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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는 백의종군하며 '대통합의 밀알'이 되겠다고 선언한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 범여권의 유력 대선후보로 물망에 오르고 있는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만남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의장은 "과거 세력, 부패를 아직 청산하지 못한 세력에게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를 넘겨줘서는 안 되며, 이 지상명령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손 전 지사가 대통합에서 앞장서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민경선제에도 선두에 서서 역할을 할 것을 많은 국민들이 기대하고 있다."며 그의 결단을 촉구했다.

손 전 지사는 이에 대해 "민주화를 향한 열정, 나라 발전과 통일을 위한 뜨거운 가슴을 계속 같이 불태우고 꽃피우기를 바란다."며 화답했다. 또한 두 사람의 만남이 있기 전인 지난 13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초청 강연에서 "과거 지향적, 냉전 지향적 정치세력의 집권을 막기 위해 평화지향적인 세력의 대통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던 손 전 지사 발언을 미루어 보아 이날 가진 만남이 통합논의의 급물살을 타고 있는 범여권에 대선후보 포섭을 위한 전초전이 아닌가 하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 범여권 대통합 논의의 진전과 함께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에 대한 러브콜은 계속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하지만 '비한나라당 노선구축'을 핵심으로 한 범여권의 '손학규 대세론'은 과연 올바른지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우선 문제의 초점은 손학규씨의 한나라당 탈당명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부터 출발한다. 그는 지난 3월 19일 탈당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한나라당을 바로 잡고 새 기운을 불어넣기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그게 실패했다고 하면서, 지금의 한나라당은 군정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낡은 수구가 자리 잡고 있는 정치현실을 개혁하고 새로운 정치를 창출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나간다"며 그의 탈당명분을 설명했다. 그렇지만 한나라당내 유력 대선주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박근혜 전 대표 사이의 양자 대결구도에서 밀려난 그의 정치적 기반을 만회하기 위해 탈당을 결심했다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다시 말해 인물 부재에 시달리고 있는 범여권에서 자신의 존재가치가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치적 계산이 있었다는 점이다.

다음으로 제기되고 있는 문제점은 그가 가진 '대표성 문제'이다. 다시 말해 손 전지사가 과연 진보진영을 대표할만한 인물인가 하는 의구심이다. 손학규 전 지사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1993년 민자당 국회의원(경기도 광명)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 후 신한국당 대변인, 한나라당 15대· 16대 국회의원, 보건복지부 장관, 경기도지사 등 주요요직을 두루 거치며 성장해왔다.

하지만 손 전지사가 처음 정계에 입문하면서 선택했던 민자당은 그의 정치적 소신이라며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는 '민주평화세력'을 대변하는 정당이었던가 하는 의심을 해본다. 민자당은 5공 정부의 상징 노태우의 민정당과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그리고 김종필의 신민주공화당이 국민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3당 합당을 통해 탄생시킨 일종의 '야합정당'이다. 또한 이러한 정략은 87년 민주화 운동의 중심이 되었던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씨를 포섭해, 당시 시민사회에서 일고 있던 민주화 기운을 멈추게 하려는 비민주적인 의도를 함께 갖고 있었다.

▲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17일 본격적인 대선행보를 위해 자신의 독자적 지지세력인 ‘선진평화연대'를 공식 출범시킨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리고 이러한 보수정당에서 15년 동안 주요요직을 맞으면서,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진보세력과 정치적 대립각을 세워왔던 그가 하루아침의 진보세력을 대변하는 대선후보로 나선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손학규를 한나라당내에서 소신 있고 개혁적이었던 정치인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는 극우성향의 의원들이 상당수인 한나라당 속에서 조금은 남달랐던 '군계일학'이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손 전지사의 정치적 행적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성향은 '진보'보다 '보수'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다.

이를 단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부분이 최근 사회적 이슈에 대한 그의 태도이다. 그는 신자유주의의 상징인 한미 FTA에 적극 찬성하는 입장을 갖고 있고, 경기도 지사 재임 당시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의 항의를 묵살하고 이에 대한 신속한 일처리를 지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북한의 핵실험이 있었을 때는 '민심 대장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곧바로 대북 비난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그의 정치적 행적과 사회문제에 대한 태도는 손학규를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후보로 내세우는데 '비약'을 가져오게 한다.

지난 13일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손학규 씨는 범여권에 넣지 말라. 그 양반이 나중에 경선을 하고 안하고는 관여할 일이 아니지만 왜 범여권이냐, 반한나라당"이라고 주장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이 잠시 머리를 스친다. 지금 범여권의 통합논의의 명분은 '반한나라당 노선의 연합'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진보적 가치와 정통성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나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17대 대선을 앞두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정치적 구상과 행동은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은 '범여권'이라고 불리는 진보진영이 과연 선거에서 진보적 가치를 희석시키지 않고 승리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동안 진보진영의 정책적 실수는 무엇이었는지 고민해볼 때가 아닌가 싶다.

한나라당에 반대한다고 모두 '진보'는 아니다. 그리고 진보세력을 떠났던 유권자들을 다시 모을 수 있는 힘 역시 포퓰리즘에 기반 한 '인물정치'를 통해서도 가능하지 않다. 진보가 진보다울 때 다시 유권자들의 마음은 진보진영으로 향할 것이다. 유권자들이 지금 기다리는 것은 진보진영의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이기 때문이다.

#손학규#범여권#통합#대통령선거#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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