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피 잎, 제피와 산초는 구분이 쉽지 않다. 하지만 몇 가지 특징만 알고 있다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제피는 보이는 대로  잎자루 아래에 가시가 양쪽으로 난다. 산초는 오른쪽으로 하나  왼쪽으로 하나 이렇게 어긋나 자란다. 제피는 잎 가장자리 톱니 모양이 굵고 확실한 것도 산초와 다른 점이다
제피 잎, 제피와 산초는 구분이 쉽지 않다. 하지만 몇 가지 특징만 알고 있다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제피는 보이는 대로 잎자루 아래에 가시가 양쪽으로 난다. 산초는 오른쪽으로 하나 왼쪽으로 하나 이렇게 어긋나 자란다. 제피는 잎 가장자리 톱니 모양이 굵고 확실한 것도 산초와 다른 점이다 ⓒ 맛객
제피(초피)는 민물고기 요리에 들어가는 향신료다. 추어탕에 넣는 거라고 하면 더 쉽게 설명된다. 추어탕은 산초가 들어가지 않나? 반문할 수 있다. 맞다! 산초를 넣는 곳도 있다. 이는 지리적 차이 때문이다.

중부 이남지역은 제피가 주로 자라고 중부 이북지역으로는 산초가 자란다. 따라서 중부 이북지역 음식에서 산초가 발견된다. 하지만 추어탕이든 민물고기 매운탕이든 제피가 들어가야 제대로 된 맛이다. 향도 향이지만 그 아리아리한 맛은 은근한 중독성이 있어 한 번 맛들이면 산초는 싱거워 별로다.

제피장아찌
제피장아찌 ⓒ 맛객

제피묵나물
제피묵나물 ⓒ 맛객
전라도 구례 등지에서는 제피 잎으로 장아찌를 만들어 먹는다. 된장이나 고추장에 박아놓고 나중에 맛을 보면 그 아린 맛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감칠맛까지 품고 있다. 또 어린잎을 따 데쳐 말려두었다가 묵나물로 먹기도 한다.

입에 넣으면 일단 향이 미각을 매료시키고 이단은 제피 특유의 아린 맛이 미각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마치 숙성시킨 복어알젓을 먹을 때 느껴지는 약간의 마비증세, 제피 묵나물이 그러하다. 참으로 독특한 맛, 나물 중에 이처럼 독특한 나물이 또 있나 싶다.

어린 제피 잎
어린 제피 잎 ⓒ 맛객
그 제피 잎이 요즘 제철이다. 때마침 지인이 구례 지리산 자락에서 채취한 거라며 소량을 보내왔다. 박스를 열어보니 제피향이 연막탄을 터뜨린 듯 삽시간에 방안에 가득 퍼진다.

정말 진하디 진한 향이다. 요놈을 어떻게 요리할까? 절반은 삼겹살 먹을 때 쌈 싸서 먹고 나머지는 김치를 담가야겠다. 밭에서 약 안 치고 직접 기른 열무도 있으니 당장 김치 담그기에 돌입이다.

갈은 홍고추를 풀죽에 넣고 액젓, 마늘, 깨소금, 설탕, 제피가루를 넣고 양념을 만든다
갈은 홍고추를 풀죽에 넣고 액젓, 마늘, 깨소금, 설탕, 제피가루를 넣고 양념을 만든다 ⓒ 맛객

양념과 재료가 하나가 되었다
양념과 재료가 하나가 되었다 ⓒ 맛객
혀를 지배하는 제피열무김치

열무는 30여분 정도 소금에 살짝 절여 물에 씻은 다음 물기를 빼둔다. 홍고추는 2천원어치 갈아왔다. 밥풀 죽을 사용하고 싶으나 여건이 허락지 않아 밀가루 풀을 쑤었다.

풀죽이 어느 정도 식으면 갈아온 고춧물을 넣고 멸치액젓과 간마늘, 한 개씩 링 썰기 한 홍고추와 청고추도 넣는다. 얇게 채 썰기 한 양파와 깨소금 설탕 소량과 제피가루를 넣고 양념을 만들어둔다. 여기에 잘게 썬 제피 잎과 열무를 넣고 오물오물 주무려 완성했다.

제피열무김치
제피열무김치 ⓒ 맛객

이 김치가 가득 품고 있는 제피 향기를 사진으로 잡아내지 못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이 김치가 가득 품고 있는 제피 향기를 사진으로 잡아내지 못해 못내 아쉽기만 하다 ⓒ 맛객
파릇한 열무와 붉은 고춧물의 조화가 시각적으로 식욕을 자극한다. 맛을 본다. 김치를 버무리던 손으로 집어 입속에 넣으니 순간 제피 향이 목구멍을 관통해 귀와 콧구멍으로 빠져나간다.

찰나였다. 이 풍요로운 향기에 빠져드는 데는 1초의 기다림도 필요하지 않다. 향긋함의 노예가 되어버린 느낌, 제피여~ 오 제피여~ 그대의 향기는 정녕 향기의 걸작이라 할 만하도다.

접시에 담아보았다
접시에 담아보았다 ⓒ 맛객

갓 담근 제피열무김치와 갓 지은 하얀 쌀밥이 만나고 있다. 어떤 맛인지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다
갓 담근 제피열무김치와 갓 지은 하얀 쌀밥이 만나고 있다. 어떤 맛인지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다 ⓒ 맛객
향기에 빠져들고 나니 식감과 맛이 느껴진다. 맛의 정점에 도달하기 위해 밥통에 있던 식은 밥은 과감하게 냉동실로 보내고 새로 하얀 쌀밥을 지었다. 김이 눈에 보일 정도로 뜨겁고 눈처럼 하얀 쌀밥에 먹어야 제 맛 아니겠는가?

이 순간만큼은 다른 반찬에 맛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 오로지 밥과 제피열무김치면 된다. 그래도 밥 한 공기가 눈 몇 번 감고 나니 뚝딱 비워진다. 밥 한 공기를 더 담아 먹는다.

미원이 들어갔겠는가? 뭐가 들어갔겠는가. 오로지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만든 김치다보니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김치 국물 한 방울까지 깨끗이 비우고 나니 그 제서야 정신이 차려진다.

마치 무엇인가 홀린 느낌이다. 주도권을 음식에 더군다나 김치에 완전히 빼앗겨 버렸으니 말이다. 늘 상 먹을 수 있는 김치도 아니다 보니 마치 보물 같은 김치란 생각이 든다. 이 보물 같은 김치를 아껴먹어야지 생각했다. 쪼잔하게시리.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제피#지리산#산초#제피열무김치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