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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본 사람은 누구나 가슴 벅차오름을 느꼈을 마지막 장면. "캡틴 오 마이 캡틴' 장면을 노래로 바꾼 장면. 이들의 노래 또한 영화 못지 않은 감동을 준다
ⓒ 김기
1990년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영화관에 걸렸을 때 많은 탄식이 객석에서 흘러나왔다. 아쉽게도 그 자리에 정작 앉았어야 할 고등학생은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고교시절을 보낸 기억이 생생한 몇몇은 흐르는 눈물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그 카타르시스로 인해 아주 조금은 잃어버린 고교시절에 대한 보상이 되기도 했거니와 그 후로 어디 마음대로 사는 것만큼 어려운 일 없는 현대사회의 작은 일원으로서의 위안도 됐다.

마지막 장면에서 문제의 키팅 선생이 결국 학교에서 쫓겨날 때 풀죽은 스승의 등판을 향해서 보여준 학생들의 진정한 존경은 단지 사제지간의 그것을 뛰어넘은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본연의 감동을 선사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랬다. 엔딩 크레딧이 흐르고 객석을 빠져나가기 시작한 젊은이들은 자유롭게 살기로 마음 굳게 다짐했었다.

낯선 라틴어인 '까르페 디엠'을 속으로 수없이 외쳤을 것이고 실제로 그렇게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런 다짐과 바람은 극장 문을 나서면서부터 이미 불가능의 벽에 부딪치고 만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다. 소시민이라는 것이 이소룡 영화를 보면 괜히 멋진 발길질을 해보고 싶고, 가슴 아릿한 멜로영화를 보면 무도회장에서 즉석만남이나 꿈꾸는 자신이 부끄러워지기도 하지만 죽은 시인의 사회가 남겨 둔 '까르페 디엠'은 단지 충동에 그치지 않고 두고두고 비밀스러운 일탈을 속삭여 왔다.

거의 20년이 지난 현재도 그 '까르페 디엠'은 실현될 수 없는 아니 스스로에 의해서 금지된 단어가 되어 있다. 모든 금지된 것은 달콤하기 마련인데 자유에 대해 한국인보다 더 뜨거운 가슴을 가진 민족이 어디 있을까. 그 달콤함의 절정은 아마도 영화 속에서 책상 위로 오른 학생들이 마치 주문처럼 이어간 '마이 캡틴, 오 마이 캡틴'이 아닐까 싶다. 그것은 말이었지만 이미 영화 속 주인공들과 관객들 가슴에 함께 물결친 노래였다.

▲ 대학입시의 도구로 전락한지 오래인 고등학교를 풍자한 교실풍경. 익살스럽지만 한군데 꼭 찌르는 날카로움도 숨어있다
ⓒ 김기
오는 10일 오랜 세월 자유를 갈망하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울리던 그 '까르페 디엠'을 노래로 들을 수 있다. 국립극장 청소년예술제 참가작인 공연집단 '현'이 무대에 올리는 작은 창작 뮤지컬 까르페 디엠이 국립극장 내 실험적 작품을 전담하는 별오름극장에서 장장 20일간 공연된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의 히트상품 국악보따리를 만들어 낸 이제성이 연출하고, 중앙대 김성국 교수가 곡을 썼다. 일반 연극도 그렇지만 특히 창작 뮤지컬은 제작비가 문제다. 제작자 없이는 아무리 작은 뮤지컬이라 해도 무대화하긴 불가능에 가깝다. 이미 기획단계서부터 적자를 각오한 제작자는 김영봉. 국립극장 책임무대감독이다.

