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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일본참의원선거출마를 선언한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
ⓒ 연합뉴스
페루 대통령을 지낸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오는 29일 실시되는 일본 참의원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지 닷새가 지났다. 지금쯤 뜨거운 찬반논쟁이 불붙겠거니 했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아사히> <요미우리> 등 이른바 '5대 전국지' 어디에서도 아직 이에 관한 사설을 찾아볼 수 없다. 관련 기사는 간간히 게재되고 있지만 신문사로서 찬반 입장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사안인데다가 일본이 직접 당사자인 문제에 대해 사설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일본 신문들의 제작관행에 비춰볼 때 드문 일이다.

다른 인터넷 사이트나 블로그들을 뒤져봐도 관련된 글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그나마 검색을 통해 찾아낸 관련 블로그들도 단발적인 감상의 나열에 그치고 있다.

이 이상한 침묵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서울에 주재하는 한 일본인 기자에게 물어봤다. 그는 "국민신당이 관심을 끌려고 그러는 모양인데 참 곤혹스럽네요, 당선되면 무슨 망신이죠?"라는 대답. 가급적 이 문제를 화제에 올리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가 역력했다.

존재감 잃어가는 '국민신당'의 보수층 잡기 카드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후지모리를 비례대표로 옹립하겠다는 '국민신당'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시절 이른바 '개혁저항세력'으로 몰려 자민당을 떠나야 했던 보수세력의 한 분파. 가메이 시즈카 대표는 지난달 칠레에서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후지모리를 찾아가 출마 승낙을 받아냈다.

가메이 대표는 후지모리를 옹립하려는 이유로 "발군의 판단력과 행동력, 그리고 북한 인맥"을 들었다. 후지모리도 현지에서 일본 언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내 부모의 고향과 일본에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이중 국적을 이용하려는 후지모리의 의도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아무리 법적으로 일본 국적이 살아있다고 해도 다른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다. '국민신당'은 어떻게 그를 일본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시킬 생각을 했을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페루 정계 복귀를 노리고 지난 2005년 10월 일본을 떠났던 후지모리는 페루에는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칠레에서 체포됐다.

그가 다시 페루행을 결심했을 때는 당연히 정치적으로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물론 과거 그의 강력한 리더십을 추억하는 지지자들이 없진 않았지만, 범법자인 그를 정치적으로 구출해낼 만큼 큰 세력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후지모리는 이런 꽉 막힌 상황의 타개책으로서 다시 일본으로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일본 참의원 선거 출마는 후지모리 스스로가 먼저 희망하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간사장이 "우리 당에도 (출마를) 타진해왔지만 거절했다"고 밝힘으로써 명백히 드러났다.

일본 선거에 출마하게 되면 선거운동을 위해 출국하겠다는 명분이 생긴다. 일본과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칠레 정부에게 그 자체가 압력이 될 것이며, 일본 정부나 정치권이 실제로 압력을 행사해주면 더욱 좋다. 후지모리는 이런 계산인 듯 하다.

한편 국민신당의 의도는 일단 국민의 관심을 끄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집권당과 같은 색깔의 보수정당으로서 존재감이 점점 희박해져 가고 있는 그들로서는 무엇이든 화제를 만들어야 할 절박한 처지다.

그런 점에서 후지모리는 고마운 존재다. 또 그들이 주요 타깃으로 생각하고 있는 보수층은 후지모리에 대한 동정심이 강하기 때문에 잘하면 자민당 표를 빼앗아올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 페루정부가 일본에 망명중인 살인과 납치 혐의로 기소된 후지모리 페루 전 대통령의 신병 인도 요청서를 외무성에 전달한 가운데, 2003년 7월 AP통신과의 인터뷰서 무죄를 주장하는 후지모리.
ⓒ 연합뉴스
2000년 돌연 일본 입국 후 팩시밀리로 사임서 제출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던 후지모리 당시 페루 대통령이 돌연 일본으로 발길을 옮긴 것은 2000년 11월 16일이었다. 그는 다음 날 페루 정부 앞으로 팩시밀리를 보내 대통령직 사임서를 제출한다. 그는 그 해 9월 한 측근이 국회의원을 돈으로 매수하는 장면이 포착된 비디오 영상이 공개되면서 결정적으로 코너에 몰려있었다.

