야 방학중을 통시에서 나오게 만들었다.

셋째 이야기, 방학중과 순라꾼

지품면 바닷가
지품면 바닷가 ⓒ 김대갑
하루는 방학중이 밤늦도록 술을 마시다가 그만 순라 시간을 넘기게 되었다. 급히 집으로 돌아가는데, 저 멀리서 순라꾼들이 다가오는 게 아닌가. 다급해진 방학중은 담벼락에 바싹 붙은 후에 두 팔을 번쩍 들었다. 방학중을 발견한 순라꾼, 그에게 다가와서 묻는다.

"이기 머로(무엇이냐)?" 방학중 왈, "빨래요."

"빨래가 말을 하나?"
"입은 채로 빨래 한 거요."

그 말을 들은 순라꾼들은 사람인 줄 알면서도 웃으면서 그냥 갔다고 한다.

방학중의 묘지가 잇는 지품면 바닷가
방학중의 묘지가 잇는 지품면 바닷가 ⓒ 김대갑
이외에도 서울 기생을 골려 준 거문고 이야기, 아들이 죽어 비통한 여인을 달래 준 이야기 등 방학중에 관련된 이야기는 영덕 지방에 광범위하게 전해져 오고 있다. 대게로 유명한 영덕군에는 이렇듯 기인과 이인의 이야기가 널려 있고, 각종 전설과 설화가 대게의 수많은 발처럼 풍부하게 흐르고 있는 것이다.

금수강산 곳곳에 숨어 있는 민중들의 이야기를 발굴하는 즐거움은 대게의 향긋한 속살만큼이나 맛깔스럽다. 영덕에서 대게를 먹는 즐거움과 더불어 살아 있는 민중의 이야기를 듣는 흥겨움을 맛보시도록….
#영덕#대게#지풀면#방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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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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