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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는 정작 사회적 논의가 필요할 때 그 논의가 실종되는 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주요 대학'과 교육 당국이 내신 반영 문제를 두고 치열한 기 싸움을 벌여도 정치권에서는 이에 대해 아무런 논의도 진행되지 않는다. 대선 주자라는 사람들한테서 단 한마디의 '언급'도 찾아볼 수 없다. 미국산 소고기도 마찬가지다. 수입 기준에 미달하는 미국 국내용 소고기가 세 차례나 한국에 들어왔는데도, 별다른 이야기들이 없다. 방코 델타 아시아 북한 동결 계좌 문제가 풀려 이제 2·13 합의 이행 문제가 속도감을 더하고 있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다(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가 오늘 평양에 간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가 있었던 만큼 한국 언론의 반응도 오후부터는 달라질 법도 하다). 오늘(21일)부터 시작되는 한미FTA(자유무역협정) 추가 협상도 예외가 아니다.

아마도 그 대부분은 겉으로만 보자면 '그놈의 언론' 탓이 크다. 그동안 언론으로 하여금 관심을 갖도록 해왔던 시민 사회 운동이 취약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계일보>가 한 꼭지 기사이긴 하지만 오늘부터 시작되는 한미FTA 추가 협상에 대한 각계 반응을 정리한 기사('농업개방공세 '맞불카드'로 대응해야'·우상규 기자)는 눈에 띈다. 한미FTA 자체에 대한, 또 추가협상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한미FTA 추가 협상에 임하는 정부 협상단이 가질 수 있는 전략적 대응 방안을 모색해보았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기사의 포맷은 간명하다. 정인교(인하대)·최병일(이화여대)·이해영(한신대)·윤석원(중앙대) 4명의 교수한테 한미FTA 추가협상을 요구한 미국 측의 의도와 우리의 대응전략에 대한 의견을 들어 정리한 기사다. 간명하지만 추려야 할 뼈대만 골라 뽑은 기사이기도 하다.

미국 측의 의도에 대해서는 4명의 교수 가운데 이해영 교수를 제외하곤 미국 측이 '실익'보다는 미국 민주당의 요청에 따른 '정치적 모양새 갖추기'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미국 민주당의 주장대로 노동과 환경 분야를 무역에 반영하는 새로운 무역 정책을 보여주는 정치적 요소가 강하다"는 것이다. 이해영 교수는 그러나 "노동과 환경 분야에 특별 분쟁 절차가 아니라 일반 분양 절차를 적용하는 문제는 매우 심각할 수 있다"는 점을 짚었다.

이 기사에서 돋보이는 내용은 한국의 대응 전략을 소개한 대목이다. 기사 제목처럼 우리도 '맞불'을 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이민 비자 쿼터 등 우리에게 불만인 부분을 꺼내야 한다(최병일 교수)는 주문에서부터 '개성공단 역외가공 문제'(정인교 교수)로 모양새를 맞출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나왔다.

윤원석 교수는 "미국이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을 고치겠다고 나선 만큼 우리도 가장 피해가 큰 농업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해영 교수는 보다 공세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미국 민주당이 자동차와 소고기 문제도 추가 협상하라고 요구한 만큼 우리도 자동차 스냅백(협정 위반 때 관세혜택 백지화), 섬유 관세 즉시 철폐 품목 확대, 의약품, 지적 재산권 등 공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과연 어떤 자세를 취할지는 알 수 없다. <세계일보>가 전한 통상 전문가들의 의견을 미리 수렴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세계일보>의 한 꼭지 이 기사가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하다. 이 기사를 읽은 사람들은 한미FTA 추가 협상 전개 상황을 바라보면서 그 협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우리 정부가 과연 어떤 자세로 임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밝은 눈' 하나는 갖게 됐다는 점이다.

'관점'이란 프리즘을 통해 세상사를 전해주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독자와 시청자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친절한 언론'이야말로 독자와 시청자들에게는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일보> 우상규 기자의 이 기사는 그런 점에서 '친절한 기사'라고 할만 하다.

#백병규#미디어워치#한미FTA#추가 협상#미국산 소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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