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야… 자식아. 사건 해결하라고 일을 맡겨 놓았더니 도대체 어디를 그렇게 쏘다니는 거야? 어제는 오후 늦게 나타나 빈둥거리더니 어젯밤에는 어디를 쏘다녔는지 하품만 하고 앉아 있고… 누구 죽이려고 작정했어?"

짐짓 과장되게 소리를 쳤는데 풍철한의 거친 말투에 움찔했던 전과는 달리 설중행은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자 길게 기지개를 켜더니 하품을 했다.

"함곡선생과 풍대협께서 용봉쌍비를 준 것은 나더러 그저 그렇게 들쑤시고 쏘다니라고 한 것 아니었소?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이곳저곳 쑤시고 다니게 해서 뭔가 튀어나오게 하려고 말이오. 그러다 보면 사건의 전체적인 윤곽을 잡게 되고 자연스레 흉수를 잡게 될 테니 말이오."

사람의 눈에는 한계가 있어 메뚜기를 잡으려면 일단 풀숲을 헤쳐 놓아야 한다. 숨어있던 메뚜기가 어디로 튀어 날아가는지, 그리고 어디에 앉는지 알아야 한다. 그러면 메뚜기 말고 숨어있는 것이 뭐가 있는지도 알게 되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

함곡과 풍철한은 약간은 놀란 듯한, 그리고 곧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니다. 아니 너무나 정확해 오히려 내심 찔렸다.

"내가 뭐 아는 게 있소? 이미 두 분은 뭔가 감을 잡은 것 같은데 나에게 뭐 단 한 가지라도 알려주신 게 있소? 어떻게 해드리리까? 거꾸로 용봉상비를 흔들어 두 분께 아는 것을 모두 토설해 달라고 협박이라도 하리까?"

당돌하게 따지는 설중행을 보며 함곡과 풍철한은 입을 딱 벌렸는데, 얼굴이 약간 붉게 달아오르는 것이 어찌 보면 약간 당황하고 있는 듯도 했다. 형식적으로 보면 이 일행의 수장은 설중행이다. 함곡과 풍철한이 그 자리를 맡긴 것 아닌가?

"허… 이 자식… 우리를 말이야… 네 녀석을 사지(死地)에 몰아넣고 뒤에서 지켜만 보는 아주 비겁하고 치사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네."

당황함을 감추듯 풍철한이 함곡에게 동조를 구하듯 시선을 돌렸지만 함곡은 그저 입을 다물고 있었다. 풍철한과 함곡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설중행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답했다.

"뭐… 사지라 할 것 있겠소? 그저 철모르는 아이 하나 시켜서 이리 뛰고 저리 뛰게 만드는 것 뿐이지."
"그게 그 말 아니야? 임마…?"

풍철한이 억지를 쓰듯 소리를 지르자 설중행은 대꾸 없이 피식 웃으며 함곡을 바라보았다. 함곡마저도 그렇게 생각하느냐는 의미 같았다. 함곡이 헛기침을 했다.

"으음… 설소협의 지적이 틀린 것은 아니요. 분명 그런 의도도 있었음을 부인하지는 않겠소. 허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소."

함곡으로서는 부인할 수 없는 지적이었고, 애써 변명한다는 것도 말만 많아질 뿐이었다. 다만 단지 그 이유만은 아니었고, 그것은 설중행도 알고 있을 터였다. 설중행은 분명 운중보와 모종의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상대를 움직이게 만드는 일에는 아주 적절한 인물이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더 이상 할 말은 없소. 다만…."

다행스럽게 설중행은 그것에 대해 더 이상 따지고 들지 않았다. 그 역시 귀산노인과의 만남 이후로 이제는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쇄금도 사건에 관해서 한 가지 사실만큼은 알아냈소."
"뭐야…? 언제…? 그게 뭔데…? 흉수를 누군지 알았단 말이야? 그럼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흉수가 누구야?"