봄이 오락가락하던 4월 말경 공연집단 현이 공연을 앞두고 비지땀을 흘리던 연습실은 아무리 봐도 뮤지컬을 준비하기에는 비좁아 보였다. 연습과정을 지켜보니 원작과는 사뭇 달랐다. 근본적인 주제는 영화에서 가져왔겠지만 번안에 가까운 내용이다. 영화나 연극과 달리 노래와 춤이 곁들여지는 뮤지컬의 특성상 대사나 상황의 상세한 묘사보다는 대비와 과장의 이미지를 통해서 강한 전달력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 요즘 고등학생들에게 이성문제는 숨겨야 할 고민이 아니다. 뮤지컬 까르페 디엠은 요즘 고교생들의 사랑문제도 거르지 않고 드러낸다.
ⓒ 김기
죽은 시인의 사회의 줄거리는 이미 익숙하기에 공연집단 현은 '까르페 디엠'을 한국의 현실로 변화시켜 무리없이 주제를 정리해서 내놓는다. 거기에 요즘 신세대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고민이 아닐 수 없는 사랑이야기까지 더해져 '까르페 디엠'은 흥미의 요소가 좀 더 강하다. 20일간 공연하는 뮤지컬이 만일 지루할 정도로 주제의 무게에 눌려 있다면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 되고 말 것이기에 수긍할 수 있는 부분이다.

요즘 시대는 안쓰럽다거나 슬프다는 표현을 '안습(안구에 습기가 차다)'이라는 신조어로 표현할 만큼 의미를 담는 방식이 가볍기에 사회경향과 가장 닮아있는 뮤지컬의 형식상 주제를 감량시킨 표현방법은 피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요즘 시대를 담은 대사 속에도 주제를 비켜갈 수 없는 주제의식은 분명했고, 노래는 가벼움과 무거움을 양어깨에 짊어지고 있어서 기우뚱거리는 듯해도 관객의 입장에서는 무리없이 공연을 대할 수 있어 보였다.

현재 공연계는 뮤지컬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연극의 메카인 대학로만 해도 뮤지컬이 아닌 작품을 찾는 것이 쉽지 않다. 대형작품의 공개오디션은 끊어지지 않고, 연중 굵직한 뮤지컬이 대형극장을 점령해가고 있다. 그에 따라 전문 뮤지컬배우들이 모인 단체도 늘어가는 추세이다. 공연집단 '현'도 그런 뮤지컬단체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나 다른 몇 가지가 있어 주목해볼 만하다.

▲ 한 눈에 보기에도 나이 들어 보이는 이가 제작자 김영봉이다. 국악예고 학생들과 인연을 맺은 건 작년 뮤지컬 천상시계. 제작자 김영봉은 앞으로도 이들과 함께 여러 작품을 해나가갈 것이라고 한다.
ⓒ 김기
단원들 대부분이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 출신이라는 점이 우선 특이하다. 국악과 뮤지컬? 언뜻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지만 국악예고에는 국악만이 아니라 현시대에 조응할 수 있도록 음악연극과를 두고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 주연으로 등장하는 김하늘, 김주희도 역시 현재 이 학교에 재학중인 학생이다. 또한 연출자도 학교에서 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이다. 그래서인지 일반 연출가의 모습과 달리 교사의 모습이 더 강한 것도 구경하는 입장에서는 색다른 느낌을 갖게 했다.

이렇게 같은 출신교 동문이 모이다 보니 자연 배우들 간의 의사소통이 매우 간결한 것이 특별하게 보였다. 이미 오래전부터 스승이었던 연출자와의 대화도 때론 격렬해 보여도 주고 받는 분위기가 어쩐지 따뜻해보였다. 아직 혼연일체란 말은 아껴야겠으나 공연을 준비하는 모두가 호흡이 잘 맞았다.

그렇게 딱딱 맞아떨어지는 호흡으로 보여줄 뮤지컬 '까르페 디엠'에서 기대할 것은 더 있다. 공연이 오를 별오름극장은 객석이 아무리 보조석을 둔다 해도 100석이 못되는 아주 작은 극장이다. 이곳에서 4인조 밴드가 직접 나와 라이브연주를 한다. 물론 배우들도 녹음된 노래가 아니라 무대에서 직접 노래한다. 공간이 하도 작아서 때로 관객들은 극장이 아니라 노래방에 온 듯한 착각도 가능할 것이다.

제작진은 은근히 노래방 같은 분위기도 있을 수 있다는 아리송한 말을 슬쩍 던진다. 공연 전 계획을 다 믿을 순 없겠으나 작은 실험극장이니 일반적으로 예상할 수 없는 깜짝 놀랄 일도 가능할 듯도 하다.

#까르페 디엠#국립극장#죽은 시인의 사회#뮤지컬#서울국악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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