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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언행. 변한 것은 없는 데 비난의 강도는 달라졌다. 왜?

끝없는 추락을 거듭해온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상승세를 타면서, 대통령의 말투에는 여유가 느껴지고 표정 또한 밝아 보인다. 참 다행한 일이다. 사실 그 동안 노무현 대통령은 억울한 일을 참 많이 당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사람이 수 십년을 꿈꾸어도 오르지 못한 대통령에 기적적으로 당선되고, 취임한지 1년도 되지 않아 “힘들어서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푸념을 늘어놓았고, 국회는 대통령의 “못해먹겠다.”는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여(?)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 시켰다.

하지만 국민은 무책임하게 물러나는 대통령을 용납하지 않았다. 결국 2004년 4.13 총선을 통해 헌법에 정해진 임기를 마칠 것을 명령하였고,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뜻을 받들어 대통령이 직무를 재개할 것을 판결했다.

대통령의 고난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조.중.동 등 수구 언론은 대통령의 직무에 관한 정당한 비판의 범주를 넘어서서 대통령의 학력콤플렉스를 자극하기도 했고, 대통령의 말투를 빌미로 '자질론'으로 공격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대통령이 쌍꺼풀 수술을 받은 것 까지 정색을 하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렇게 대통령에 대해 무차별적 공격을 해오던 수구 언론들이 어느 시점을 계기로 대통령에 대한 공격을 멈추었을 뿐 아니라, 이제까지 신랄하게 비판을 가해오던 ‘개헌안 발의’ 같은 예민한 정치현안에 대한 비판조차도 아주 완곡하게 우려를 표명하는 수준으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수구 언론이 대통령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멈춘 시점은 공교롭게도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돕겠다.”거나 혹은 “정말 대통령답더라..”고 말한 시점과 일치한다. 사실 과거나 지금이나 대통령의 언행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그 사이에 변화가 있었다면 ‘한.미 FTA협상이 타결된 것 뿐’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대통령의 언행을 “경망스럽다.”거나 “천박하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심지어는 “대통령의 자질이 아니다.”라며 감정적인 공격을 마다 않던 그들이 대통령을 대하는 태도를 갑자기 바꾼 것이다.

과거 무차별적으로 대통령을 비난해오던 세력의 변화를 대하는 대통령의 표정은 한결 고무되어 있다. 또한 언론을 대하는 모습에도 자신감이 넘친다. 대통령의 표정이나 말투를 보자면 ‘이제야 자신의 진가를 언론이나 국민이 제대로 알기 시작했다.’는 득의만만함이 느껴진다. 임기를 9개월 남긴 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를 잘 마칠 확신을 느낀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을 느끼는 한편, 대통령이 지금과 같은 표정으로 남은 임기를 잘 마무리 할 수 있기를 바라기도 해 본다.

열린우리당 창당정신 누가 흔들었나?

대통령의 얼굴에 희색이 도는 반면 12월 대선에 대비하는 여당의 모습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아직까지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에 대항할 만한 유력한 후보가 점쳐지지 않음’은 물론이고, 현재 여당이 장차 거대 정당인 한나라당의 독주를 견제할 만한 세력을 갖출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이다.

‘통합’을 하자면서 ‘통합의 절차나 방법에 대한 당사자 간의 이견이 또 다른 분열과 반목의 이유가 되는’ 혼란과 갈등의 악순환을 지켜보자니 여권 통합이나 반한나라연대라는 말만 들어도 짜증이 날 지경이다. 그런데 이런 여권의 복잡한 속사정의 이면에 후계구도에 관여하려는 대통령의 보이지 않는 손(이른바 노심;盧心)이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정황이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며칠 전 이병완 전 비서실장 등 참여정부의 현,전직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여 출범한 ‘참여정부평가포럼’이 “(참여정부에서)자신들이 해 온 일을 자기 스스로 평가하겠다.”는 해괴한 논리의 기저 위에 출범하더니, 유시민 장관이 “당을 지킬테니, 떠날 분은 (열린우리당)을 떠나라.”는 발언에 이어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이 훼손되면 복당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언 내용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를 지지하고 열린우리당을 지지해온 사람으로서 “창당정신이 훼손되면 복당..”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을 접하는 심경은 복잡하고 의아스럽다.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은 ‘선진민주주의 지향, 하나의 민족 공동체 지향, 사회통합적 시장경제 지향’등의 주요 가치를 지향하면서, 양극화 해소, 차별철폐,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 등 개혁적 정책의 실현하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다.

이러한 열린우리당의 창당 정신은 노무현 대통령 개인의 정신이 아닌 열린우리당 당원 모두의 정신이며, 열린우리당이 지지자로부터 외면당한 이유는 이러한 창당정신에 충실하지 못하고 끝없이 표류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대통령은 지난 2004년 무산된 국가보안법 개폐 논의를 중단시키고, 도저히 개혁과 극복의 대상인 한나라당과 연정을 시도하는 등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을 앞장서서 훼손시켜왔고, 이로 인해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는 ‘좌측깜박이를 켜고 우회전한 집단’이란 세간의 비아냥을 감수하며 끝없이 몰락해야만 했다.

이처럼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열우당의 창당정신을 훼손하고 몰락의 단초를 제공해온 대통령이 “창당정신이 훼손되면 복당하겠다.”고 한 발언은 당혹스럽다 못해 경악스럽기까지 하다. 이 발언은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고작 ‘당원들에게 위탁경영 시킨 소유물 정도’로 여기고 있음을 엿볼 수 있게 함으로서 그 동안 대통령이 표방해온 ‘당정분리 원칙’이 얼마나 공허한 구호였는지 잘 드러내고 있다.

지난 4년간 노무현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지지해온 지지자들은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해 기대한 것과 같은 크기의 실망으로 애증이 교차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대통령을 쉽게 비난하지 못하고, 여당이 어떤 모습으로든 심기일전하여 다시 국민의 사랑을 받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개혁적 성향의 지지자들이 바라는 여당의 정계개편에 대한 진정한 바람은 식상할 대로 식상하고 정체성조차 드러나지 못하는 열린우리당의 이름 따위가 아니며, 당에 대한 지분이 누가 많고 적은가에 따라는 권리나 기득권 따위는 더더욱 아니다. 여당이 민주정당으로서 올바른 가치를 정립하고 그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민주발전의 기치 아래 재집결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은 여당이 정권을 재창출하거나 비록 대선에서 패하더라도 민주정당의 적통을 이은 정당으로서 한나라당의 독주를 견제할 강력한 정치결사체로서 존재하기 위한 필연적인 조건이다.

그 이유를 열거하지 않겠지만 대통령이 차기 대선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바람직한 일이 아니고, 이제까지 우리 정치사에 퇴임 이후의 정치 구도에 관여하는 것을 시도해서 해피앤딩으로 마무리 된 경우는 없었다. 대통령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열린우리당의 창당정신을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지난 4년간 대통령으로서 해온 일을 잘 마무리 하고 후임 대통령이 편하게 취임할 수 있도록 처신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보 노무현’을 대통령이란 영광스런 자리에까지 오르게 해준 지지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한겨레,다음,더팬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정계개편#범여권통합#열린우리당창당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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