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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한 송이
연꽃 한 송이 ⓒ 서종규

아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 고재종 시인과 또 한 친구 세 명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휴대폰의 벨이 울렸고, 나는 급하게 저녁을 먹었다. 정말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고 급하게 가야 할 일이 생겼다고 하였다. 고재종 시인은 뒤돌아서는 내 등에 대고 "그렇게 바쁘게 사는가? 한 번 느릿느릿 살아 보소"라고 던졌다. 나는 친구의 말을 차에 싣고 그대로 줄달음질쳤다.

연꽃 두 송이
연꽃 두 송이 ⓒ 서종규

7월 4일 해질녘, 그 친구가 지워준 짐을 부리기 위해 전남 곡성군 겸면에 있는 겸면천을 찾았다. 이곳엔 전국에서 보기 드물게 목화를 시험재배하고 명꽃이 필 때에 명장축제를 벌이고 있는 곳이다. 삼기면에서 옥과천으로 흘러드는 시냇물을 따라 약 7㎞의 둑길이 형성되어 있다. 둑길엔 원두막이 군데군데 있고, 둑길 양옆에 각종 꽃들이 피어나는 곳이다.

느릿느릿 둑방길을 걸으며 눈에 들어오는 자연을 마음으로 끌어 들인다. 온통 녹색인 논에서는 장맛비를 맞은 벼들이 더욱 싱그럽고, 덩달아 길가에 있는 수풀들도 그 푸름이 선명해진다.

개망초가 가득한 징검다리
개망초가 가득한 징검다리 ⓒ 서종규

하늘을 한 바퀴 돌던 백로 한 마리가 냇물 속으로 고개를 처박아 먹이를 잡는다. 어떤 백로는 흘러넘치는 보위에서 지나가는 피라미를 기다리나 보다. 푸른 논을 느릿느릿 걷고 있는 백로도 보인다. 덩달아 이름을 알 수 없는 몇 마리 새들이 앞 뒤를 따른다.

둑방길은 들꽃들 천국이다. 어느 시인이 노래한 "왜정 때 큰 고모 밥풀 주워 먹다 들키었다는 그 눈망울" 같은 개망초가 둑방길 양옆엔 온통 하얗게 깔렸다. 느릿느릿 걷는 내게 그 눈망울들이 손짓을 한다. 하얀 꽃잎에 노란 꽃술들이 무더기무더기 흔들거린다.

순수
순수 ⓒ 서종규

바람이 분다. 천리향 향기가 싱그럽다. 너는 그렇게 향기부터 보내오리라. 하면 거기 굼뜬 황소마저 코를 벌름거리지 않을까. 나는 이제 그렇게 아득하겠다. 그 향기 아득한 것으로 먼 곳을 보면, 삶에 대하여 무얼 더 바라 부산해질까. 물결 잔잔해져 수심이 깊어진다. 나는 네게로 자꾸 깊어진다. - 고재종 시 '방죽가에서 느릿느릿' 중에서

둑방길을 걸어가면 돌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면 바로 목화전시포가 있는 목화공원이 나온다. 물 속엔 피라미들이 유영을 한다. 그 중 한 마리 물면에 입을 내밀면 흐르던 물결에 또 다른 물결이 생겨난다. 돌다리 주위를 맴도는 피라미는 나를 보는 것 같다.

전남 곡성군 겸면천에 자생하는 연군락
전남 곡성군 겸면천에 자생하는 연군락 ⓒ 서종규

목화공원엔 목화가 심어져 있다. 목화는 아직 다 자라지 않았다. 9월경에 연한 분홍빛을 띠는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린다. 이 열매가 다 익으면 하얀 솜털이 나온다. 이 하얀 솜을 모아 씨를 빼내면 면의 원료가 된다. 옛날에 우리나라 어느 마을에서나 다 재배를 했는데 요즈음은 재배지가 거의 없어졌다.

