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손과 사과만 재현되는 문화유산 보존 관리
종묘대제로 분주한 행사일 전날(5일)과 당일(6일)에 모니터한 결과를 보면, 주최 측은 행사 전날부터 차량을 이용해 물품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신도(神道) 위로 행사물품을 실은 트럭이 무단횡단하고 있었다. 신도 옆에는 차량이 잘 다닐 수 있도록 나무판을 잇대고 신도 위에는 얇은 공사용 깔개가 덮여 있었다. 사용된 깔개는 이삿짐 운반이나 도로 공사에서 사용되는 것으로 과연 트럭이 마구 다녀도 신도가 무사할지 궁금했다.
2004년 11월 공사차량에 의한 '종묘 신도 박석 훼손'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많은 이들이 문화유산 보존과 관리시스템을 지적했고 문화재청장은 추후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사과했다. 그러나 일상적인 보존 관리 뿐만 아니라 행사 시 보존 관리 상태 역시 많은 허점을 보이고 있었다.
한편 종묘 정문의 신도 좌우에는 신성한 도로임을 내세워 사람이 다닐 수 없도록 통행을 금지하는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종묘의 신성함과 함께 문화유산 보존관리에도 신경써야 할 것이다.
종묘대제의 중심 공간인 종묘 정전에 들어가 보니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자세히 보면 현수막을 고정하기 위해 정전 월대에 못을 박아 고정하고 있었다.
영녕전에는 관람객들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쇠막대를 꽂았고, 편의를 위해 쇠막대를 꽂을 곳에 형광의 래커를 칠해 월대 박석 위에 표시했다.
종묘 정전 월대 위에는 대형 스크린을 설치했는데, 최근 들어 행사 시 행사물품 받침대와 바닥면 사이에 나무판을 넣어서 일정 부분 보호하려는 의지가 보인다. 하지만 대개 행사물품의 무게와 바닥면의 훼손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나무판 정도를 굄목 정도로 받치고 있는 실정이다. 직접적인 중량의 피해와 함께 간접적인 중량의 영향을 배려하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문화유산 환경을 훼손하는 무질서와 인식
종묘대제로 생긴 직접적인 문화유산 훼손사례 이외에 문화 환경 훼손 차원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예를 들어 종묘대제 관계자들이 잔디밭 곳곳에서 무질서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행사진행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이 주최 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경복궁에서 출발한 어가행렬이 종묘로 입장하는 시간에도 주변에서 자리를 펴고 식사하고 있었다. 반면 같은 시각에 종묘 행렬이 신도로 진입할 때는 다른 사람들을 더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여느 행사에서도 관계자들은 행사장 주변에서 눈에 띄지 않게 식사하거나 준비하는데, 하물며 세계문화유산 재현행사인 종묘대제에서 기본적인 질서마저도 지키지 않은 셈이다.
종묘대제 사례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문화재 활용으로 사적지 안에서 공연과 행사가 빈번히 이루어지면서 사적지 관리시스템은 많은 허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서울시가 관리하는 경희궁은 사적지라기보다는 행사를 위한 공원에 가깝다.
단순한 볼거리 제공에서 지속가능한 보존과 활용 필요
유물이 지닌 외형적인 의미와 함께 그 안에 담긴 문화를 이해할 때 문화유산을 올바르게 향유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문화행사 개최는 시민참여와 문화향유 이외에 보존과 가치창출을 위한 성숙한 문화의식을 높이는 데 진정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기본적인 보존관리 원칙을 위배하면서까지 행사 목적에만 치중해 문화유산을 훼손 위험에 노출한 상황이다. 문화유산 보호는 특성상 훼손 예방 관리시스템 차원에서 운영돼야 하는데, 지금은 훼손 후 사과와 복구로 이어지는 후속조치 차원에서 운영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문화관광과 문화시대를 언급하면서도 진정한 문화의 가치와 문화의식보다는 외형적인 성장과 볼거리 제공에 머무르고 있다. 다가올 문화시대에는 문화향유권을 위한 문화유산 활용과 함께, 문화유산뿐만 아니라 문화환경까지 보존할 수 있는 수준의 문화정책과 문화시민의식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가 후세에 물려줄 문화유산을 생각해 볼 시점이다.
덧붙이는 글 | 장영기 기자는 (사)한국의 재발견 사무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