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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저희를 용서 하시옵소서!”

네 명의 좌평들은 병사들과 함께 신라군에게 필사적으로 저항하였지만 결국 하나 둘씩 화살을 맞고 쓰러지거나 그 뒤를 이어 뛰어 든 신라군의 칼과 창에 쓰러져 갔다. 그런 좌평들의 희생을 뒤로하고 왕은 성벽으로 빠져 나갔지만 그곳에는 신라의 병사들이 횃불을 든 채 겹겹이 앞을 에워싸고 있었다.

“폐하, 저희 뒤로 서십시오. 저희들이 저곳을 돌파하겠나이다.”

젊고 씩씩한 비장들이 왕의 앞을 막아서며 무기를 움켜 쥔 채 죽음을 각오한 돌진을 감행했다. 왕 역시 더 이상 생각을 가다듬을 여유도 없이 그들의 뒤를 쫓아 맹렬히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저 자가 남부여의 왕이다! 절대 놓쳐서는 안 된다!”

목이 찢어져라 소리치는 이의 목소리는 왠지 왕의 귀에 무척 익어 있었다. 남부여의 비장들은 날아드는 화살에 맞지 않기 위해 말 위에서 납작하게 엎드리며 창끝을 바로 겨누고 있는 신라군을 향해 뛰어들었다.

“이때다! 모두 줄을 당겨라!”

선두에서 돌진해 나가던 남부여 비장의 말은 갑자기 앞 말굽을 푹 꺾더니 사람과 함께 사정없이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신라군이 말이 달려오는 곳을 향해 밧줄을 놓아두었다가 힘껏 잡아당기는 바람에 그에 걸린 탓이었다. 그 바람에 뒤따라오던 이들의 말도 연이어 우르르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마지막에 왕이 탄 말은 겨우 멈추어 서서 말머리를 돌렸지만 어느 사이엔가 신라 병사들이 퇴로를 막아서고 있었다.

“허허허... 이거 어쩔 수 없구나.”

왕은 위엄을 지키며 서서히 말에서 내려 자신을 에워싼 신라 병사들을 죽 훑어보다가 그 중 한 명에게 눈이 멈추었다.

“왜 이랬는가?”

왕의 눈길이 멈춘 곳에는 고도가 칼을 든 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왜 이랬냐고 묻지 않는가?”

고도는 왕의 말을 못들은 척 명령을 내렸다.

“뭣들 하느냐? 어서 왕을 포박하라!”

“네 이놈들!”

왕이 고함소리와 함께 칼을 뽑아들자 동시에 아직 신라군에게 사로잡히지 않은 비장 두 명이 칼을 뽑아들고 달려와 왕의 좌우를 호위했다. 고도는 간청하듯 말했다.

“정중히 모시겠나이다. 어서 칼을 거두소서.”

“이런 비열한 행위를 하면 신라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준다고 하던가?”

왕의 집요한 물음에 고도는 고개를 흔들었다.

“공주님을 위해서입니다. 공주님을 보아서도 결코 폐하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을 테니 그만 칼을 놓으소서.”

“공주를 위해서라?”

“저는 곧 폐하의 부마가 될 몸인데 어찌 소홀히 대할 수 있겠나이까.”

왕은 겨누었던 칼을 내려트린 채 큰 소리로 웃었다.

“그렇다면 네 생각은 틀렸다. 날 사로잡아서는 넌 결코 편안하게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생각해 보아라. 신라에서 남부여왕의 부마인 너를 어떻게 보겠는가? 네가 편안하지 않다면 내 딸 역시 편치 않을 것이니라.”

왕은 내려트렸던 칼을 갑자기 치켜들더니 고도 앞으로 달려들었다. 놀란 고도는 칼을 든 손을 쑥 뻗었고 칼은 정확히 왕의 목을 꿰뚫었다. 고도가 칼을 쥔 손을 놓아버리자 왕은 눈을 부릅뜬 채 땅에 쓰려져 몸을 한번 떨더니 숨을 거두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뒤늦게 김무력이 달려와 고도를 보며 소리쳤다.

“남부여의 왕이 마지막으로 부탁하였습니다. 이찬께서는 공주마마를 버리지 마시옵소서.”

“그 무슨 소리냐?”

고도는 힘없이 걸어가며 소리쳤다.

“전 고구려로 가겠나이다. 함부로 군을 이탈하는 절 쫓아 죽이려면 죽이시오. 이제는 공주마마를 뵐 낯이 없나이다.”

고도는 김무력의 시선을 뒤로하고 멀어져 갔고 어느덧 밤하늘에는 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1. 두레마을 공방전
2. 남부여의 노래
3. 흥화진의 별
4. 탄금대
5. 사랑, 진주를 찾아서
6. 우금치의 귀신
7. 쿠데타


#최항기#결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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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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