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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겉표지
<다크> 겉표지 ⓒ 비채
주인공의 이름은 미로. <다크>에서도 기리노 나쓰오가 내세운 주인공은 여자다. 분위기는 이제껏 그녀가 보여준 주인공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가슴 속에 '어둠'을 숨겨두고 있는 것 같다고 할까? 그녀가 있으면 주변의 빛들이 사라져버릴 것만 같은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미로는 자신이 감옥에 보낸 남자를 기다린다. 사랑해서 기다리는 것인지, 버릇처럼 기다리는 것인지는 모른다. 나이 마흔이 되면 죽을 생각을 하는 그녀는 남자를 기다리고 있다. 미로는 우연히 남자가 몇 년 전에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또한 그 사실을 자신만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로는 계부를 찾아간다. 어두운 과거를 지닌 계부는 맹인인 히사에와 동거를 하는 중이다. 미로는 아버지를 만나 그를 살해한다. 어떤 감정 때문에 죽이는 것인지는 미로도 정확히 모르고 또한 중요치도 않다. 중요한 것은 미로는 아버지의 돈을 훔쳐 달아나고 히사에는 자신의 행복을 파괴한 미로에게 복수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행복을 파괴한 여자와 행복을 파괴당한 여자가 인생을 놓고 쫓고 쫓기는 것이다.

기리노 나쓰오의 <다크>는 저자의 다른 소설들보다 음울하다. 소설의 분위기를 이렇게까지 어둡게 쓸 수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그것이 짙다. 상황 설정으로만 본다면 다른 작품들에 비해 눈에 띄는 것은 없다. 상황은 <아웃>이나 <아임 소리 마마>와 비슷하다. 그럼 왜 그런 것일까? 다른 작품들이 상황으로 인해 인간이 죄짓는다는 것을 보여준데 반해 <다크>는 인간 속에 있는 무언가가 깨어나 죄를 짓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주인공 미로만 하더라도, 아버지를 죽이는 이유가 분명치 않다. 그 후에 저지르는 범죄들도 마찬가지다. 감정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할까? 양심도 없고 변명도 없다. 필연적인 이유도 없다. 언급하는 이유들이, 죄를 저지르는데 일부러 갖다 붙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녀의 말처럼 "밤에 잠에서 깬" 독사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느껴진다.

미로보다 극적인 건, 맹인 히사에다. 히사에는 앞을 볼 수 없다. 누군가에 의해 행복이 파괴당했다면 삶의 의지를 쉽게 일으켜 세우기가 어려운 처지다. 복수라는 단어가 무색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히사에는 사건이 일어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린다.

그녀는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귀기에 들린 것처럼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다. 숱한 무시나 배신은 물론, 윤간을 당해도 포기하지 않는다. 이유는 오로지 하나. 미로를 죽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이유가 분명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히사에의 행동 또한 미로처럼 마음속의 무언가로 인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죄를 저지른다. 양심이라는 것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분노와 비열함만이 자리 잡고 있다. 간간이 등장하는 '구원'과 '희망'이라는 단어는 사치스럽게 여겨질 정도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이 있다. 그런 행태가 절망적인 상황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절망이 깊어질수록, 그런 행태도 가속화되고 있다. 이것은 확실히 눈길을 끌고 있다. 인간이 한없이 낮은 곳으로 추락했을 때, 소설은 그들에게 희망을 주려한다. 그런데 저자는 그것을 철저하게 짓밟았다. 그런 희망이라는 것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는 것을 말하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들을 극한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소설이 보기 불편한 것이야 이미 유명해진 사실이지만, 확실히 <다크>는 <아웃>이나 <아임 소리 마마>처럼 국내에 알려진 대표작들보다 그 수준이 높다. 더군다나 <다크>에는 '80년 광주'까지 담겨있다. 그러니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다크>를 본다는 것, 그것은 다른 장르소설을 볼 때와는 다른 각오로 임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크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일영 옮김, 비채(2007)


#기리노 나쓰오#OUT#아임 소리 마마#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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