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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태 열린우리당 전 의장이 대선불출마를 선언했다. 탈당도 함께 선언했다. 불출마와 탈당의 변은 범여권대통합론이다. 87년 양김의 분열로 인해 민주개혁세력이 정권을 놓친 어리석음을 20년 만에 다시 범할 수 없다는 2007년 6월의 절박감이 그의 불출마선언의 동기라고 한다. 나름대로 살신성인의 결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을 놓겠다는 이들의 희생과 헌신이 추구하는 범여권 대통합은 진정 비한나라당 진영의 필승카드가 될 수 있을까. 대선을 7개월여 남겨놓은 이 시점에 적절한 행보일 수 있을까.

결론은 단순하다. 대통합은 필승카드가 아니다. 그렇다고 '분열할 때 망했고 단합할 때 승리했다'는 대통합론자들의 주장이 그릇된 것도 아니다. 다만 단합해야 승리한다는 것은 덧셈법에 의한 진리이긴 하나 인간세계를 지나치게 자연과학적으로 따지는 단순논법이다. 인간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논법이다.

대통합론은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논법

범여권 대통합론이 지니는 의의는 무엇이고 그 허구는 무엇일까.

대통합론은 무엇보다도 대선이 아니라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논법이다. 현역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일정한 '덩치'를 만들어 놓으면 설령 올 대선에서 패배한다고 해도 내년 총선에서 분열로 인한 범여권의 전멸을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여기에 오픈프라이머리와 신진 후보의 등장으로 경쟁력을 가진 후보가 부상해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금상첨화다. 일견 현재상황에서 추구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 대통합이라 하겠다.

그러나 대선이란 큰 싸움을 앞에 두고 '사즉생, 생즉사'하지 못하면 큰 싸움은 물론 작은 싸움인 총선에서도 승리를 기대하기 어렵다. 모험을 감수하더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고 형세론에 의존할 때 표를 가진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들에게 범여권의 대통합은 감동 없는 '도로 민주당'이거나 '도로 열린우리당'으로 비춰지고 있다. 대통합과정에서 별다른 감흥이 없다. 대통합이 필승카드가 되려면 대통합을 국민이 열렬히 바라고 지지할 때나 가능한 일이지만 지금의 대통합은 국민들이 '소 닭 쳐다보듯 하는 대상'일 뿐이다.

그렇다고 대통합작업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범여권 승리의 필요조건을 충족시키는 일이다. 각기 분열된 정당의 대선주자들이 범여권 '종이정당(paper party)을 만들고 거기에서 오픈프라이머리를 하자는 치졸한 발상에 비한다면 다소 정책들이 다르더라도 한 정당에서 오픈프라이머리를 하는 것이 국민의 비웃음이나 쓴웃음을 덜 살 수 있는 방안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서 친노세력들이 노무현-정몽준단일화 때처럼 막판에 후보단일화하자면서 여차하면 친노 열린우리당을 만들 수도 있다는 분위기를 풍기는 것에 비해 대통합론이 다소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하겠다.

범여권의 핵심적 문제는 경쟁력 부재

물론 민주당과 중도개혁통합신당의 소통합이나 통합파들만의 신당의 경우도 독자적인 친노 신당과 동일한 위상으로 그 의미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상황에선 각자가 분열된 정당구도를 갖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범여권이 대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당장 감동은 없을지라도 감동을 만들 수 있는 무대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차원에서 김근태의 불출마선언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범여권의 핵심적 문제는 '분열'을 치유한 대통합이 아니다. 문제는 분열을 돌파하고 비전을 제시할만한 경쟁력의 부재다. 덕아웃에 앉아 있어야 할 노 대통령이 선수처럼 '설치고' 다니는 것이 범여권 대선주자들의 부상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지만 이러한 노 대통령을 극복하지 못하는 범여권 주자들의 자생력 결핍이야말로 보다 핵심적인 문제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언행을 극복함으로써 더 큰 이미지를 만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범여권 대선주자들이 소심한 대응을 보이는 것이 사실은 범여권 지리멸렬의 핵심적인 요소다.

