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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육> 6월호 표지
<우리교육> 6월호 표지 ⓒ 우리교육(주)
그런 묘한 슬픔에 젖어 기차 속에서 읽은 월간지 <우리교육> 6월호 특집 '아이들의 상처와 아픔에 말 걸기'는 그동안 우리 학교교육이 얼마나 아이들의 상처와 아픔에 무심했는지를 통렬하게 적시하고 있었다.

결국은 '그 상처가 타인에 대한 폭력으로 분출됨으로써 아이들은 점점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감수성을 잃어간다'라고 <우리교육>은 우리 교육을 진단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문제 상황에 대한 진단은 넘쳐났지만 교육적인 성찰의 목소리는 없었던' 까닭이다. 그렇다면 교육적인 성찰의 목소리가 없었던 이유는 또 무엇일까? 그 이유는 이계삼(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가 지적하듯, '일없이 편하게' 가려는 안락에 대한 충동 때문이리다. 이 교사는 또 이렇게 말한다.

"성장기의 모든 시간 속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폭력과 그로 인한 상처를 응시하고, 대화하고, 어루만져주고, 그럼으로써 극복할 수 있는 것으로 견딜 만한 것으로 바꾸어 주는 '교육의 기술'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아이들은 '살기 위해' 상처를 내면 깊숙한 자리에 묻는다. 그리고 그 상처를 일생토록 짊어지고 다닌다."

바로 이 대목이었을 것이다. 내 안에 준비된 슬픔과 책을 통해 만난 또 하나의 슬픔이 어우러져 나를 온전한 슬픔에 젖게 한 순간이. 그 흠 없는 온전한 슬픔이 나를 구원하였듯이, '상처를 일생토록 짊어지고 다니는' 아이들도 그 상처가 거름이 될 수는 없을까? 이에 대하여 이 교사는 글의 말미에서 아주 흥미로운 제안을 한다.

'아이들의 상처를 바라보자는 것이다. (…) 그리하여 아이들에게 상처 속에서 자라날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내가 만약 슬픔 속에서 기차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상처 속에서 자라날 기회를 주자'는 그의 말이 얼른 납득되지 않거든 오랜만에 온전한 슬픔에 젖어 기차여행이라도 해볼 일이다.
#우리교육#아이들의 상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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ㄹ교사이자 시인으로 제자들의 생일때마다 써준 시들을 모아 첫 시집 '너의 이름을 부르는 것 만으로'를 출간하면서 작품활동 시작. 이후 '다시 졸고 있는 아이들에게' '세상 조촐한 것들이' '별에 쏘이다'를 펴냈고 교육에세이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 '오늘 교단을 밟을 당신에게' '아들과 함께 하는 인생' 등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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