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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중심지이며 남측과 북측이 만나는 지점인 개성은 휴전 협정이 조인되는 당시에 우리가 그곳을 점령하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북측이 통째로 차지하고 앉아서 유세를 떨고 있다.

지난 금요일(6월 15일) 민주평화통일운동협의회가 주최한 '평화의 숲 가꾸기' 행사가 북한의 개성에서 있었다. 원래의 일정은 지난 4월 15일로 잡혀 있었으나 남북 대화에 이상 기류가 생기면서 일정이 무기한 연장되었었다.

소문에는 쌀 협상에 불만을 품은 북한이 개성 관광을 거부했다는 설도 있었지만, 우리의 방문 목적은 나무를 심으러 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찌 그리 도도한지 모르겠다.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다가 막상 일정이 잡힌 날은 의미도 심장한 6월 15일. 남북 정상회담을 가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5개 항의 남북공동 선언문을 발표한 날이다. 분단 55년만에 남북의 최고위급 회담이 개최됐다고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일행 200여 명은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뒤쪽에서 관광버스 5대에 나누어 타고 아침 7시에 개성으로 출발했다. 나는 백두산 문인협회에 신청을 했는데, 80여 명 출발에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신청을 했다니, 그나마 다행이고 행운이라고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귀띔을 해 준다.

▲ 임진각에 모여서 주의 사항을 듣고 있다
ⓒ 김옥자
버스는 임진각을 거쳐 남측 출입국 관리소에 닿았다. 가는 도중에 보니 남측 출입국관리소와 북측 출입국관리소 사이에 태극기와 북한기가 걸려 있었는데, 태극기는 축 처져서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것이 태극기임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인 반면 북한기는 활짝 펴져서 걸려 있었다. 꽤 먼 거리였지만 자세히 보니 활짝 펴지도록 무슨 장치를 한 것 같아 보였다. 어쨌든 축 늘어진 태극기를 보니 자존심도 상하고 화도 났다.

북측 출입국관리소에 도착했다. 가는 내내 버스에서, 임진각에서, 심지어 북측 출입국관리소에서 버스를 내리기 직전까지도 우리를 안내하는 사람은 신문이나 잡지, 필름 카메라는 휴대할 수 없음을 누누이 일렀건만 우리 버스에 탄 누군가가 신문을 가지고 와서는 버스 뒷좌석에 두고 내려서 북측 사람들에게 들키고 말았다.

문제는 신문을 두고 내린 사람이 시침을 떼는 바람에 버스 기사님이 신분증을 북측에 빼앗겨 버렸고, 5대의 버스는 출발을 하지 못하고 붙잡혀 있었다. 일행 중 눈썰미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을 지목했으나 책임을 지겠다고 큰소리치며 그 자리를 모면하고는 슬그머니 사라져 끝내 나타나지를 않았다.

그러자 버스에 탄 승객들이 나누어서 벌금 50만원을 내게 생겼다. 버스에서는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내가 알기에는 이번에 개성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래도 사회에서 자기 역할을 단단히 한몫하는 사람들로 알고 있는데 이런 수치스러운 일이 벌어진 데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신문을 가지고 탄 일행 중에 그나마 양심 있는 한 사람이 벌금을 대신 내기로 하고 가까스로 북측 출입국 관리소를 떠난 버스는 우리의 첫 번째 방문지인 개성 공단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북한의 산을 본 나는 내 눈을 의심해야 했다. 그리고는 곧 왜 우리가 나무를 심으러 개성까지 와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헐벗은 산들은 산토끼 한 마리가 지나가는 것까지 다 보일 정도였고, 작은 바위의 형태가 보일 정도로 속살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 삭막한 개성공단
ⓒ 김옥자
개성 공단에 도착했다. 드디어 개성 땅을 밟았다. 아니 엄격히 말하자면 북한 땅을 밟은 것이다. 그곳에는 뜻밖에도 우리은행과 훼미리마트가 있었는데, 마트의 상품은 서울에서 본 것들이 많았다.

환전을 하는 아가씨와 대화를 시도했다. 개성을 가기 전에 책을 보며 사전 상식을 익혔지만 왠지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녀는 나와 같은 말을 했고 같은 글을 썼고 내 동생처럼 환한 미소로 친절하게 응대하고 있었다. 가슴이 먹먹하니 코끝이 찡했다. 서울에서 한 시간이면 갈 수 있는 땅이 어째서 미국보다 멀게 느껴졌단 말인가.

▲ 선죽교에 사람이 많아 화가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림을 찍었다
ⓒ 김옥자
형식뿐인 개성 공단 견학(공단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을 마치고, 선죽교로 향했다. 선죽교를 보는 순간 도대체 이방원이 어디에 숨어 있다가 정몽주를 살해할 수 있었는지 웃음이 나왔으나 아름드리나무들과 몇 개의 비문이 그곳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었다.

선죽교를 돌아 나오니 가판대를 설치해 놓고 북한 아가씨들이 북한 특산품을 팔고 있었다. 사진 한번씩 같이 찍어 달래고서는 물건 하나씩을 사는 사람들이 무척 재미있어 보여서 나도 한 컷 거들고 나섰다. 남남북녀라더니 별로 다듬지 않았는데도 역시 여자들이 예뻤다. 가장 예쁜 아가씨들이 팔고 있는 상품들이 좋지는 않아도 그곳에 사람이 제일 많았다.

