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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ㅅ여고에서 12년 동안 행정실 직원으로 일했습니다. … 만삭인 몸으로 부른 배를 굽혀가며 교장실 커피 심부름 등 교장 선생님이 시키시는 것은 정말이지 모두 성심 성의껏 해왔습니다."

ㅅ여고에서 12년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한 정아무개(34·공공노조 학교비정규직지부)씨가 지난 22일 자택에서 다량의 수면제를 복용하기 전날 작성한 호소문의 일부이다. 정씨는 A4용지 4쪽짜리 분량의 글을 통해 그간 비정규직으로서 겪어왔던 차별과 학교측의 비인간적인 행태를 적나라하게 고발했다.

다행히도 그는 한때 혼수상태에 빠졌지만 병원에 옮겨진 뒤 위 세척 등 치료를 받아 의식을 회복한 상태이다. 그의 호소문은 25일, 서울 성북구 ㅅ여고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공공노조 기자회견장에서 발표됐다.

이날 발표된 정씨의 호소문에 따르면 학교장이 내달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인 비정규직 법안을 근거로 정씨를 비롯한 비정규직 직원들을 해고했다는 것. 정씨는 "12년간 한솥밥 먹은 노동자를 비정규직 법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고한다는 무책임한 말만 했다"며 학교를 향해 분통을 터뜨렸다.

정씨는 또한 "학교장은 '예산 감축 때문'이라며 해고 이유를 바꾸는 등 해고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며 "그럼에도 2007년 예산서에는 두 명의 비정규직 인건비를 책정해 놓았다"고 꼬집었다.

학교측이 정씨와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한 것은 '2년 뒤 정규직화'라는 비정규직 법안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

정씨는 마지막으로 "그런 교장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제주산 옥돔 선물을 집으로 보내셨다"면서 "가진 협박과 모진 말씀을 하셔놓고 고급 옥돔 선물이라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복잡한 심경을 내비쳤다.

정씨는 올해초 ㅅ여고로부터 '고용 불가' 방침을 받은 뒤 학교 앞에서 해고 철회를 요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민주노총 공공노조는 기자회견을 통해 ▲사과 및 재발방지 ▲정씨에 대한 해고 철회 및 고용 안정 보장 등을 학교에 촉구했다.

다음은 정씨가 쓴 호소문의 전문.

ㅅ여고 선생님들과 학생 여러분들께 간곡히 호소 드립니다.

저는 ㅅ여고에서 12년 동안 행정실 직원으로 일했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 정해 주시는 일을 정말 성실히 해왔습니다. 만삭인 몸으로 부른 배를 굽혀가며 교장실 커피 심부름 등 교장 선생님이 시키시는 것은 정말이지 모두 성심 성의껏 해왔습니다.

그동안 계약서를 한번도 작성하지 않고 일해 왔던 저에게 2004년도 학교는 5년치 계약서를 한꺼번에 작성하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학교측은 "이 계약서는 단지 감사를 받기 위한 형식적인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며 저에게 계약서 날인을 요구했습니다. 십년간 계약서 없이도 일했기에 기분이 언짢았지만 시키는 대로 날인을 했습니다.

그러던 올해 1월 22일 행정실 직원에게 교장 선생님께서 전달할 사항이 있으니 집합하라는 내용을 통보 받았습니다. 자리에 집합한 저희들에게 교장 선생님께서는 계약직에 근로하는 네 사람은 비정규직 법안 통과로 계약기간을 연장할 수 없으니 2007년 2월 28일까지 근로계약이 종료된다는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2004년 맺은 5년 계약은 어디로

교장선생님께서는 "나라가 잘살고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며 "비정규직 법안통과로 어쩔 수 없게 됐다"고 하셨고, 실장님께 보다 정확한 사유를 말해 달라 요구한 우리들에게 "인터넷 찾아보라. 거기에 다 나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며칠 후 정말 해고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그간 우리 교장 선생님께서는 "학교 행정실은 심장부"라며 학생과 교사들에게 헌신과 희생과 봉사를 강요해왔습니다.

그러면서 "모든 일들은 교장이 다 책임질 테니 나만 믿고 따르라"고 했습니다. 정말 믿고 따른 결과가 12년간 한솥밥 먹은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를 강산이 변해도 몇 번 변할 시간이 지난 시점에 비정규직 법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고한다는 무책임한 말뿐인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분하고 원통했습니다.