범여권의 경쟁력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차별화에 있지 않다. 차별화가 아니라 노 대통령을 극복하는 이미지가 관건적 요소다. 특히 노 대통령의 범여권 대선주자 평가에 대해 일회적 반응이나 무관심, 혹은 자제를 촉구하는 정도로는 대선주자로서의 확립은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범여권 대선주자들의 정책노선과 비전은 매우 중요하다. 일각에서는 이번 대선을 여전히 지역구도를 중심으로 바라보고 해설하는 경향이 있으나 이 역시 범여권주자의 부상이 없는 현 상황을 반영한 구도짜기일 뿐이다. 정책비전이 아니라 지역연합성패를 대선 승리의 근거로 보는 전통적인 견해가 범여권의 지리멸렬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견해일 뿐이다.

범여권의 현실은?

현재 한국적 상황에서의 경쟁력은 정책노선에서 나온다. 그 이유는 두 가지다.

선진화라는 구호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인들의 한쪽 마음을 차지하는 생각은 민족적, 국가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선진강국으로의 비상이다. 세계화무대에 성공적으로 적응하여 강력한 선진국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 지금 한국인들의 염원이다.

또 하나의 기대는 양극화 해소다. 노무현 정부 들어 급격하게 진행된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은 이미 대다수 국민들의 행동으로 나타난 바람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한편에서는 선진국으로의 비상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생각이 주요 현안에서 우경적 여론으로 나타나면서도 양극화해소라는 차원에서는 차기정부도 진보개혁정권(이명박까지도 포함하는)이어야 한다는 다소 모순적(?) 여론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국민여론이 김호기 교수가 지적한 대로 지속가능한 세계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으로 함축할 수 있는데 이런 국민여론을 수렴할 수 있는 것은 지역구도의 완성이 아니라 정책비전의 출시로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역시 문제는 정책비전이다. 선진국으로의 성공적인 진입과 양극화해소를 통한 공평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정책노선과 비전이 범여권은 물론 한나라당을 포함한 모든 대선주자들의 덕목이 되고 있다. 한나라당 주자들이 비교적 선진강국에 대한 국민염원을 대표하고 있다면 양극화해소를 통해 지속가능한 세계화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염원은 민노당을 비롯해 진보개혁진영이나 중도개혁진영 어디에도 그 대표성을 찾아 볼 수 없다. 이것이 지금 범여권의 현실이다.

정리해보자.

범여권의 대통합이 필요하지만 거기엔 아직 국민적 감동이 없다. 전통적 지지세력복원은 필승의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 그저 필요조건에 불과할 뿐이다. 지나간 시대정신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지지세력의 복원에는 한계가 있다. 새로운 담론 없이 지난 시대의 세력들을 모아놓는다는 것은 거기에서 추억을 말할 수는 있을지언정 새시대 패러다임을 논하기에는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를 극복할 수 있다는 비전 보여줘야

그러나 이 필요조건을 거부하는 것도 퇴행적 뒷걸음질이다. 만일 한나라당, 통합민주당, 시민정치세력과 통합할 것으로 보이는 통합신당, 그리고 친노 열린우리당의 4자구도라는 가정이 현실화 된다면 이는 막판 후보단일화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87년 4자필승론과 같은 우를 범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선은 물론 총선에서도 범여권의 분열구도는 괴멸적 패배를 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리멸렬한 범여권 주자들의 부상은 노무현 대통령을 극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을 차별화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노무현 정부의 의의와 시대정신을 승계하면서도 정책적 한계를 힘 있게 극복하는 대안정책으로 노무현 정부를 극복할 수 있다는 비전을 보여주어야 한다.

특히 노무현정부의 최대 실정인 부동산정책과 교육정책, 그리고 정부개혁 등에 대한 성공적인 개혁비전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국가중장기 비전이라는 비전2030의 장밋빛청사진보다 더욱 힘 있고 강력한 추진의지를 담은 중장기비전도 내놔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노무현 정부의 기존 정책의 문제를 솔직하게 시인하고, 특히 불필요한 것으로 보였지만 스스로 매를 벌고 있는 노 대통령의 자화자찬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공박함으로써 노무현을 넘어 새시대로 갈 수 있는 리더십이란 점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범여권의 대통합으로 비한나라당 진영의 안정적인 게임판을 만듦으로써 범여권 필승의 필요조건을 확립하고, 현존하는 가장 큰 리더십인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를 정책능력이란 실력으로 극복하는 것,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면 지금의 노 대통령 행태를 창조적으로 비판함으로써 극복하는 것이 범여권 대선승리의 충분조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점은 점점 더 확연하게 다가올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뷰스앤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석수기자는 전 정치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 불교방송 시사프로그램 '김석수의 아침저널'MC를 지낸 바 있습니다.


#노무현#대통합#김근태#친노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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