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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 1권 겉표지
<아웃> 1권 겉표지 ⓒ 황금가지
도시락 공장에서 야근을 하며 살아가는 네 명의 여자가 있다. 그녀들의 삶은 벼랑 끝에 몰렸다. 여자와 도박에 미쳐 적금을 몽땅 쏟아 붓더니 이제는 폭행까지 하는 남편 때문에 괴로운 야요이, 타인보다 먼 가족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마사코, 허영심 때문에 카드빚에 몰린 구니코, 시어머니 수발에 지쳐가는 요시에. 그녀들의 삶은 누군가 톡 하고 건들기만 해도 당장 쓰러져버릴 것처럼 위태롭기 그지없다. 어두운 곳 깊은 곳까지 몰린, 말 그대로 세상에서 'OUT'당한 여자들이다.

그런데 우연한 사건 하나가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다. 야요이는 공장에 출근하기 직전, 남편의 말에 화가 나서 남편을 살해한다. 아주 충동적인 일이었고 야요이는 그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야요이는 평소에 많이 의지하던 마사코에게 연락을 해서 도와달라고 요청한다. 살인사건을 완전범죄로 바꾸려는 것이다.

마사코는 부득이하게 요시에를 끌어들인다. 시체를 치우는 일에 누가 끼어들까 싶겠지만 요시에의 상황은 그것마저도 허락한다. 돈 한 푼이 아쉬운 처지이니 그런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구니코까지 끼어들게 된다. 결과적으로 네 명의 여자가 남자를 죽이고 그것을 은폐하려고 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네 명 여자의 삶은 바뀐다. 그녀들에게는 돈이 생기고 주변에서 괴롭히던 것들을 마주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한다. 야요이는 남편이 없어져서 '해방'이라는 생각까지 하고 구니코도 빚 걱정 안하고 돈을 펑펑 쓰는 등 그녀들의 아웃 당한 삶은 다시 회생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범죄로 인한 그런 자신감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형사들이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애꿎게 용의자로 몰린 남자가 그녀들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은 역설적이다. 살인사건으로 인생이 바뀐다는 설정은 그렇게 밖에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그보다 더 역설적인 것은 그녀들의 감정싸움에서 비롯된다. 그녀들은 '연대감'으로 혹은 돈 때문에 사건을 해결하는데 참여한다. 어쨌든 일종의 동지의식이 있었던 게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들 사이에서 이상한 기류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시체를 처리하는 대가로 그녀들은 야요이로부터 돈을 받았다. 생활이 급한 처지이니만큼 거절하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돈을 더 받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어떨까? 야요이의 치명적인 비밀을 알고 있으니 마음만 먹는다면 협박할 수 있다. 아니면 서로를 의심하는 것도 있다. 시체를 처리하는데 누군가는 자신이 더 고생했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돈을 자신이 더 적게 받았다고 느낀다면? 불만이 생기지 않을까?

상황이 급해서 마리코에게 도움을 청했던 야요이도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들이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 남편으로부터 해방됐다고 느끼지만, 사건의 실체를 아는 그녀들의 존재가 또 다른 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야요이의 처지라면 갈등할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에게 거액의 보험금이 지급된다면? 그녀들 사이는 더 미묘해지지 않을까?

기리노 나쓰오는 그녀들이 다시 OUT당하는 이유를 '법'이나 '적'으로 삼지 않았다. 바로 그녀들 자신이었다. 기리노 나쓰오는 잔인하고, 우울하게, 그리고 파괴적으로 그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그 묘사가 압권이다. 각자의 이해관계가 부딪치면서 생기는 갈등과 그것으로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불편한 감정을 묘사한 것은 이제까지의 기리노 나쓰오 소설 중에서 최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살인사건으로 일어섰다가 다시 주저앉고 마는 여자들의 모습을 그린 <아웃>, 기리노 나쓰의 대표작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몰아 부치는 힘이 남다르다. 기리노 나쓰오라는 작가 이름을 넘어,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아우를 수 있을 정도다. 이번 여름철을 사로잡는 추리소설의 선두두자로 삼기에 손색이 없다.

아웃 1

기리노 나쓰오 지음, 황금가지(2007)


#추리소설#기리노 나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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