목화공원엔 목화만 심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각종 채소도 심어져 있고, 각종 야생화도 심어져 있다. 이미 꽃이 진 것도 있고, 아직 꽃이 피지 않은 것도 있다. 무더기무더기 피어 있는 개망초와는 달리 일정한 형태로 재배되고 있다. 팻말에 간단한 설명도 적혀 있다.

자신을 비추는 연꽃
자신을 비추는 연꽃 ⓒ 서종규

그런데 내 발길을 꽁꽁 얼게 만든 꽃이 눈에 들어 왔다. 바로 연꽃이다. 그것도 흐르는 냇가에 피어 있는 연꽃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자라난 연꽃인 것 같다. 물가에 핀 연꽃이 너풀거리고, 그 뒤에 하얗게 개망초들이 호위하고 있다.

대단히 신기했다. 냇가에 너풀너풀 자란 연잎이며, 그 사이사이 피어 있는 연꽃은 흐르는 물결에 어른거리며 내 마음 속으로 파고들었다. 연하디 연한 분홍빛이 국기봉처럼 솟아 있다.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수한 모습으로 고개를 내밀어 흐르는 물을 보고 있다.

전남 곡성군 겸면 목화공원 옆 냇가에 자라는 연군락
전남 곡성군 겸면 목화공원 옆 냇가에 자라는 연군락 ⓒ 서종규
어떻게 흐르는 물가에 연군락지가 형성되어 있을까? 목화공원을 가꾸는 면에서 옮겨 심었을까? 아니면 자생적으로 자라기 시작했을까? 사실은 목화공원 건너편 논에 많은 연들을 재배하고 있었다. 12농가에서 3만㎡의 논에 백련, 자련, 화련 등 50여 종의 연을 재배하고 있었다.

연꽃은 6월부터 9월까지 핀다. 보통 흙탕물에서도 맑고 환한 꽃을 피워, 속세의 더러움 속에서 피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고 하여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은 부처를 상징하는 꽃이다. 백련, 홍련, 가시연, 수련, 왜개연, 노랑어리연, 흰어리연 등 수많은 종류가 있다.

쉿
ⓒ 서종규

몇몇 사람들은 목화공원을 찾아와 자라는 목화와 꽃들을 관찰하기도 하고, 징검다리에 서서 피라미들을 건져보려고 물에 손을 휘저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흐르는 물가에 핀 연꽃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연꽃 가까이 가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산책길에서 물가까지 다가가야 하는데 이곳에는 갈대들도 자라고 있었고, 개망초꽃들도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길도 없는 수풀을 헤치고 물가까지 다가갔으나 연은 물 속에 있었다. 어쩌다가 물가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연꽃을 보기도 하고 물 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연꽃을 바라보기도 했다.

둑방길을 느릿느릿
둑방길을 느릿느릿 ⓒ 서종규

흐르는 물에 비친 연꽃은 순수함 그대로였다. 느릿느릿 둑방길을 걸어왔던 발걸음이 횡재를 한 것이다. 한 송이의 개망초를 보고도 그리움은 두 배로 흔들린다는데, 그 많은 꽃들과 대화를 하고, 더구나 물가에 자생하는 연꽃이 그 순수하고 수줍은 얼굴을 내미는 것을 몰래 훔쳐본 내가 그 꽃잎을 타고 노를 저어보고 싶었으니까 말이다.

한없이 순하디 순하게 자라 자생하고 있는 연꽃군락지 옆으로 호남고속도로가 달린다. 고속도로에는 순식간에 달려와서 사라지는 각종 차들 소리가 붕붕 거린다. 느릿느릿 걸었던 둑방길을 떠나면 달리는 저 차들처럼 내 몸도 내달릴 것이지만, 그래도 오늘은 떨어지는 햇살을 받아 뿌려대는 저 물살 위에서 그 햇살을 품어 피어나는 연꽃 한 송이 한 송이가 내 마음 속으로 들어 왔다.

친구야, 고마워.
친구야, 고마워. ⓒ 서종규

#전남 곡성군 겸면천#연꽃#목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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