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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족산 자락에서 내려다 본 대전 시내 풍경. 사람의 집이 많은데 비례해서 모기의 집도 늘어날 것이니 저 속엔 얼마나 많은 모기집이 있을 것인가!
계족산 자락에서 내려다 본 대전 시내 풍경. 사람의 집이 많은데 비례해서 모기의 집도 늘어날 것이니 저 속엔 얼마나 많은 모기집이 있을 것인가! ⓒ 안병기
우리 어린 시절엔 그렇게 모기를 퇴치했다. 어디까지나 잔혹한 살충의 방식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모기를 쫓는 방식이었다. 이런 평화적인 방법 앞에 모기가 순순히 물러가겠는가. 아침에 일어나 살펴보면 종아리고 어깨고 모기에 안 물린 곳이 드물었다.

고통과 불편을 느끼던 인간은 마침내 '에프 킬라'로 대변되는 다양한 살충제를 발명한다. 나호열의 시 '모기향을 피우며' 는 모기향으로 모기를 박멸하는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음험한 공기가 방 안에 퍼진다
낮은 목소리의 모의가 무차별하게
짜증나는 여름밤의 배후를 친다
피리소리처럼 가늘게
마약처럼 습관적으로
발견되는 인간성
향기로운 모기향은
파리, 모기, 나방들을 한꺼번에
죽이고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처럼 방 안에는
편안한 잠이 보장된다
유유히 쓰레기를 치우는 손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모기향을 피우는
이 손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살의를 실행하는
이 손


나호열 시인은 충남 서천 출신이다. '모기향을 피우며'라는 시는 1989년에 나온 시집 <담쟁이 덩굴은 무엇을 향하는가>(청맥)에 실려 있다.

1953년생이니 앞서의 홍해리 시인과는 10년 가까이 차이가 지는 셈이다. 그러나 시집이 출간된 연도로 보면 시가 쓰여진 시기는 6, 7년가량 앞서 쓰여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90년대가 이르기 전에 이미 모기를 다루는 방식은 쫓는 방식에서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처럼" 대량살상 하는 방식으로 변모해 있다. 왜 그런 잔혹한 살육이 행해지게 되었는가. 일시적 방법에 지나지 않는 모기 쫓기는 일시적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연기를 따라갔던 암모기들이 언제 다시 되돌아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성가심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마침내 "편안한 잠이 보장"되는 모기향을 발명해낸다. 모기향이 가진 가장 큰 맹점은 파리, 모기, 나방 등을 차근차근 종류별로 분리한 다음 모기만 선택해서 죽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기향의 분별없음은 필연적으로 대량살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살의를 실행하는/ 이 (잔인한) 손"이라고 시인은 반성문을 쓰지만 그 반성문의 효력은 오래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모기를 통해 되돌아본 문명 잔혹사

이상으로 우리는 모기를 다루는 2가지 각기 다른 방식이 서술된 시를 읽었다. 사실 모기는 시의 소재로 다루기엔 거북한 곤충이다. 사람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기피곤충'이기 때문이다.

나의 어린 시절은 모기와 인간이 공존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평화와 공존의 물밑에선 모기의 준동을 막고자 모깃불, 모기장 등등 갖은 방법이 동원되고 있었다. 나의 어린 시절의 모기만이 수면의 적이 아니었다. 몸이나 옷에 붙어사는 기생충의 일종인 '이'와의 전쟁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이'라는 기생충은 '선택과 집중'이란 뭔가를 아는 녀석들이었다. 주로 인체에서 털이 밀집해 있는 부분에 집중해서 파고들어 미치도록 가렵게 했던 것이다. 그 시절 이와 모기라는 두 종류의 적과의 싸움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여름밤은 얼마나 괴로웠는지 모른다. '공존'이라는 불편한 형식을 견디지 못한 문명은 결국 '에프 킬라'나 모기향 등 대량 살상으로 방향을 틀고 말았다.

모기를 죽이는 방법은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간편하고 수월해졌다. 그러나 이것을 문명이 거둔 개가로 보기엔 어딘가 모르게 꺼림칙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이것을 두고 문명화 했다고, 진보했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모깃불이 모기향으로 바뀐 시간의 흐름 속에는 문명의 잔혹사가 있다. 문명의 발달을 감히 진보라 부를 수 없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이런 식의 인간성의 퇴보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요즘 사람들은 캠프 화이어는 알아도 모깃불은 모른다. 때때로 한여름 밤에 피우던 쑥 모깃불 향내가 그립다. '이 죽일 놈의 문명'이 그런 아련한 추억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여름의 불청객 '모기'를 말한다> 응모글


#모기#모기향#모깃불#한여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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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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