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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인어공주 동상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인어공주 동상 ⓒ 강병구
코펜하겐에선 뭐니 뭐니 해도 인어공주 동상을 찾는 일이 가장 먼저였다. 심심하면 한 번씩 변고를 당해 해외토픽으로 오르는 그 인어공주. 최근에도 누군가 빨간 페인트를 뿌려서 훼손되었다는 뉴스가 났었다.

사실 이 인어공주 동상은 숱한 수난을 당한 것으로 유명한데, 페인트가 뿌려지는 정도의 상처는 흔한 일이고, 2003년에는 앙심을 품은 누군가가 잘라서 통째로 바다에 던져버린 일도 있었다고 한다. 현재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인어공주는 그 이후에 복구한 것이란다.

이런저런 사연이 많은 인어공주이기에 꼭 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코펜하겐 해변 어딘가쯤에 있다는 설명을 보곤, 지도를 보며 인어공주 찾기를 시작했다.

행진하는 덴마크 왕실위병대
행진하는 덴마크 왕실위병대 ⓒ 강병구
숙소에서 시작해서 코펜하겐의 중심가라 할 수 있는 스트뢰이어트 거리로 향했다. 시청사 앞 광장부터 로센보르 공원 근처까지에 있는 크고 작은 거리들을 스트뢰이어트라고 한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의 오래된 중심가처럼, 이곳도 보행자 위주의 거리로 자동차의 진입이 금지된 곳이다. 차가 없다는 것이 걷는 동안 마음을 참 편하게 해주고, 거리의 이곳저곳을 더 찬찬히 살펴볼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덴마크가 자랑하는 다양한 종류의 뷔페식당들부터 레고 점포와 명품 가게들까지 다양한 상점들이 스트뢰이어트에 가득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건, 세련된 액세서리와 보석 상점들이다. 덴마크에는 야콥슨 같은 디자이너들이 많다고 하는데, 그들의 이름을 건 상점들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역시나 이곳에서도 한국인들의 쇼핑이 중요한 것인지, 그중에는 한국어로 안내가 되어 있는 면세 상점도 있었다.

스트뢰이어트를 지나 로센보르 궁전을 지날 때쯤이 마침 위병교대식이 시작할 오전 11시 30분이었다. 아말리엔보르 궁전까지 행진하여 교대하기까지 1시간 정도가 걸리는 이 행사는, 덴마크에선 꽤나 유명한 것으로 호기심을 자극했다.

아말리엔보르 궁전 광장 앞에서 벌어지는 위병교대식
아말리엔보르 궁전 광장 앞에서 벌어지는 위병교대식 ⓒ 강병구
잠시 인어공주 찾기를 멈추고 행진하는 위병들을 따라 아말리엔보르 궁전까지 걸었다. 차도 한 차선을 차지하고 걷는 위병을 따라가는 것은 허용되지만, 그들의 앞에 서거나 손으로 잡는 등 이상한 행동을 할 경우 동행하는 경찰에게 제지를 당한다. 무표정하게 걷는 그들이 신기해 보여 만져보고 싶더라도 망신당할 것을 생각해 호기심을 좀 참자.

아말리엔보르 궁전에 도착하면 광장 앞에서 본격적인 교대식이 벌어진다. 식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폴리스라인을 치고 관광객들을 더 접근하지 못하게 하지만, 좀 더 가까지 보고 싶은 마음은 이곳의 관광객들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론 식에 최소한의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경찰과 관광객 사이의 타협이 이루어진다.

뭐 어느 나라 수문교대식이 다 그렇지만, 정도 있고 우렁찬 구령에 힘 있는 모습들이 보기에 좋다. 낮 12시 30분쯤이면 식이 다 끝나는데, 이때엔 바뀐 위병들 근처로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인어공주와 카스텔레트 요새

지느러미가 다리로 변하는 모습이 인어공주임을 말해준다.
지느러미가 다리로 변하는 모습이 인어공주임을 말해준다. ⓒ 강병구
위병교대식을 보고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해변 근처였다. 지도가 알려주는 대로, 조금 올라가니 인어공주 동상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첫 인상은 우선 실망이다. 뭔가 대단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에 비하면 볼품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그리고 이건 나만의 생각은 아닌 듯했다. 주변에 있는 다른 관광객들도, 각자 자기 나라 말들로 이야기해서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뭐가 이래?', '이게 그 유명한 인어공주야?'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사실 여행을 하면서 여러 번 느끼는 것이지만, 떠나기 전 책이나 소문 등의 간접경험으로 알게 되어 큰 기대를 하게 했던 것들 중, 실제가 기대를 뛰어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오히려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거나, 모르고 가서 그곳에서 보고 알게 된 것들이 훨씬 큰 감동을 주곤 했다.

