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선생님의 자화상이 정면에서 아주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선생님의 자화상이 정면에서 아주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 이현숙
입구에는 많은 화환이 환하게 웃으며 반겨 주었고, 안내실은 비어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유화와 드로잉과 수채화. 그림 하나하나를 천천히 감상하며 지나갔다. 다 보고 갈 때까지 아무도 오지 않았으면 했지만, 안내실에는 이미 사람이 와 있었고 모녀인 듯한 여자 둘이 들어왔다. 나처럼 기대를 잔뜩 안은 표정으로.

복사골의 대표 격인 복사꽃이 너울거리고, 학교 뒷동산 풍경도 있었다. 그림을 보고 있자니, 25년 전이 어제인 듯 떠올랐다. 복숭아 과수원이 있고 마을이 있고 멀리 교회가 보이는 그림도 친근하게 다가왔다. 선생님은 언제 이 그림을 다 그리셨을까?

우리 학교 뒷동산 모습과 같은데... 제목은 미상.
우리 학교 뒷동산 모습과 같은데... 제목은 미상. ⓒ 동창 이경훈
복사꽃이 만발한 복숭아 과수원이 있는 동네. 제목은 미상.
복사꽃이 만발한 복숭아 과수원이 있는 동네. 제목은 미상. ⓒ 동창 이경훈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림에는 1970년대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10년이 지나도 아니 백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이래서 표현이라는 건 참 중요 하구나' 새삼 깨닫고 '선생님이 본 풍경이나 내가 본 풍경이나 똑 같네' 라는 생각으로 슬며시 웃으며 그림을 감상했다.

그림을 다 보고 나오는데, 안내에서 어떻게 오셨느냐고 묻는다. 난 방명록에 이름을 쓰면서 제자라고 말했다. 곧 푸짐한 선물이 내게 안겨졌다. 그런데 받으면서도 영 편치 않았다. 이 가난한 제자는 빈손으로 온 것이다. 그렇다고 안 받을 수도 없고….

한 손에는 선생님 그림 복사본(큰 통에 들어 있다) 한 손에는 유작전 기념작품집을 들고 힘겹게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나는 '선생님 가난하고 엉성한 제자 다녀갑니다. 빈손으로라도 꼭 와 보고 싶었던 건 선생님의 그림이 궁금했고 또 선생님의 칭찬이 지금도 힘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라고 아뢰었다.

선생님의 칭찬은 참 큰 위력을 지녔다. 25년이 지나도, 또 선생님은 곧 잊어버렸을지라도 여전히 내 안에서는 유효하니 말이다. 이쯤에서 이 땅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계신 선생님들께 슬며시 당부 한마디가 하고 싶어진다.

"못난 아이, 잘 난 아이 구분 하지 말고 칭찬 한 마디 좀 해주세요. 당신은 잊어도 아이들은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덧붙이는 글 | * 동창 이경훈 선생님은 중동고등학교에서도 재직하셨고, 제 모교인 소명여자고등학교에서도 재직하셨습니다.

* 유작전은 6월 8일-6월 19일까지이며
  전시 장소는 광화문에 있는 신한갤러리입니다.


#이경훈#미술#칭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