이제 개성 시내 관광을 할 차례다. 호기심과 기대를 잔뜩 가지고 차창 밖을 보고 있었으나 가도 가도 개성 시내가 보이지 않아 남측의 안내하시는 분께 물어보았더니 "지금 개성 시내를 돌고 있는 중입니다"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유심히 보니 조금 전에 지나온 길보다 상점이 몇 개 더 눈에 띄었는데,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폐업 상태인 것 같았으나 영업 중이라고 했다. 영화관도 있었고 '리발관'과 '천연 사진 현상소', '과일 남새 가게'도 있었다. 그러나 길거리에는 사람이 없었다.

차 안에서 갑자기 작은 함성이 일었다. 뭔가 싶어 사람들 시선을 좇아갔더니 사거리에 교통경찰이 수신호를 하고 있었다. 차라고는 우리 일행이 탄 버스뿐이고 다른 차라고는 보이지 않는 거리에서.

개성은 산에 나무만 귀한 것이 아니었다. 차도 귀했고, 사람도 귀했다. 어쩌다가 길거리에서 보는 사람들은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사람들은 왜소했고 피부색은 동남아 사람들과 흡사했으나 더 검은 사람이 많았다. 조금 과장하자면 개성 시내를 비롯한 길거리 곳곳에 김일성과 김정일을 찬양하는 글귀가 그날 내가 본 사람의 수보다 많았다. 차에서 한번 내려 보지도 못하고 개성 시내 관광이 끝났다.

▲ 고려박물관 내의 성균관
ⓒ 김옥자
관광의 마지막 코스인 고려박물관에를 갔다. 안내를 하는 사람은 40대 후반쯤의 여인이었는데, 화장기 하나 없는 새까만 얼굴에 우리나라에서 60년대쯤에나 입었을 법한 한복을 입었다. 그러나 고려박물관을 안내하는 동안 자부심이 대단했다. 특히 성균관을 설명할 때는 서울의 성균관은 작은 집이고 개성의 성균관이 큰집이라는 소리를 몇 번씩이나 했다. 그쯤에서 그만 나는 참았던 질문을 하고 말았다.

"아유 어두워. 어두워서 뭐가 보여야 말이지. 저기요. 여기 왜 이렇게 어두워요?"
"네, 그러니까 여기가 성균관으로 볼 때 큰 집이고, 서울의 성균관은 작은 집이지요."
"저어∼ 전기가 나갔나요?"


▲ 여러 명이 동시에 플래시를 터뜨려서 찍었다
ⓒ 김옥자
그때 일행 중의 한 사람이 내 팔을 꼬집었다. 나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더 기가 막힐 일이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박물관의 마지막 코스에 벽화가 그려져 있는 방 앞에서 낭패를 당한 기분이었다.

문 없는 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믐 밤과 같이 어두워서 지척을 분간할 수 없었으나 어디에고 전기 스위치는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벽화를 볼 것인가? 모인 사람들이 웅성거리더니 하나 둘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카메라 플래시 불빛에 순식간에 뭔가가 보였다가 사라졌다. 나는 사진 찍는 사람들에게 제안했다.

"자, 우리 이러지 말고 하나 둘 셋 하면 다 함께 플래시를 터트리면 어떨까요?"
"그거 좋겠네요. 다 같이 하나 둘 셋."


세상에나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는 고려 여인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벽에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사진을 찍고 밖으로 나오다가 북측 여자 안내원에게 함께 사진을 찍을 것을 제안했더니 활짝 웃으며 덥석 손을 잡았다. 그 손이 얼마나 따뜻하고 정겨웠는지 나는 주책 맡게도 울고 말았다.

▲ 함께 사진을 찍자는 기자의 손을 덥석 잡는 북측 안내원
ⓒ 김옥자
고려박물관 관람이 끝나고 버스에 오르려니 버스 코앞에서 선죽교에서처럼 북한의 아가씨들이 가판대에서 특산품을 팔고 있었으나 우리나라의 관광지처럼 장신구나 사치를 하는데 필요한 물건은 없었다.

▲ 봉동관의 오찬장에서 남축과 북측이 손에 손을 잡았다
ⓒ 김옥자
점심은 개성공단 앞에 있는 '봉동관'에서 먹었다. 남측 손님 전용으로 보이는 대형 식당에는 앞에 무대가 있었는데 '6·15경축'이라는 전광판 글씨가 써져 있었고, 쟁반을 들고 음식을 나르던 아가씨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가 춤을 추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거나 키보드를 연주했다. 그 모습이 참 이색적이었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식당 입구에서는 우리를 상대로 상품을 팔기에 여념이 없었다.

▲ 나무를 심으려고 산에 올랐으나 산인지 들판인지?
ⓒ 김옥자
시간은 어느덧 오후 2시가 되었다. 드디어 오늘의 주목적인 나무 심기를 하러 간단다. 나무 심는 장소는 개성공단 바로 앞에 있는 야산이었다. 풀밖에 없는 산에는 우리보다 먼저 다녀간 남측 사람들이 심어 놓은 풀 높이만한 나무들이 목이 말라 서럽게 쭈그리고 있었다.

이제 일정이 모두 끝났다. 그렇게도 궁금하고 가보고 싶던 북한 땅, 비록 아주 작은 일부를 보았지만 속은 후련하다.

내가 본 개성 땅은 삭막해서 슬펐고, 내가 만난 개성 사람은 따뜻해서 서러웠다.

#개성#나무심기#북측#개성공단#고려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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