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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인터넷 서점에서 1000원 짜리 할인 쿠폰에 눈이 멀어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구입했다. 비오는 날, 오후에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무심코 읽었다. 아무 의미 없이 '기아'에 관한 여느 책과 별 다를 것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갈라파고스
하지만, 지구 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 있음을 배우면서 몸이 떨렸다.

"서구의 부자 나라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신화가 있어. 그것은 바로 자연도태설이지. 이것은 정말 가혹한 신화가 아닐 수 없어. 이성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류의 6분의 1이 기아에 희생당하는 것을 너무도 안타까워해. 하지만 일부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불행에 장점도 있다고 믿고 있단다.

점점 높아지는 지구의 인구밀도를 기아가 적당히 조절하고 있다고 보는 거야. 숙명적인 기아가 지구의 과잉인구를 조절하는 확실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지. 기아가 산아제한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는 거야. 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죽는다는 자연도태설. 이 개념에는 무의식적인 인종차별주의가 담겨 있어." 본문인용(39-41쪽)


"기아는 자연도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인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서 전쟁보다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전쟁을 하면 돈이 든다. 외교문제도 발생한다. 국내의 반전운동도 걸림돌이다. 하지만 기아는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이다. 내 돈 들이지 않고 인구를 줄일 수 있다. 자연재해인 기아를 통하여 별 볼 것 없는, 버러지 같은 이들이 스스로 도태되어 갈 때, 강자와 있는 자는 살아남는다. 어쩌면 나는 이미 살아남은 자이다. 1분에 25명 정도의 어린이가 이 자연도태를 통하여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선별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상품성 있는 과일 선별작업이 아니다. 가뭄으로 쩍쩍 갈라진 '아고르다다'에서는 간호사들이 누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지, 그리고 그 순간의 상태로 보아 누구를 죽게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을지를 결정해야 한다.

"간호사는 엄마들에게 이렇게 말해야만 해. 댁의 아이는 너무 약하고, 우리의 배급량은 너무 빠듯해요. 그래서 아이에게 손목밴드를 줄 수가 없어요. 그럴 때 엄마 마음은 어떻겠니." 본문 56-57쪽 인용.

세계가 생산하는 식량은 129억 명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그럼. 자연도태와 선별작업을 통하여 죽어갈 어린이는 아무도 없다. 아니 죽어서는 안 된다. 인구보다 두 배나 더 많이 생산하면서 도태와 선별 작업을 통하여 우리의 미래가 꿈을 펴지도 못하고 죽어간다는 것은 범죄이다. 그럼 선별작업과 도태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소는 배를 채우고, 사람은 굶기 때문이다.' 전세계 옥수수 수확량의 4분의 1을 소들이 먹는다. 선진국에서는 이 소들이 너무 많이 먹어 영양과잉으로 죽어가기도 한다. 다른 쪽에서는 굶어죽고. 이는 반역이다. 서구 사회의 사상의 바탕인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다. 불경죄이다. 굶주린 자가 있으면 나의 것을 나누는 것이 하나님의 가르침이 아닌가. 이 반역의 길을 가는 유일한 이유는 소수의 자본 이익집단들이 자신들의 배부름을 위해서다.

사적 이익에만 함몰된 사람들의 의식이 지배하는 한 이 땅에 도태와 선별작업은 피할 수 없다. 사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상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세계 경제와 가치 체계를 지배하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대세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대세에 함몰되어 우리 스스로 따라가는 순간 어쩌면 우리도 도태와 선별 작업대 위에 설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정말 떨림으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었다.

방법은 있다. 기아는 시장의 원리를 배격해야 한다. 장 지글러는 극약처방을 내놓는다.

"시카고의 곡물거래소는 문을 닫아야 하며, 협의 등을 거쳐 제3세계에 대한 식량 공급로가 확보되어야 하고, 서구 정치가들을 눈멀게 만드는 어리석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폐지되어야 한다. 인간은 다른 사람이 처한 고통에 함께 아파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본문인용 169-170쪽.

먹는 것 때문에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단 한 명이 있다면 지구는 우주에서 보이는 가장 아름다운 별이 아니다. 우주에서 보이는 가장 아름다운 별, 지구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해야 한다.

'장 지글러'는 유엔 식량 특별 조사관이다. 그가 아들에게 들려주는 기아의 진실을 아버지라면, 어머니라면 아들과 딸과 함께 읽어야 할 '참 책'이다.

덧붙이는 글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저/유영미 역 | 갈라파고스 | 2007년 03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개정증보판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갈라파고스(2016)


#기아#자연도태설#신자유주의#에티오피아#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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