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과 미국, 누구와 '딜'을 할 것인가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아프간 피랍사태 해결책의 딜레마

07.07.24 09:54l최종 업데이트 07.07.24 09:54l

▲ 파병반대국민행동은 23일 오후 서울 광화문 미국 대사관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군의 아프간 철군을 주장했다.

시선을 돌릴 필요가 있다. 미국이다. 어쩌면 한국인 피랍사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곳은 미국인지도 모른다.

탈레반이 요구한다. 한국인 인질과 탈레반 죄수를 맞교환하자고 한다. 이 요구를 받아들이려면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단독으로 결정할 처지가 아니다. 미국의 영향권 안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동의는 필수인데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테러단체와의 협상은 없다고 한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납치된 이탈리아 기자를 구하기 위해 탈레반 죄수 5명을 내주자 비난을 퍼부은 바도 있다.

그런데도 <한겨레>는 다른 전망을 내놓는다. 미국이 결국 동맹국인 한국의 결정을 "존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왜일까? 왜 이런 전망을 내놓은 걸까?

<한겨레>는 거꾸로 본다. 이탈리아 기자와 탈레반 죄수 맞교환을 비난한 미국의 행동 이면을 살핀다. ▲미군 장성이 아프가니스탄 주둔 나토군 사령관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맞교환이 부시 행정부 몰래 이뤄졌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점 ▲당시 이탈리아 정부와 미국 정부가 긴밀한 외교채널을 유지하고 있었던 점을 들어 사실상 미국의 양해가 있었다고 보는 게 상식이라고 분석한다.

설득력이 있다. 테러단체와의 협상은 없다는 노선과, 동맹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현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게 미국이다. <한겨레>가 제시한 또 하나의 근거, 즉 "동맹국에서 반미정서가 급속히 확산될 수 있(는)" 상황까지 고려해야 하는 미국이다. 한국 정부의 결정을 미국이 "존중", 또는 '모른 체' 할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

▲ 24일 새벽 0시가 넘어 "협상시한이 24시간 연장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진 후 차성민 아프간 피랍 가족 비상대책위원장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미국, 피랍사태 해결위해 알면서 '모른 척' 할 수밖에 없을 것

문제는 차원이다. 미국이 맨 입으로 "존중" 또는 '모른 체' 해줄까? 가능성이 적다. 다급한 곳은 한국 정부다. 이럴 때 거래를 시도하면 이득이 커진다.

거래 품목도 이미 준비돼 있다. 미국은 한국이 동의ㆍ다산부대 철군 계획을 확정하자 새로운 요구를 꺼내든 바 있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 등이 나서 "동의ㆍ다산부대의 철수 뒤에도 아프가니스탄 재건에 한국군이 지속적으로 기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체 파병을 해달라는 얘기다.

맞물리는 측면이 있다. 한국은 철군 계획을 다시금 확인하면서 피랍 한국인 석방을 이끌어낼 수 있고, 미국은 추후에 실리를 챙길 수 있다.

이것만이 아니다. 다른 거래 품목이 있다. 자이툰 부대다.

자이툰 부대 철군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국방부는 자이툰 부대 철군 결정을 9월로 연기했다. 따라서 철군 또는 계속 주둔은 반반의 가능성으로 남아있다. 한국기업의 이라크 진출과 아르빌 지역 자원 확보를 위해 철군을 미뤄야 한다는 국내 여론도 상존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정세도 한 몫 한다. 이라크 주둔 미군 철군이 미국 대선의 최대 이슈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일각의 공세에 부시 미 대통령이 수세에 몰려있는 것도 공지의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라크 주둔 다국적군 가운데 규모 3위인 자이툰 부대가 전면 철군하면 부시 대통령이 더욱 궁지에 몰린다. 미국 정세가 정리될 때까지 자이툰 부대의 철군을 미뤄놓는 게 부시 대통령으로선 최선의 방안이다.

자이툰 부대 계속 주둔이든, 아프가니스탄 대체 파병이든 미국이 '거래'를 시도하면 한국 정부는 딜레마에 빠진다. 한국인 인질을 무사 귀환시키기 위해 파병을 유지하면 원인과 결과, 본류와 지류를 뒤집어 버린다. 납치사건을 풀기 위해 납치사건을 일으킨 문제의 근원을 더욱 키우는 꼴이 된다.

그렇다고 나몰라라 할 수도 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건 정부의 가장 큰 덕목이자 의무다.

어찌할 것인가? 현재로선 탈레반과는 협상을 하되 미국과는 거래를 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사실상 미국의 동의를 구해야 하는 맞교환 카드 대신 다른 협상카드를 꺼내 탈레반을 설득하는 게 묘책이다.

문제는 그런 협상카드가 있느냐 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