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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전집1> 책 표지
<이상전집1> 책 표지 ⓒ 가람기획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이자 심리소설의 개척자로 높이 평가받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인간에 대한 가능성을 부정한 관념론자로 규정받는 이상. 가람기획이 펴낸 <이상전집1>은 이런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이상의 소설들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편성한 것이다. 예전 문학사상사에서 나온 이상전집 시리즈에 비해 큼직한 활자가 보기에도 좋고, 현대적인 언어로 풀이한 주석도 평이하다. 그래서 이 책은 이상 소설의 진면목을 대중들에게 시원스레 보여주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이 책에는 총 16편의 소설들이 실려 있다. 맨 처음에 등장하는 소설은 <12월 12일>이라는 작품인데, 이 작품은 이상이 쓴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이상의 성격이나 의식 상태로 보아 장편소설은 분명 그의 장르가 아니었다. 그는 짧고,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를 즐겨 사용했다. 그래서 몇 마디 언어로 본질을 파헤치는 시나 단편소설이 그의 성격에 딱 들어맞는 것이다. 어쩌면 이는 각혈을 동반한 그의 평상시 건강상태에서 나온 자조적인 글쓰기인지도 모른다.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 그에게 장편소설은 하나의 사치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단편소설을, 그것도 아주 짧은 단편소설을 즐겨 썼던 것이다.

이 책에는 그런 단편소설들이 거의 빠짐없이 수록되어 있다. 한국 현대 문학 최초의 심리주의 소설인 '날개'는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첫 번째 아내인 금홍을 만난 과정이 사실적으로 묘사된 '봉별기' 또한 만날 수 있다. '지주회시'와 '지도의 암실', '휴업과 사정' 등과 같은 작품은 의도적으로 띄어쓰기를 무시한 작품들이다. 이상이 띄어쓰기를 무시한 주된 이유는 일상의 기호체계를 부정하겠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익숙하면서도 당연시되는 기호체계를 부정함으로써 낯설고 혼란스러운 환경을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관객들은 그렇게 낯선 환경을 접하면서 일순 혼란스러워하지만 어느 순간 낯선 환경의 일원이 되고 만다.

이런 낯설게 하기는 이상이 시에서 즐겨 써먹은 수법이기도 하다. 언어가 뒤죽박죽이고 인간 군상들의 모습도 뒤죽박죽인 상태. 이상이 의도한 바는 이런 뒤죽박죽의 체계 속에서 제3의 개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다양하게, 현란하게, 너무 많은 해석이 가능하게끔 모든 것을 뒤집어 버리는 수법인 것이다.

이상이 동화를 썼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있지 않은데, 이 책에는 이상이 쓴 동화 한편이 수록되어 있다. '황소와 도깨비'라는 작품이 그것인데, 동화라고 해도 결코 만만치 않은 내용과 난해함을 지니고 있다. 그나마 다른 작품들에 비해 조금 쉽다는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 수 있다.

이 밖에도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소설인 '종생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정임이란 여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살을 결심하는 피폐한 청년의 모습을 심리적인 기법으로 그린 작품이다. 신기하게도 이 작품은 작자가 죽은 후에 발표되었다는 우연성을 지니고 있다. 이상은 그의 죽음을 '종생기'란 작품을 통해 암시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상 문학의 대명사는 '거부'와 '부정'에 있다. 소설의 비(非) 소설화와 한자 혼용, 띄어쓰기 무시, 시(詩)에서의 공공연한 형태 파괴 등은 바로 이런 대명제를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였던 것이다. 끊임없이 현실을 부정하지만 그 현실 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불편한 심리를 이상은 제대로 참지 못했다. 이런 이상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가 썼던 단편소설들을 차근차근 읽어 보는 것이 제일이다. 이런 점에서 가람기획의 <이상전집1>(소설)은 '이상'의 심리상태를 이해하는 중요한 텍스트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상 전집 1

이상 지음, 김종년 엮음, 가람기획(2004)


#이상전집#이상#소설#가람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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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스토리텔링 전문가. <영화처럼 재미있는 부산>,<토요일에 떠나는 부산의 박물관 여행>. <잃어버린 왕국, 가야를 찾아서>저자. 단편소설집, 프러시안 블루 출간. 광범위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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