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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호를 시원하게 내려다보는 곳에 자리한 황토벽돌집
ⓒ 한지숙

"바쁘나? 모레 짐 옮길 건데, 내일 청소 좀 도와줄텨?"

전시회를 며칠 앞두고 퍽이나 바쁜 때였다. 심 아저씨가 청소 도와달라는 것을 보니 집을 다 올린 듯하고, 어쩌면 집들이하는 날일지도 모르는데 초대한다는 말이 머쓱해 청소 운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앞뒤 가릴 것 없이 냉큼 대답부터 하고 다음날 하루 온종일 비울 생각에 주변 정리도 미리 해놓고 다음날 청학동의 청암으로 건너갔다.

▲ 시멘트 벽돌과 황토벽돌 사이에 짚을 넣은 30cm 두께의 벽
ⓒ 한지숙
전남 순천이 고향인 심용섭(56)님은, 석남사로 자주 찾아뵙던 스님들이 하동으로 자리를 옮긴 7년 전부터 부인과 함께 하동 나들이가 잦았다. 여기저기 구경도 많이 다니며 하동에 정을 들이게 되자 3년 전엔 아예 하동에 정착하기 위해 1800여평(임/전/답)을 구입했다.

집 올릴 돈이 넉넉하지 못하니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구상을 하며 꽃과 나무들을 심어 마당부터 꾸미고 가꾸던 중, '전(田)'은 허가받은 지 2년 안에, 임야는 1년 안에 집을 지어야 한다는 바람에 설계도면까지 새로 받아 결국 지난가을에 시작하게 된 것이다.

▲ 거실의 전면창. 하동호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 한지숙
황토벽돌을 손수 찍어 집을 짓겠다고 마음먹고 대부분 공정을 직접 하겠노라 작정했기에 예산은 크게 잡지도 않았지만, 집을 짓는 일이 어디 마음먹은 예산대로 그림대로만 그려지는가.

흙벽돌 기계를 만들어 보겠다고 해서 이웃의 흙벽돌 기계 사진도 찍어다 드리고 황토를 깐 방바닥에 삼베까지 깔면 더 좋다 하여 어떤 삼베가 좋은지 구입할 곳과 가격 등도 알려드리는 등, 심 아저씨가 집 올리기 시작하는 때부터 날마다 건너다니며 그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보겠노라, 나도 꼭 그렇게 집을 짓겠노라 큰소리쳤는데, 흙벽돌은 찍어보지도 못한 채 구입한 것을 사용해야 했다.

한겨울로 접어드는 11월엔 형제처럼 지내는 이웃의 양 아저씨와 함께 고향인 순천으로 건너다니며 선산에서 오랜 시간 잘 자라준 서까래용 나무들을 100여개 손질했다. 여기저기 현장 경험을 통해 황토집뿐 아니라 목조주택이나 조립식 등 여러 구조의 집을 짓는 곳이면 마다하지않고 달려가기도 했으니 심 아저씨가 내가 살 집을 손수 올리겠다고 꾸던 꿈은 그리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 거실과 부엌 사이에 벽난로를 만들었다. 군고구마 구워먹을 생각에 행복하다고.
ⓒ 한지숙
그동안 심 아저씨가 생활해 온 집은 '컨텔(컨테이너하우스)'이다. 두 칸으로 나뉜 9평을 생활공간으로 사용했는데 하나는 안방, 다른 하나는 서재 겸 기도실로 꾸몄다. 컨테이너를 주거 공간으로 사용하려면 내외장의 마감처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심 아저씨의 컨텔도 새 집을 짓기 전까지의 사용이 목적이었으므로 한여름의 더위와 한겨울의 추위를 고스란히 떠안고 지내야 했다. 벽에 판자를 덧대고 황토칠을 해 분위기는 그럴싸했지만 추위와 더위를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겨울이면 기름값 무서워 창원에서 가족이 오거나 손님이 왔을 때, 샤워할 때만 겨우 돌리던 보일러를, 내가 건너가면 은근하게 틀어주고 선풍기형 히터까지 돌려주시는 분. 마당에서 키우는 토종닭이라도 잡거나, 친척이 다녀가며 먹을거리가 풍성하거나, 바깥일 하러 나가 용돈 거하게 생긴 날이면 어김없이 양 아저씨와 나를 불러들여 소주 한 잔 나누며 하루를 마감하는 분. 많이 먹어라, 시골 살려면 무조건 든든히 먹어야 한다, 밥심(힘)이 최고다, 늘 웃어라, 한숨 쉬지 마라… 안주 삼아 귓가를 맴도는 심 아저씨의 잔소리는, 마음의 그늘이 풀리지 않아 한숨 폭폭 내쉬는 내게 청량제에 보약이나 다름없었다.

