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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 겉표지
ⓒ 푸른역사
조선의 왕들을 연구하는 박현모가 이색적인 책을 선보였다. 당사자가 아닌 조선의 정치가들을 통해서 '세종'을 탐구하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 세종은 우리나라에서 역대 최고의 왕으로 뽑히는 주인공이다.

그럼에도 정조나 태조, 수양대군에 비해 후세에 조명을 받는 일이 비교적 적었다. 성군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일까? 그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간간이 업적을 위주로 이야기를 했을 뿐이다. 생각해보면, 세종의 정치술이나 고뇌 같은 것에 대해서는 무심했던 셈이다.

저자는 세종의 본모습을 알기 위해, 즉 자상한 군주의 모습과 함께 민폐와 군사들의 고초를 감내하면서까지 군사훈련을 했던 냉혹한 군주의 모습이 양립하는 그 속에서 어느 것이 진짜 세종의 것인지를 찾기 위해 모두 9명의 주변인들을 불러냈다. 첫 번째는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이다.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에서 태종은 무슨 말을 할까? 어렵사리 왕위를 얻어낸 태종은 고민을 토로하고 있다. 그 고민은 집안에 씌워진 무인의 이미지에서 비롯된다. 이씨 집안에게 활과 칼은 분명 디딤돌이었다. 하지만 유학이 통치이념인 조선이라는 나라의 국왕에게는 그것과 별도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학식이 필요했다. 태종은 장남 양녕에게 그것을 기대했지만 양녕은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런데 충녕은 달랐다. 지독한 책벌레였다. 유교 경전과 예법에도 밝았고 사람들을 화합시키는 재주도 뛰어났다. 신하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는 국왕으로서 틀림없는 인재였다. 더군다나 '국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국방문제 등에 무지하다는 약점이 있지만 그럼에도 왕에 오를 인재임이 분명했다는 것을 태종은 알려주고 있다.

태종에 이어 등장한 황희는 세종의 정치술을 중심으로 태평성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황희는 세종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하나의 국제적인 사건이었다고 알려주고 있다. 중국에서 "조선이 중화국가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을 정도라고 한다.

과장일까? 명나라에서 난이 일어났는데 "어진 임금이 다스리는" 조선에 이 일을 알려지면 안 된다는 소리까지 나왔으며 또한 외국에서 집단으로 귀화해오는 일이 빈번했다고 하니 괜한 소리는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태평성대를 가능하게 한 세종의 정치술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신분을 막론한 인재 등용과 그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것이 눈에 띈다. 인재 등용. 말은 쉽지만 어떤 지도자도 쉽게 해내지 못했다. 그런데 세종은 해냈다.

해낼 뿐만 아니라 신하들을 보호해주었다. 사실 이 말을 하는 황희만 하더라도 추문과 여러 잘못을 저질렀던 신하였다. 그런데 지금은 명재상이자 청백리로 기억되고 있다. 적극적으로 인재를 등용하고 그 인재를 보호해주려고 했던 세종의 정치술이 있었기에 그리됐던 것이다.

세 번째로 세종을 이야기하는 이는 허조다. 허조 또한 궁궐에서 벌어졌던 스캔들 등을 통해서 세종의 정치술을 이야기한다. 억울한 일을 규명해낼 줄 알면서도, 신하들의 잘못을 덮어줄 줄 아는, 그리하여 사건도 해결하고 그로 인한 피해를 줄일 줄 아는 군주의 모습을 말하는데 그것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조선 초기는 물론, 조선 시대 내내 '사건'이 벌어졌다 하면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벌어졌었다. 그런데 세종은 과감하게 그것을 피해갈 줄 아는 방법을 찾아낼 줄 알았던 것이고 또한 그것을 시종일관 유지할 수 있었던 결단력을 지녔던 것이다.

또 다른 신하 박연은 음악을 통해 세종의 생각을 알려주고 있다.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박연은 본래 중국의 음에 맞는 악기를 제작하려 했다. 중국에서 들어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기에 실패해도 굴하지 않고 재차 시도해 성과를 거뒀다. 그런데 세종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세종은 우리 악기로 우리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녔던 것이다. 박연이 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때문에 박연이 여기에서 말하는 것은 그 간극을 좁혀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자연스럽게 세종의 생각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이외에도 정인지, 수양대군, 김종서, 신숙주, 정조 등을 통해 세종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들 모두 각각 다른 위치에 있어서인지 다양한 시선으로 세종을 바라보게 해준다. 독특한 방법으로 세종의 인간성은 물론, 세종의 정치, 왕으로서의 고민 등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셈이다.

그동안 왕을 만나게 해주는 책들은 사건이나 인물 하나에 초점을 맞춰 접근한 탓에 작가의 관점에 일방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는 조금이나마 그것을 넘어섰다.

다양한 인물을 통해 바라보는 방법을 취했으며 중간 중간에 상상력을 적당하게 대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저자의 희망처럼 정말 '세종 코끼리의 그림을 근접하게나마 그려볼 수 있게' 해줄 가능성을 지녔다.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 - 조선의 정치가 9인이 본 세종

박현모 지음, 푸른역사(2007)


#박현모#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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