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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회장.
정몽구 회장. ⓒ 오마이뉴스 남소연
순수한 사회공헌인가, 재벌 총수의 형량을 줄이기 위한 포석인가.

22일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그룹 회장이 내놓은 사회공헌 약속을 두고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한쪽에선 개인 재산을 사회공헌을 위해 내놓겠다는 약속을 실행해 옮긴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선 본말이 전도됐다고 지적한다. 횡령과 배임 등 불법 행위의 처벌과 배상이 먼저라는 것이다. 이후에 사회공헌을 해도 된다는 것.

따라서 이번 발표가 선고를 앞둔 재벌총수의 형량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단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정 회장의 철저한 약속 이행을 주문했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에선 "법원이 불법행위를 한 피고인의 기부 행위를 집행유예 등의 조건으로 보는 잘못된 양형 관행이 있다"면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 회장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단은 빠르면 다음달에 이뤄진다.

1년 2개월 만에 법정서 내놓은 사회공헌 약속

정 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고법 형사10부(이재홍 수석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항소심 공판에서 사회공헌기금 출연을 약속했다. 정 회장은 "향후 7년에 걸쳐 기금을 출연하겠다"면서 "우선 600억원을 현금으로 출연했으며, 1년 안에 1200억원을 출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금 출연은 평상시 생각해 왔던 것"이라며 "저소득층과 장애인을 포함해 전 국민이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정 회장의 변호인 쪽은 현금 600억원이 들어있는 예금통장 사본과 기부증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 부장판사는 "비록 법정에서 이야기한 것이지만 '대국민 약속'과 같다"면서 철저한 이행을 주문하기도 했다.

현대차는 올해 하반기에 출연기금의 용도를 정하고 운영하기 위해 가칭 '사회공헌위원회'를 구성할 예정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위원회는 학계를 비롯해 문화, 재계, 법조계 인사 등이 전권을 위임받아서 운영할 것"이라며 "장애인과 소외계층을 위한 문화시설 건립과 환경, 지구온난화 방지 사업 등에 쓰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시설의 경우 서울시에는 1500석 규모의 오페라하우스를 지을 예정이다. 나머지 전국 주요 12개 도시에는 도서관과 공연시설이 있는 복합 문화센터를 건립할 계획이다.

항소심 선고 앞둔 법정서 전격 발표

정 회장의 사회공헌 약속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작년 4월 정 회장은 그룹 차원의 비자금 조성과 횡령, 편법 승계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검찰 소환에 앞서 정 회장은 사재를 출연, 1조원의 사회공헌기금을 만들어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편법 증여 의혹을 받았던 비상장 회사인 글로비스의 주식을 사회복지 재단에 기부하겠다는 그룹 쪽의 설명도 있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1034억원의 비자금 조성과 696억원의 회사 돈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이후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지만, 법정 구속은 피했다.

정 회장이 뒤늦게 '1조 환원' 내용을 밝힌 것은 법원 압박 때문이다. 그룹 쪽에선 정 회장의 항소심 공판이 끝난 후, 구체적인 기금 활용방안을 내놓을 예정이었다.

현대차의 한 임원은 "법원의 심리가 진행 중이어서 자칫 이 와중에 사회공헌기금을 밝히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2심이 끝난 후 기금 운영 방안을 공개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지난 3월 첫 공판 때부터 '1조 사회환원'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꼈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28일 특정경제범죄처벌법상 횡령ㆍ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돼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차에 오르고 있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지난해 4월 28일 특정경제범죄처벌법상 횡령ㆍ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돼 서울구치소로 향하는 차에 오르고 있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 오마이뉴스 남소연

횡령 등 처벌과 손해배상이 먼저, 사회환원은 그 이후

정 회장의 사회환원 약속에 대해 시민사회단체 쪽에선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1년 전엔 총수의 구속을 피하기 위해 아무런 준비 없이 사회공헌 약속을 했다가, 오히려 현대기아차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이후 다시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총수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 다시 사회공헌방안을 들고 나왔다는 지적이다.

최한수 경제개혁연대 연구팀장은 "정 회장의 이번 약속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사회공헌이 아니다"면서 "단지 항소심 재판부에게 총수의 형량을 줄이기 위한 포석으로 내놓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 팀장은 "수백억원에 달하는 회사 돈 횡령과 배임 등에 대한 처벌과 손해배상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면서 "사회공헌은 모든 법적 책임을 다한 뒤에 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정 회장의 사회공헌 약속이 법원의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정몽구#1조원 사회공헌#횡령과 배임#편법승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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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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