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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군 장승과 상원주장군 장승.
대장군 장승과 상원주장군 장승. ⓒ 안병기
해탈교 부근에서 돌장승들을 만났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듯 다리를 건너지 않고 있는 장승 1기와 속세를 버리지 않고 어찌 피안의 맛을 알겠느냐고 어서 건너오라고 건너편 장승을 손짓해 부르고 있는 장승 2기 등 모두 3기의 장승이었다.

장승은 민간신앙의 한 형태이다. 마을 어귀나 사찰의 들머리에 세워져 경계를 표시하기도 하고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호신의 역할도 한다. 중요 민속자료 제15호인 남원 실상사 석장승 역시 경계표시와 함께 사찰 경내에서 부정한 행위를 금하라는 뜻으로 세워진 것이다.

세 장승은 모습이 거의 비슷했다. 벙거지를 쓴 머리에 퉁방울 눈에 뭉툭한 주먹코. 윗 턱 아래로 삐져나온 송곳니 두 개가 만들어 낸 입가의 미소가 "나, 나쁜 사람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왼쪽 나무 밑에선 대장군과 상원주장군은 마치 연애거는 남녀처럼 마주보고 있고, 그런 모습을 행여나 동네 어른들에게 들킬세라 옹호금사축귀장군이라 새겨진 다리 저 편 장승이 망을 봐주고 있는 듯한 형국이다. 장승을 바라보고 있자니 신경림 시인의 시 '실상사의 돌장승'이 부표처럼 떠올랐다.

지리산 산자락
허름한 민박집에서 한 나달 묵는 동안
나는 실상사의
돌장승과 동무가 되었다.
그는 하늘에 날아올라가
노래의 별을 따다 주기도 하고
물 속에 속꽂이해 들어가
얘기의 조약돌을 주워다 주기도 했다.

헐렁한 벙거지에 퉁방울눈을 하고
삽십 년 전에 죽은
내 삼촌과 짝이 되어
덧뵈기춤을 추기도 했다.
어름산이 시늉으로 다리를 떨며
자벌레처럼 몸을 틀기도 했다.

왜 나는 몰랐을까
그가 누구인가를 몰랐을까.
문득 깨닫고 잠에서 깨어나 달려가 보니
실상사 그 돌장승이 섰던 자리에는
삼촌과 그의 친구들만이
퉁방울눈에 눈물을 그득 담고 서서
지리산 온 산에 깔린 열나흘 달빛에
노래와 얘기의
은가루를 뿌리고 있었다. - 신경림 시 '실상사의 돌장승 - 지리산에서' 전문


사물의 의미는 늘 더디게 포획된다

시인은 언제 이곳에 다녀갔던 것일까. 시 '실상사의 돌장승'은 신경림의 세 번째 시집 <달넘세>(1985)에 수록된 시이다. 그러니 아마도 그 이전에 다녀갔을 것이다. 이곳에 왔던 시인은 나흘이나 닷새 가량(나달)을 민박집에서 묵었던 모양이다. 심심한 시인은 돌장승과 동무가 되었던 거고. 장승은 새로 사귄 친구를 위해 '하늘에 날아올라가/노래의 별을 따다 주기도 하고/물 속에 속꽂이해 들어가/얘기의 조약돌을 주워다 주기'도 했던가 보다.

더 나아가서 시인은 실상사 장승이 삽십 년 전에 죽은 시인의 삼촌과 짝이 되어 경상도 지방의 야유나 오광대 등 가면극에서 사용되는 대표적인 춤사위인 덧배기 춤을 추는 듯한 환상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장승이 줄꾼(어름산이) 시늉으로 다리를 떨기도 하고 나뭇가지처럼 생긴 자벌레처럼 몸을 트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렇게 함께 놀면서도 시인은 정작 장승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잠에서 깬 시인은 문득 그 장승이 삼촌이라는 걸 깨닫는다.

사물의 개념은 낱말풀이식으로는 100% 이해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완벽하게 터득하게 된다. 어렸을 때 광주천변 가설극장 무대에서 속칭 약장사들이 노래 부르던 풍경을 많이 봤다. 노래를 부르고나면 약을 사라고 청중에게 돌렸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판소리였다는 걸 안 것은 아주 먼 훗날이었다. 추상화로 각인된 풍경이 구상화가 되기까지 무려 30년이 걸린 셈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비로소 부모가 내게 무슨 의미를 가진 존재였던가를 깨닫고 되고 어렸을 적 부모님과의 아주 사소한 추억이 나이들어 삶에 지쳐 있을 때 비로소 위안이 되는 현상을 경험한다. 인간은 숙명적으로 늘 의미를 더디게 깨닫고 후회하는 어리석은 존재로 태어났다.

사람은 그 시대를 닮고 시대를 닮은 사람은 작품 속에다 자신을 투영한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300년 전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얼굴이다(대장군의 받침돌에 있는 기록으로 보아 조선 영조 원년(1725)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실상사 석장승은 신경림 시인의 삼촌의 얼굴이자 우리들 삼촌의 얼굴이다.

신화적 상상력으로 가득찬 이 시 속에서 장승과 삼촌은 하나이다. 장승인가 하고 쳐다보면 삼촌의 얼굴이고 삼촌인가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승이다. 실상사 석장승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 시는 시인이 죽은 삼촌을 그리워 하는 진혼곡에 다름 아니다. 시 속에서 퉁방울눈에 눈물을 그득 담고 서 있었던 것은 삼촌 친구들이 아니라 시인 자신이다.

글을 마치려고 하니 2년 전에 세상 떠난 막내 외삼촌 생각이 간절해진다. 머리가 명석했던 삼촌을 망친 건 평생을 달고 산 술이었다. 난 술 이전에 맹호부대원으로 2년간 베트남에 파병돼 있으면서 얻은 삶에 대한 뿌리깊은 회의 때문이었다고 믿는 사람은 나 이외엔 아무도 없다.

인간에게 죽음은 너무 빨리 온다. 그러나 사물의 의미는 늘 해찰부리는 아이처럼 더디게 온다. 하긴 세상이란 게 우리를 끙끙 앓게 만드는 얄궂은 심술이 없다면 여기가 바로 천당이 아니겠는가.
#신경림#신학철#실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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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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