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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쩡한 소풍
술에 취해 무대로 등장한 '어느 락커' 조영환의 모습은 내 머릿속에 이미 이미지화 되어 있던 전형적인 락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타이트한 바지와 번쩍번쩍 빛이 나는 요란한 장신구, 삐죽삐죽 공중을 향해 솟아있는 일명 '닭 벼슬' 헤어스타일까지. 대부분 사람들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락커의 모습 그대로였다.

락커는 서서히 고백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살던 고등학교 친구를 통해 펑크를 처음 알게 된 사연, 엉망진창 같은 세상을 우리의 펑크로 엎어버리자 다짐했던 절친한 친구이지만 군 제대 후 헤어지게 된 사연, 그리고 10년 동안 노래하던 홍대 앞 '놀이터'에서 쫓겨나 이곳 대학로까지 오게 된 사연까지….

서빙 아르바이트부터 막노동에 이르기까지 온갖 일을 해가며 모은 돈으로 홍대 앞에 '클럽 놀이터'를 꾸렸다. 직접 페인트칠을 하고, 전깃줄을 연결해서 만든 놀이터는 그들, '비주류 펑커들' 만의 아지트였다. 그러나 2005년 음악프로그램 생방송 도중에 벌어진 사건으로 결국 '놀이터'는 폐쇄되었고, 함께 동고동락하며 노래하던 친구들도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불과 몇 년 전까지 홍대 앞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주름잡았던 락커 조영환은 지금, 대학로 어느 지하의 작은 소극장 안에 서 있다.

락커는 고백했다.

"왜 바지를 벗었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많지만, 왜 벗으면 안 되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저희의 존재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그동안 저 애들이 클럽에서 얼마나 자주 바지를 벗었을까, 마약을 한 것은 아닐까, 정신병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들 이었습니다"

나 역시 공연을 보는 내내 수도 없이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굳이 그런 사건이 없었더라면 소중한 공간을 잃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꼭 그래야 했을까?'. 락커가 대답해주지는 않았지만, 당시 그 방식이 그가 사회에 할 수 있었던 최소한의 '시위'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았다.

'편견 없는 소통', 제대로 하고 있니?

ⓒ 멀쩡한 소풍
'사람이 되어라 공부만 하지 말고 사람이 되어라. 도대체 니 꼴통 속엔 뭐가 들어있니.
눈, 코, 귀, 입 다 틀어막고 자신의 세상 속에 갇혀 있는 모습들. 학교에서 배우는 쓸데없는 지식, 살다보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더라.
마음과 마음의 진솔한 이야기들, 내겐 피가 되고 살이 되어 가는데 진실이란 무엇인지 고민해본 적이 있더냐.
너의 눈이 가려져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진실이더라.'

- 락커가 부르던 노래의 가사 중


편견, 그것은 상대방의 진짜 모습을 보려하지 않는 것이다. 거칠고 과격하며 결코 평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락커에 대한 편견이 그들을 이해해보려는 시도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아닐까?

사회는 다양한 인종과 국적을 가진 사람들과 이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삶의 방식과 직종을 가진 사람들로 다원화되고 있는데, 우리들이 그동안 유지해왔던 '관계맺음'의 방식은 여전히 편견 속에, 상대방에 대한 오해와 불신 속에 매여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어느 락커'의 시도가 자신의 삶을 이해해달라는 일방적인 외침으로 끝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말하지 않은 것들, 또 말한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숨겨진 진실은 상호간의 소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진정한 소통은 서로를 편견 없는 눈으로 바라볼 때에만 이뤄질 수 있다.

비록 '홍대 앞' 문화에 익숙하지 않고, 펑크가 어떤 음악장르인지도 잘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자체가 어떤 이들에게 있어서 세상과 소통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점이다.

'소통'이 문제가 되는 시대다. 그 방식이 낯설고,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누군가 나에게 건넨 손을 돌아보지도 않고 뿌리쳤던 적은 없었는지….
#락커#바지#펑크락#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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