후지모리에 대한 평가가 처음부터 이렇게 부정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1990년 취임 직후 살인적 인플레를 극복하고 무역자유화와 기업의 민영화 등 경제개혁을 과감히 추진했다. 특히 마약밀수와 좌익테러를 억눌러 사회안정을 이룸으로써 집권 초기에는 '서민의 대통령'으로 칭송이 높았다.

그러나 역시 '장기집권욕'이 화근이었다. 그는 높은 인기를 배경으로 1992년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의회를 해산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새로운 헌법을 제정해 장기집권의 기반을 다졌다.

친위쿠데타 이후에도 경제적 성과를 바탕으로 그의 인기는 한동안 계속 이어지는 듯 했으나 무리한 정권연장 기도는 차츰 민심이반을 불렀다. 고문과 공작정치를 통해 야당과 반대세력을 탄압하면서 강권통치로 치닫자 정권에 대한 원성은 갈수록 높아졌다. 이런 정치적 불안은 국제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져 회복되던 경제에도 다시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2000년 4월 헌법상 금지된 대통령 3선을 의회와 사법부를 협박해 억지로 밀어붙였으나 이는 돌이킬 수 없는 국민적 저항을 불렀다. 그런 와중에 국회의원 매수 장면이 영상으로 포착된 결정적 물증이 나온 것이다.

이렇게 10년 동안 철권을 휘둘러온 후지모리가 마지막 순간에는 허망하게도 부모의 나라인 일본으로의 '도망'이라는 길을 택했다. 처음엔 누구나 '정치적 망명'인줄 알았으나 잠시 후 놀라운 사실들이 속속 밝혀졌다.

페루에서 출생한 후지모리는 부모가 리마의 일본영사관에도 출생신고를 했기 때문에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었으며, 대통령 재임 중에도 이를 포기하지 않았었다는 것이다. 일본정부는 그 동안 페루 정부로부터 아무 연락이 없었기 때문에 후지모리의 호적을 말소하지 않았고, 따라서 국적이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 국가의 대통령이 이중국적자였다니...

▲ 2006년 6월 페루 수도 리마 후지모리 집권기간중 실종된 실종자 가족과 인권운동가들이 리마주재 칠레대사관 앞에서 7일 시위를 벌이고있는 모습
ⓒ 연합뉴스
이렇게 해서 후지모리는 '또 하나의 조국' 일본의 품에서 5년을 보낸다. 당시 일본 사회는 세계 각국의 지탄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후지모리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나는 2002년 1월10일 도쿄 타큐쇼쿠대학에서 있었던 후지모리의 강연을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자신이 집권했을 당시 페루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이었으며 이를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가를 소개하는 '자화자찬'이 주된 내용이었다. 그는 "페루 국민은 오늘날의 평화가 어떤 사회조건에서 이뤄졌는지를 잊어버리고 테러와 싸웠던 지도자를 비판, 공격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후지모리의 강연에 일본 학생들과 시민들이 보내던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잊을 수가 없다. 돌아오는 길에 한 시민단체가 배포한 성명서에는 "후지모리를 영웅으로 모시고 있는 지금의 사태는 일본의 민주주의 개념과 가치관의 저급함을 세계에 드러내는 것이다"라고 적혀있었다.

후지모리는 2005년 10월 입국할 때와 마찬가지로 돌연 일본을 떠났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계산은 빗나갔고, 다시 한번 일본에 기대 정치적 재기를 도모하고 있다. 그가 내민 뻔뻔스러운 손을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하는 것은 단지 '피가 물보다 진하기 때문' 만일까?

6월30일자 <마이니치신문>은 후지모리의 일본 참의원 선거 출마에 대한 페루 언론들의 격앙된 반응을 전하고 있다. '비겁자' '또 다시 도망' '거듭된 배신' '국가를 다시 기만, 페루 정치 무시'….

한때 '해외에서 가장 성공한 사무라이'로서 일본인의 자부심이었던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 그러나 한번도 아니고 거듭 비겁하게 등을 보이고 있는 이 '라스트 사무라이'를 일본인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오는 29일 참의원 선거의 또 하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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