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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끼리 악하디아 타고 서울을 누벼보세!
누리끼리 악하디아 타고 서울을 누벼보세! ⓒ 박봄이
"보소, 아자씨. 아자씨 딸내미가 자취한다면 이런 집에 들여보내겠소? 자다가 벽 무너져서 골로 보내고 싶은 거요?"
"지하철에서 5분거리라 안 했습니까? 택시 타고 200으로 밟아서 5분이란 소리요? 너무하네."
"내 관상을 보아하니 저 집은 집주인이 너무 깐깐해, 아가씨처럼 널널한 성격은 저런 사람하고 안 맞어. 내 말 맞당께! 얼굴에 합이 안 들었어!"

지금이야 꼼꼼하게 보고 이사를 하는 편이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대충 방 크기와 건물 구조만 보고 이사를 들어갔었다. 그런데 역시 오래 살아본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달까, 여자인 나보다 이 조폭들이 더 꼼꼼하게 집을 고르더라는 것. 누가 저들을 조폭이라 하리.

그래도 이 사람들 명색이 직장이 있어 밤에는 출근하고 새벽에야 잠드는데 장장 일주일동안 낮시간을 비워 방을 구하러 다녀주었다. 밥값이라도 낼라치면 어린애한테 밥 얻어 먹는 건 '가오' 떨어지는 짓이라며 밥값, 기름값, 간식비까지 자기들 돈 쓰면서. 말로는 드라이브 겸 돌아다니는 것이라 했지만 왜 모르랴. 그래도 지난 시간 동안 함께 했던 이웃사촌에 대한 배려라는 것을.

훗… 게임 아이템이 좀 필요하기도 했다는 후문을 말하면 감상에 방해가 되려나.

그들은 사람이 아닌 닭을 잡았다

그렇게 일주일째, 드디어 네 명 모두 만장일치로 선택할만한 흡족한 방을 구하게 되었다.

"채광 좋아, 좋아! 매일 게임 하느라 밖에도 안 나가는 사람이 빛이라도 쐬고 살아야지, 안 그러면 귀에 곰팡이 생겨."
"좌로 학교, 우로 시장, 정거장 걸어서 딱 5분, 시내 한방. 이 정도면 동네 깨끗하고 좋아!"
"신축은 아니라도 건물 깨끗하네. 수압 쎄고 통풍 잘 되고 오, 이 정도면 딱이네."

신기할 정도로 잘 빠진 집이 괜찮은 값에 나와 있는 것을 발견했고 그동안 돌아다닌 보람을 낚아올린 셈이었다.

그날 저녁, 방도 구했겠다, 편한 마음으로 술 한잔을 사려고 했으나 그 또한 얻어먹기 싫다는 것이 아닌가. 차라리 자신들이 일하는 곳으로 오면 한잔 사겠다니, 이 남자들 공짜로 뭐 얻어먹는 거 참 싫어한다.

그런데 그들이 일하는 곳은 나이트도 아니요, 주점도 아니요, 호빠도 아니요, 닭털 날리는 닭집. 아니 무슨 닭집에서 조폭을 쓰나.

카운터에 앉은 첫째 조폭, 주방에서 요리하는 둘째 조폭, 서빙하는 막내 조폭.

"기도 보는 거 아니에요?"
"뭔 소리여, 명색이 우리 가게인데."
"아니, 난 등에 문신보고…."
"그거야 옛날 얘기지~"
"아, 정말!!! 뭔 닭집 사람들이 등판에 호랑이를 그린대?"

한때 첫째 조폭과 둘째 조폭이 정말 조폭 생활을 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이미 십여년 전의 이야기이고 더군다나 막내 조폭은 불우한 청소년기 때 이들의 닭집에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왔다가 인연이 되어 함께 하게 되었다는 것.

"아가씨도 말이야, 지금 그 나이 때가 얼마나 중요한 때인지 알아두란 말이야…."

떠나는 이웃사촌에게 당부하고 싶은 몇 가지

"어릴 때 세상이 다 내 것 같아도 그건 순간이야. 한창 꽃피는 20대는 순간이거든, 앞으로 50년, 60년을 더 살아내야 되는 게 인간이란 걸 알아야 돼, 20대, 그 10년 즐거움을 위해서 나머지 인생을 저당 잡혀서야 되겠어? 뭐가 싫어 그러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적당히 쉬었다 싶으면 훌훌 털고 일어날 준비도 해야 하는 거야."