풍철한이 강렬한 호기심을 보이며 입에서 나오는 데로 두서없이 물었다. 좌중의 시선 역시 설중행에게로 집중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풍철한과 같은 마음일 것이다. 설중행이 너무 많은 질문을 쏟아내는 풍철한을 보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언제 흉수를 알아냈다고 했소? 그저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고 했지."
"이런…?"

다소 실망했다는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안 한 가지 사실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매우 궁금했다.

"진가려의 비밀통로에 있었던 서향의 주인… 그리고 서향의 주인과 같이 있었던 사람이 누군지 알았소."

설중행의 말에 모두들 놀라는 눈치였다. 허나 놀라는 모습은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함곡과 풍철한의 색깔이 대조적이었다.

"누구였어?"

지금껏 조금씩 음식을 씹으며 하품만 해대는 능효봉이 드디어는 정신이 난 듯 물었다. 그러자 함곡과 풍철한이 이상하다는 듯 능효봉을 바라보았다. 둘이 같이 조사했으니 능효봉도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 조차 모르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아직 말할 단계는 아니오. 내가 직접 만나 확인을 해 볼 참이오. 일단 서향의 주인은 쇄금도가 살해당할 당시 그곳에 있었으나 그 사건과 상관없는 것으로 보이오. 다만 그 서향의 주인과 같이 있던 사람은 분명 흉수가 누군지 알고 있을 것이오. 정황으로 보아 아마 공범이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이오."
"누구야? 빨리 말하지 않을래?"

풍철한이 소리를 지르며 으르렁거렸다. 그럼에도 설중행은 그런 풍철한의 위협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럼 풍대협이나 함곡께서 알고 있고, 짐작하고 있는 바를 나에게 모두 말해주시겠소? 그렇다면 나 역시 말씀드리리다."
"허… 이 자식…? 우리가 속인 게 뭐 있는데…? 짐작하는 것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말해 보았자…."

설중행이 풍철한의 말을 중간에서 잘랐다.

"나 역시 마찬가지요. 아직 확인된 것이 아니오. 확인이 되면 알려드리겠소."
'이 자식도… 점점 저 자식을 닮아가나…?'

풍철한은 할 말이 없자 능효봉을 턱으로 가리키며 중얼거리면서 '뭔가 너도 말 좀 하라'는 의미로 함곡을 바라보았는데 함곡은 무언가 골똘하게 생각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시선을 돌려 설중행을 바라보았다.

"그것만으로도 매우 큰 수확이구려. 나 역시 짐작 가는 바도 있지만 확실한 물증이 없어 발설할 단계는 아니라 생각해 말을 아끼고 있소. 하지만 어차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늘 뿐이라 생각하오."

벌써 나흘째다. 이제 보주와 약속된 시간이 하루 남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하루 반나절뿐이다. 이제 전체적인 윤곽과 함께 사건 하나씩 정리를 해야 한다.

"오후쯤이면 되겠소?"
"그럼 오후에 우리 모두가 함께 모여 처음 사건부터 다시 풀어보도록 합시다. 서로 무엇을 다시 조사해야 할지는 알고 있을 터이니 반나절 동안 서로 조그만 단서라도 찾아보도록 노력하자는 말이오."

함곡의 시선이 좌중을 훑자 모두들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떡였다.

"아마 내 예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부터 십이시진 동안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일 것이고, 어쩌면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될지 모르오."

무슨 뜻일까? 복잡하고 심각한 운중보 내의 상황에 비추어 주의를 주는 것일까? 함곡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좌중의 시선이 함곡쪽으로 집중되자 그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되도록 혼자서 움직이지 마시오. 둘도 위험하오. 모두 같이 움직이는 것이 그나마 치명적인 위기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도인지 모르오."

말을 하는 함곡의 표정으로 보아서는 분명 농담이 아니었다. 그는 실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주말에도 연재를 기다리시는 독자분들께는 매우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샌드위치 데이인 이번 금요일(25일)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연재를 쉬겠습니다. 다음주 월요일에 뵙기로 하고 다시 한 번 양해부탁드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와 저 인생의 후반기를 풍미하게 될지도 모를 무협작품을 함께하고자 합니다.

이 기자의 최신기사천지는 만인의 것이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