▲ 한여름의 컨텔이 너무 더워 계곡가에 만든 별채. 오른쪽은 닭장으로 쓰던 창고
ⓒ 한지숙
불교신자인 심 아저씨는 밭일을 할 때도 외출을 할 때도 독경 소리가 마당에 울려 퍼지게 테이프를 틀어놓는다. 일할 때야 심심함을 덜어주니 이해가 되지만 집을 비우는데도 그 소리를 밖으로 향한 것이 이상했다.

"나 없는 사이 집을 지켜주는 저 개들도 독경을 들으며 지내면 마음이 평온할 거고, 그래서 우리 개들은 참 순하지…."

낯선 이에겐 거칠고, 친숙한 이에겐 꼬리를 흔드는 것이 개의 속성일 텐데, 독경을 들려주어 그들이 온순하다고 믿는 아저씨의 표현에 난 그만 킬킬거리며 웃었지만, 심 아저씨의 여유와 너그러움, 남부터 우선하는 배려의 마음을 알기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 기초는 시멘트벽돌 2단으로, 황토벽돌 2000여장 넘게 쌓아 올린 벽체
ⓒ 한지숙
나와 심 아저씨의 인연은, 내가 이사를 하면서 일손이 필요했을 때부터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시골집을 기본적인 것만 수리하고 옮기게 되었는데, 그 동네의 흙집을 짓는 현장에 일하러 온 심 아저씨, 양 아저씨가 우리 집 일을 거들러 오면서 알게 되었다. 좋은 분들의 배려로 멋진 별장에 살다 여러 사정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극과 극인 형편의 두 집 이삿짐을 옮기는 데 두 분의 도움이 컸다.

품삯을 건네고 일을 시키는 입장은 나였지만, 집에 대한 것, 특히 엉망인 시골집의 구석구석 손볼 곳들을 살피는 건 두 분이 선수였으니 나는 그저 빙빙 겉돌며 간식을 건네기만 할 뿐이었다. 나이 차는 있어도 그때부터 '친구'라 부르며 지낸다.

"염색하는 사람이 마당이 이리 좁아서 쓰나… 작업하기도 불편하겠는데…."

밥을 끓여 먹기도 염료를 끓이기도 불편해 보이는 부엌을 고치던 심 아저씨가 좋은 터 하나를 소개했다. 내 형편으론 어림도 없는 곳이었지만 심 아저씨와 잘 아는 분이 소문내지 않고 내놓은 땅이라 욕심을 부려볼 만했는데 결국 포기하게 되었고, 그렇게 청학동에 자주 건너다니며 친하게 되었다.

▲ 집짓기 전부터 심어놓은 꽃과 나무들이 벌써부터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
ⓒ 한지숙
서두른다고 출발한 것이 점심 즈음에야 도착했고, 마당은 아직 마무리가 덜 돼 어수선했지만 전망 좋은 자리에 황토집 한 채 번듯하게 자리한 것을 올려다보니 내 집을 지은 것처럼 마음이 뿌듯했다.