한가로운 카스텔레트 요새 공원의 모습
한가로운 카스텔레트 요새 공원의 모습 ⓒ 강병구
그런 점에서 인어공주 동상도 사전에 기대가 컸던 것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인어공주의 문제라기보다는 과도한 기대를 한 내 책임이고, 그런 기대를 만들어준 매체들의 책임일 것이다. 이런 생각을 했기에, 무턱대고 대단하다, 엄청나다는 식의 품평은 하지 않으련다. 인어공주 동상은 그렇게 대단한 물건은 아니다. 그냥 가벼운 기대를 하고 코펜하겐에 왔다면 한 번쯤 다른 상념에 젖어들게 해줄 수 있을 것이었다.

인어공주가 있는 이 근처는 원래 오래된 해안 요새라고 한다. 카스텔레트 요새라고 불리는 이곳은, 헬싱키의 수오멘리나 요새처럼, 코펜하겐을 방어하는 중요한 입구 기능을 했다고 한다. 모양도 수오멘리나 요새처럼 별모양으로 생겼는데, 이런 형태는 북유럽에서 흔히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카스텔레트 요새 안의 군시설에서 집합해 있는 군인들
카스텔레트 요새 안의 군시설에서 집합해 있는 군인들 ⓒ 강병구
독일이 북진하던 2차 대전 시기 완전히 붕괴되었고 지금은 복원됐지만, 요새라는 군사기능보다는 코펜하겐의 멋진 해변 공원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론 여전히 군 시설의 쓰임새가 남아 있어, 이곳을 산책하다 보면 큰 목소리의 덴마크어로 관등성명을 하는 덴마크 군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인어공주 동상처럼 다양한 조각들과 조형물들 그리고 분수들로 이루어진 이곳은, 북유럽의 강렬할 햇빛과 한가로운 푸름이 함께 하여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코펜하겐에 있는 처칠공원

무명용사의 동상
무명용사의 동상 ⓒ 강병구
카스텔레트 요새를 한 바퀴 돌고 해변 쪽이 아닌 시내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2차 대전 시기 독일군에 맞서 싸운 용감한 덴마크 저항군들을 기리는 무명용사의 동상에서부터 새로운 공원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곳은 처칠 공원이라 이름 붙은 곳이었다. 덴마크가 독일에 점령당한 시기 영국의 도움으로 해방을 된 것을 기리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공원 한편에는 윈스턴 처칠의 흉상 조형물이 있었다.

이 조용하고 아담한 공원을 보면서, 같은 시기 우리나라를 시끌시끌하게 만들었던 문제 한 가지가 생각났다. 지금은 다들 잊어버린 듯 조용하지만 얼마 전까지 인천에 있는 맥아더 동상을 놓고 말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 결과 미국 하원의원장이 방한해 헌화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구속을 당하기도 했었다.

이런 논란의 중심에는 맥아더 개인의 문제보다는 우리의 아픈 역사와 그 안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지금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여행기를 쓰며 이런 정치적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고 적절하지도 않다.

이 곳이 처칠공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명패
이 곳이 처칠공원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명패 ⓒ 강병구
하지만 그런 복잡한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나에게, 코펜하겐에서 처칠동상을 보는 경험은 묘한 느낌을 주었다. 물론 우리와 덴마크가, 미국과 영국이 그대로 비교하기에는 너무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공원 앞을 걷고 있던 덴마크 할머니에게 '이 처칠 동상은 무슨 의미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작 이런 작은 경험으로 그 큰 갈등의 전부를 이해하고 논할 수야 없겠지만, 이후 한 가지만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담한 처칠 동상에 비해 인천의 그것은 촌스러울 정도로 너무 크다'는 점과 '기왕 만들라면 좀 더 주변과 어울리고, 세련되게 만들 순 없었을까?'하는 생각이 여행 이후에도 계속 보도되던 철거·사수 집회에 대한 뉴스를 보며 명확해졌다.

처칠 공원에 있는 아담한 처칠의 흉상
처칠 공원에 있는 아담한 처칠의 흉상 ⓒ 강병구

덧붙이는 글 | 지난 2006년 4월 21일부터 7월 28일까지 러시아와, 에스토니아, 유럽 여러 국가를 여행했습니다. 약 3개월간의 즐거운 여행 경험을 함께 나누고자 올립니다. 다음 기사는 5월 22일(화요일)에 이어집니다.


#북유럽#덴마크#코펜하겐#처칠#인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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