그 후, 전 우울증에 걸려 심한 불면증으로 정상적인 생활하기조차도 힘들었습니다. 무엇이 한사람을 이처럼 비참하고 한심스럽게까지 만들었는지 저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예산 감축한다더니 비정규직 신규채용...왜?

그러던 저에게 한 자락 희망이 생겼습니다. 다름 아닌 비정규직도 가입하는 노동조합이었습니다. 전 노동조합에 가입했고 노동조합은 다섯 차례 학교측에게 교섭을 요구했지만, 교장 선생님께서는 2월 내내 학사일정으로 교섭을 계속 회피했습니다.

해고당한 제가 얼마나 피 마르는 심정이었는지, 교장 선생님께서는 거들떠보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장 선생님께서는 교섭 파행의 원인을 노동조합에 떠넘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가까스로 교섭이 성사되었을 때 교장 선생님께서는 저희들에게는 '비정규직법'이라고 했다가 사회여론화가 되자, "예산 감축 때문"으로 말을 바꾸는 등 "해고하겠다는 입장은 변함이 없다"는 답만 했습니다. 행정실에서 수납을 하는 제가 학교 예산을 모를 수 없어 너무나 당연한 거짓말에 그 자리에서 울고 말았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저희들에게 "해고 후에 비정규직을 채용할 의사가 전혀 없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2007년도 예산서에는 두 명의 비정규직 인건비를 책정해 놓으셨습니다. 어떻게 눈 가리고 하늘을 가리려고 하는지 도저히 납득이 어렵습니다.

저는 노동조합 교섭이 있던 오후, 퇴근시간 교장실에서 교장, 교감, 실장님은 "이러한 사실을 학부모회가 알고 있으면 학교보다 학부모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라며 저에게 협박을 하시고, "노동조합이 저를 이용하고 있다"는 거짓말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학교운영위원회 녹취록 공개를 아직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런 교장 선생님께서는 저에게 제주산 옥돔 선물을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가진 협박과 모진 말씀을 하셔놓고 고급 옥돔 선물이라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우연히 다른 학교 일자리 주선했는데 제가 거절했다고 들었습니다. 주변의 사람도 그렇게 알고 계십니다. 어떻게 이런 거짓말까지 하는 것입니까?

이참에 집에서 아이나 키우라고요?

부당해고, 정리해고 당한 힘없는 여성이 학교를 상대로 할 수 있는 최대한에 항의는 학교 앞 1인 시위였습니다. 학교 앞 1인 시위는 저로 하여금 또다시 학교로부터의 외면과 냉대를 불러왔습니다. 비정규직 여성에게 학교는 "이참에 집에서 아이나 키우라"는 말뿐이었습니다.

여성발전에 이바지한다는 ㅅ재단 창립자 이아무개 박사님(이사장)께서는 "믿음이 있고 안으로 성실하면 그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으며 슬기롭고 유능한 인격을 갖춘 전문여성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전 이사장님 말씀을 가슴에 새겨 거듭나는 여성으로 살고자 12년간 열심히 성심을 다해 노력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비정규직법안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정리해고였습니다 .

선생님 학생여러분, 전 학교에서 또다시 6월말이면 해고를 한다고 들었습니다. 왜 제가 또다시 해고를 당해야 되는지 학교에서는 아무런 이유도, 교섭도, 답변도, 하지 않습니다. 전 일하고 싶습니다. 12년 동안 ㅅ여고 행정실에서 근무했던 것처럼 계속해서 일하고 싶습니다. 정말 일하고 싶습니다.

이일이 제 개인에 일이 아님을 선생님과 학생여러분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ㅅ여고는 여성교육과 인성과 우리사회서 전문여성으로 거듭 날 수 있도록 하는 인재를 키우는 여성고등학교입니다. 우리학생들이 아무리 열심히 잠 못 자고 공부해도 사회에 나가면 비정규직 여성으로써 살아야 한다면 선생님들께서 바라는 바가 아니라 생각됩니다.

선생님 학생여러분, 저에 해고철회를 간곡히 호소합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2007년 6월 21일
12년간 ㅅ여고 행정실에서 근무한 정OO 드림

#학교 비정규직#민주노총 공공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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