차를 즐기는 아저씨께 꽃차도 만들어 드시라 했더니 눈에 띄는 구절초 등 국화 종류마다 옮겨 심어 이젠 없는 것 없는 마당이 되었다. 이번에 보니 배롱나무, 가죽나무, 동백도 여러 그루 심었고, 매실, 감, 배, 복숭아, 살구, 자두, 석류, 사과도 5그루 넘게 심어 아직은 키 작은 나무로 마당을 채워가지만, 꽃 하나씩 가리키는 아저씨의 손끝에 꽃향이 묻어난다.

▲ 닦고 기름치고 다독인 무쇠솥
ⓒ 한지숙
기름 보일러는 놓지만 장작이 지글지글 타는 구들방을 꼭 하나 들이겠다고 했었다. 삼베를 물은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벽에 숯가루 붙은 벽지까지 바른 걸 보니 넉넉하지 못한 가운데 몸에 좋다는 것은 모두 욕심을 낸 것이 뻔하다. 숯과 황토에 삼베까지 깔았다는 구들방에선 며칠 전부터 군불을 지펴 온기가 배어 나오고, 문 밖 부뚜막에 걸어놓은 가마솥에는 따뜻한 물도 있었다.

▲ 꿀 5되나 모을 수 있을까, 초봄에 들인 벌 10통
ⓒ 한지숙
집 올리느라 주머니는 더욱 가물었을 테고, 담뱃값, 소주 한 잔이라도 아쉽지 않게 즐기려면 또 바깥 일을 다녀야 하는데, 내년부턴 새로운 일을 하나 시작할 거라며 바깥에 나가지 않고도 견딜 수 있기를 바랐다. 순천 형님의 도움으로 철쭉을 키워보겠다고 한다. 농사도 몇 가지 제대로 지어 자급자족하게 되길 바란다며, 벌 10통 키우고 있으니 우리 가족 먹을 5되는 족히 나오지 않을까, 친구도 갖다 먹게, 하며 환하게 웃는다.

▲ 아직은 마무리가 덜된 주변. 외등 전기를 손보는 심용섭님
ⓒ 한지숙
손수 찍지 못하고 사들인 황토벽돌만 해도 2000장이 넘고, 20평으로 계획한 집이 다실(茶室)까지 하나 더 채우는 바람에 27평으로 늘어나자 자책하듯 웅얼거리던 심 아저씨의 한숨이 떠올랐다. '사람 욕심이 끝이 없네. 부리지 말아도 될 욕심을 부리니 몸이 이렇게 고되고….' 무거운 것을 옮기다 갈비뼈에 금이 가 며칠 자리에 누워계실 때 한 말씀이다. 왜 시골로 왔느냐고 물었을 때, 쉰을 넘기며 그동안 도시에서 지친 삶, 찌든 때를 벗어내고 싶어 자연을 찾아 들어왔다며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말한다.

욕심은 부렸을망정 한여름을 시원하게, 한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집 한 채 번듯하게 올라갔으니 곁에서 지켜보는 나와 이웃들의 마음이 다 뿌듯하다. 군에 간 아들이 제대하고, 여고생인 딸이 진학을 하고 나면 부인까지 들어와 농사 제대로 지으며 살 날을 손꼽는다.

어제도 청암을 건너온 전화 한 통.

"장날, 조구(조기)새끼가 싸서 300여마리 소금에 재놨응게 여름에 갖다 묵으소, 쪽쪽 찢어 밥에 얹으면 꿀맛잉께!"

시골 사는 멋과 맛, 제대로 아는 분이다.

덧붙이는 글 | 어렵고 힘든 때 용기와 힘을 주는 '친구, 심아저씨'입니다. 고생하며 올린 새집에서 시원한 여름과 따뜻한 겨울을, 가족과 함께 내내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이 기사는 '자연을닮은사람들(www.naturei.net)'과 '경남연합일보(www.gnynews.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황토벽돌#흙집#컨테이너하우스#구절초#꽃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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