그 당시 사실 난,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내 안의 무엇인가와 싸우고 있었다. 가족과 있어도, 친구와 애인과 그 누구와 있어도 절대 채워지지 않는 그 어떤 감정.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난 듯한 외로움, 그 누가 올려둔 것도 아닌 내 스스로 짊어진 짐, 표출할 수 없는 어떠한 분노… 내가 먼저 세상에서 나를 분리하려 하였고 숨어들게 하였다. 그런 나를 첫째 조폭은 이미 알고 있었다.

"돈이 급해도 사채는 쓰지 마, 목구멍에 거미줄 친다고 사채 끌어 썼다가 목구멍에 칼 들어가는 게 사채야. 물론 살다 보면 남에게 손 벌릴 때도 있겠지만 당장 눈앞에 저승사자가 올 때까지는 빚을 지면 안돼. 당장 먹을 게 없으면 수돗물을 마셔. 나이가 들어서 빚이 없다는 것 하나만으로 아닌 사람에 비해 세상 살기가 한결 숨통이 트일 거야."

예전에 농담삼아 '아, 신장이라도 하나 떼든가, 사채라도 써서 이 반지하 좀 벗어나야지'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던지 둘째 조폭은 사뭇 진지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세상이 무서울 것도 없었던 시절, 이 대책 없는 이웃사촌이 정말 급하면 사고라도 칠 것 같았던 걸까.

"남자 믿지 마, 아직 어려서 그저 잘 생기고 스타일 나오면 좋겠지, 그런데 남자는 굉장히 잔인한 동물이야. 언제나 도망갈 곳은 마련해두고 사는 게 남자야. 핑계와 핑계를 거듭하고 3분 카레처럼 즉석에서 어떤 감정이라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게 남자라는 거지. 더군다나 혼자 살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첫째도 남자, 둘째도 남자라는 거. 절대 잊어선 안돼."

나이 차이가 가장 적게 났던 막내 조폭은 오빠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실감나는 조언을 해주었다. 우유강도님 출몰 사건과 옆 건물 필리핀 노동자 총각의 솰라솰라를 몸소 막아주었던 입장에서는 어쩌면 가장 걱정이기도 했을 터.

누구의 조언이나 충고도 귀담아듣지 않던 내가 이 세 명의 과거형 조폭의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보다 험악하게 누구보다 굴곡진 세월을 살았던, 하지만 그 세월을 후회하며 살뜰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이들의 모습, 그 어떤 위인의 업적보다 더 가슴에 와 닿았다면 이해가 될까.

일주일 후, 난 예정대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사짐을 날라주고 팔랑팔랑 손을 흔드는 세 명의 조폭, 아니 닭사장님;;;, 주방장님, 서빙님;;;… 비록 거리가 멀어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꽤 오랫동안 게임상에서 함께 게임을 했다. 닭사장님이 결혼을 하시면서 닭사모님과 함께 어울리지 않게 속옷가게를 차리셨고 주방장님과 서빙님이 가업(?)을 물려받아 계속 닭집을 운영한다는 이야기까지만 기억이 난다.

- 잘 지내시는지요, 저는 현재 옥탑에 살고 있습니다. 만만치 않은 배추도사 주인 영감님을 만나 하루하루 다이내믹한 쇼를 벌이고 있지요. 허나 지금이 아무리 고생스럽다 한들 그때보다야 하겠습니까.

이제 조금 사람 구실하며 살고 있으니 제 걱정은 마세요. 사채도 안 쓰고 신장도 안 팔았습니다. 빚도 없고 남자도 술주정이 4차원이긴 하지만 앞으로 데리고 살만 할 것 같습니다. 혹시나 이 이야기를 보시게 되면 연락 주십시오. 그럼 peace~!

추신: 이제 돈 좀 버셨으면 등판에 문신부터 지우시지요. 사실 이제 와 말이지만 등판에 벽화보고 식겁했습니다. -

덧붙이는 글 | 백내장 수술 후 회복하고 있습니다. 수술은 잘 되었고 기쁘게도 시력이 많이 좋아져 렌즈를 끼지 않고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 현재는 보안경을 끼고 생활 중이며 염증과 합병증만 없기를 바라고 있답니다.

옥탑방 시리즈 중 번외편처럼 시작한 조폭 삼총사 이야기는 이번 편으로 끝이 나고 다음 편부터는 다시 배추도사와의 치열한 생존경쟁 스토리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 주시고 걱정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건강 조심하세요. ^^


#옥탑방#반지하#조폭#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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